노래할 수 없는 합창단원
2024년 10월, 여행을 끝내고 다시 돌아온 연습실에서 나는 정신없이 바빴다.
노래를 부름과 동시에 연습노트를 더 꼼꼼히 챙겨야 했고, 오케스트라와 일정을 조율해야 했으며, 프로그램 북에 들어갈 합창단 소개와 공연곡 소개, 공연 당일을 위한 큐시트, 무대 배치도, 합창단 대형 등을 작성해야 했다. 10월 말 연주회를 향해 가는 마지막 여정이었다.
바쁜 거, 힘든 건 다 괜찮았다. 소화할 수 있었다. 문제는 노래였다. 노래는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 되어 버렸다. 솔리스트는 고사하고, 합창 파트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합창단원이라니. 말도 안 되는 거 아닌가. 분명히 나는 맡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음에도, 내가 합창단에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또다시 내가 쓸모없이 느껴졌다. 회사에서도 쓸모없다는 생각 때문에 도망친 건데, 합창단에서는 꼼짝없이 잡혀있었다. 무력감이 밀려왔다.
공연이 다가올수록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없는데, 무대에 오를 자격이 있나. 또 머릿속에서 자격 논란을 만들어 스스로 휩싸이게 하고 구박했다.
합창단 대형을 작성하면서, 나를 자연스럽게 제외시켜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1년 내내 준비했지만, 나는 무대에 오르지 않고 백스테이지에서 공연이 무사히 끝나길 지켜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동안 쏟아온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내가 추천한 공연곡이고, 연습부터 리허설, 본공연, 그 이후 이어지는 음원, 영상 체크까지, 공연과 관련된 가장 많은 업무를 할당받았는데, 정작 나는 무대에 서지 않고, 영상 기록에도 남지 않는다? 이건 또 좀 서럽지 않나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결국, 나는 무대에 설 결심을 했다. 소리를 보탤 수 없는, 의미 없는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섰다. 사실상 머릿수만 채웠고, 입만 벙끗거린 순간이 많았다. 공연 영상을 보면 내 표정은 줄곧 딱딱하게 굳어있다. 도저히 웃으며 즐거운 척 연기할 수 없었다. 여지없이 아마추어스러웠다.
그래도 나는 무대를 뛰쳐나가지 않고 버텼고, 장장 10개월을 고스란히 투자한 합창단 공연을 큰 호응 속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역대 최다 관객을 달성했다.
무대를 내려와 대기실로 돌아오니, 고생했던 시간들이 생각나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담담하게 감정을 다스릴 수 없었다. 울컥하면서도 뿌듯했다. 내가 뭔가를 해낸 것 같았다. 병가 중에도 기어코 이걸 마치다니. 일종의 성취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그간 객관적으로 쓸모없지 않았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도 그저 그런 일개 회사원이었지만 맡은 일을 펑크 내지 않았고, 곧잘 한다는 칭찬도 간혹 받았다. 다만 나는 그 칭찬을 믿지 못했다. '내가 잘하지 않았는데 왜 칭찬을 받지'라는 의심만 가득할 뿐이었다.
합창단에서도 나는 음악총괄로서의 업무를 잘 수행했다. '잘했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칭찬을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 위축됐다. '나 근데 노래 못 불렀는데, 이런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나?' 라며 또 자책했다.
두 영역에서 달랐던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창단에서 굳건히 버텼다는 것이다. 물론 몹시 힘든 순간들이 많이 있었지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의 잘하는 부분 또한 인정하면서, 자존감을 다시 조금씩 쌓아나갔던 것이다. 일종의 노출 치료를 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회사에서도 버텼어야 맞았던 걸까? 그건 사실 모르겠다. 버틸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아니었고, 회사에서는 잘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부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자존감을 회복할 만한 시간도,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2024년 10월 말, 결국 모든 활동을 끝냈고, 이제는 회사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겁이 났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게, 그토록 무서울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