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선택의 순간이 왔다. 하지만 나는 두 방향 모두가 무서웠다.
2024년 11월, 복직과 휴직 사이에서 멈춰 선 채 한참을 고민했다. 병가는 최대 6개월까지 가능했고, 나는 이미 그 시간을 다 써버린 상태였다.
회사 심리상담센터 선생님께서는 더 쉬어가는 걸 권해주셨다. 병가 중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화상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보시기에 아직은 아니라고 판단하신 것 같았다. 나도 6개월의 쉼으로는 조금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병원에 가서 조심스럽게 더 쉬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내 생각을 충분히 들어주셨고, 딱히 반대하지 않으셨다. 우울, 불안 척도 결과가 아직 높다는 점도 한번 짚어주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진단서를 써주시며 이렇게 덧붙이셨다.
"이건 반드시 쉬시라고 드리는 게 아니에요. 진단서 가져가셔서 고민해 보세요. 회사로 돌아가서 현실에 적응해 보시는 게 나을지, 더 쉬시는 게 나을지."
선생님은 강박증 노출 치료처럼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셨다. 치료적으로 더 도움이 되는 방법일 수 있다고도 하셨다. 내용은 이해가 됐지만, 왠지 모르게 서운함이 밀려왔다.
진단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혹시 틀린 선택을 하는 걸까? 이대로 선생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게 잘못하는 건 아닐까? 그때 선생님 말씀을 들을 걸 하고 후회하는 순간이 생기려나? 내 순간의 선택이 미래의 나에게 더 큰 불행을 가져다주면 어쩌지?'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두려웠다. 쉬는 것도 두렵고, 안 쉬는 것도 두려웠다. 어느 한쪽도 나를 마음 편하게 해 주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나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상병 휴직을 선택했다. 돌아가는 쪽이 아무래도 나에게는 조금 더 무서웠다.
병가와 휴직은 많이 달랐다. 어감부터도 다르지만 인사적으로 병가는 일종의 휴가 개념이고, 휴직은 말 그대로 직무 자체를 쉬는 것이었다. 병가 중에는 일하지 않아도 사내 시스템 접근이 모두 가능했지만, 휴직은 사내 시스템 접근이 아예 차단되고, 업무용 PC도 모두 반납해야 했다. 말은 휴직인데 마치 퇴직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무실 자리에서 짐을 포장하고 노트북을 반납한 후에 회사 건물을 나오는데, 꼭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이제 여기 다시 안 오나? 아니, 못 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월요일에 진단서를 받아 밤새 고민하다가 화요일에 휴직 신청을 하고, 수요일과 목요일 내내 두려움에 떨다가 금요일이 되어 다시 병원에 갔다. (첫 번째 자살 시도 이후 주 2회씩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서운했던 마음을 이야기했다.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지? 왜 나를 더 걱정해주지 않지? 내가 엄살처럼 보였으려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회사에 복직하는 게 더 치료적일 수도 있습니다 라고 하는 얘기가 어떻게 들렸나요? 자, 이제 엄살 부리지 말고 가세요,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 "네, 등 떠밀리는 것 같았고, 내가 틀렸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들리셨으면 서운하셨을 수 있겠어요. 마치 제 이야기가 '참고 해' 하는 것처럼 들리셨을 수도 있겠네요.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참고 해. 엄살 부리지 마.'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온 것이었다. 그래서 서운했던 거다.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모든 것을 이해해 주던 나의 이상적인 치료자가, 마치 나의 무서운 아버지처럼 내게 보인 것이다. 선생님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었고, 선생님의 워딩에 분명히 그런 뜻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생님께 나의 아버지를 비췄다.
- "슬프고, 서운하고, 다시 내몰리는 것 같았어요."
"어렸을 때는 정말 좀 내몰렸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버지로부터든, 누구로부터든, 참고 하라고. 지금은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내몰지 않는데, 저도, 남편분도, 회사의 동료분들도, 그렇게 내몰지 않았을 텐데, 스스로가 자꾸만 내몰린다고 느끼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내가 늘 벼랑 끝으로 몰린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나가는 자체가 벼랑 끝에서 버티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늘 몰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누가 나를 몬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몬 거였다. 내가 나를 벼랑 끝에 세워둔 것이었다.
"서운했다는 얘기해 주신 거 아주 잘하신 거예요. 이 진료실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었잖아요. 이런 걸 전이 감정이라고 하죠. 어린 시절 나에게 중요했던 인물에게 느꼈던 감정을 여기서 다시 느끼는 것.
전이가 이 안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밖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어느 정도 벌어지고 있을 텐데, 그러면 나는 그럴 때마다 내몰린다는 느낌을 받고, 부담스럽고, 힘든데 참고 해야 할 것만 같고, 내 편은 없는 것 같고, 그런 느낌을 받는 거예요.
그런데 그럴 때는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봐 주세요. 정말 내 편은 없는 건지, 그 사람들이 나를 내모는 건지, 이렇게 하는 건 어때 하고 권유하는 건지. 그걸 한번 봐주세요."
스스로를 내몰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라고, 따뜻한 조언을 건네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 서운한 마음이 풀리면서 내 선택에 대한 불신이 사라졌다. 내가 직접 선택한 미래도 그 나름대로 괜찮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비로소 치료에 한 발짝 다가선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