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속 공황, 이해받지 못한 서러움

by 김마음


2024년 12월, 처음으로 혼자 차를 끌고 도로 위에 나가봤다. 남편 없이 혼자 운전을 한 건 정말 처음이었다. 남편에게 당연히 허락을 받은 일이었지만(남편이 매우 아끼는 물건이므로), 나에게는 일종의 일탈이었다. 신이 났다. 나들이랍시고 지방의 어느 카페를 도착지로 설정했다.


남편과 항상 함께 다니던 거리를 나 혼자 움직이는 게 신기했다. 동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 어떤 작은 해방감마저 들었다. 내가 혼자서 차를 끌고 서울을 벗어나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드디어 나에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겼구나 싶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나의 운전 실력은 꽤나 안정적이었다. 음악을 틀고, 파란 하늘을 보며, 여유롭게 자유를 만끽했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하지만, 이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속도로에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 터널이 나타났다.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터널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공황발작이 시작됐다.


앞이 뿌예지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나고, 손이 덜덜 떨렸다. 일단 시야가 날아간 게 제일 무서운 포인트였다. 앞차와의 간격을 알 수 없었다. 손이 떨리는 바람에 핸들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무서웠다. 그렇게 첫 번째 터널을 지나고, 이제 좀 괜찮을까 싶으면 그다음 터널이 나타났다. 그렇게 몇 개의 터널을 지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도저히 운전을 지속할 수 없어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차를 세우고 나니 그제야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펑펑 터졌다.


남편에게 울면서 전화를 했다. "나 지금 어디 휴게소인데, 더 가지도 못하겠고 돌아가지도 못하겠어. 어떡해. 너무 무서워." 엉엉 울었다.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공포였다. 남편은 자기가 퇴근하고 휴게소로 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때 시간은 아침 10시였다. 남편이 오기 까지는 최소한 6-7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한겨울이었고, 하필 날씨가 추운 날이어서, 시동을 끄자 추위도 같이 밀려왔다. 남편은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맛있는 거 사 먹고, 히터 틀고 따뜻하게 있어."라며 허허 웃었다. 나는 울다 말고 갑자기 화가 났다. '지금 웃음이 나올 상황인가?'


내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데리러 오라고 하고 싶었다. 물론 그럴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있었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길, 나를 조금은 더 걱정하는 목소리이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런데 맛있는 거 사 먹으면서 쉬고 있으라니. '내가 지금 즐거운 상황이 아닌데?'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울었다. 아무것도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고 분했다. 두 시간여를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휴게소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집에 돌아갈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터널이 없는 길이 어디 없을까, 터널을 피할 수 없다면 어느 길로 가야 최소한으로 만날까, 생각하며 여러 루트를 찾아봤다. 하지만 마땅한 길이 없었다. 어느 길로 가도 여러 터널을 만나야 했다. 결국,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한번 지나온 길이니까 그나마 대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오후 12시, 출발하기 전 마음을 다졌다. '할 수 있어. 나는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어. 한 시간 후면 집에 도착해 있을 거야. 괜찮아. 할 수 있어.' 그렇게 출발했고,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르겠는 길들을 다시 지나 서울에 다다랐다. 다시 동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고, 롯데타워가 보이자 안심이 되면서 또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안 돼. 지금 울면 안 되고, 집에 도착해서 울어.' 냉정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드디어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고, 주차도 문제없이 잘했다. 집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씻는데, 손에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지간히 긴장했던 모양이었다. 막상 집에 도착하니 눈물도 나지 않았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일어난 일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꿈을 꾼 것 같았다.


사실 돌아오는 길에 무서웠던 건, 혹시나 내가 사고를 일으켜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칠까 봐, 그리고 남편이 아끼는 차가 망가져서 남편이 속상해할까 봐. 두 가지였다. 내가 다치고 말고는 그 와중에도 우선순위에서 밀린 걱정이었다. 진정하고 다시 생각해 보니 이 부분이 슬펐다. 내가 안타까웠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온 남편은 "잘했어. 대단해. 정말 잘했어. 엄청난 일을 했어!"라며 칭찬을 했다. 연신 엄지 척을 보여주며 이제 운전 마스터 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또 의아해졌다. '내가 지금 칭찬을 받고 싶은 게 아닌데?'


저녁을 먹고 쉬다가 남편은 침대에 누웠고, 나는 화장대에서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쓰다 보니 낮에 있었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남편에게 다시 중얼중얼 떠들기 시작했다. "나 진짜 사고 나는 줄 알았잖아. 우리 차도 망가지는 줄 알았어. 차에서 혼자 엄청 떨었다고. 어떻게 왔는지 정말 기억도 안 나."


한참을 떠드는데, 남편이 아무 말도 없었다. 잠이 든 것이었다. 다시... 화가 났다. 이번에는 참지 않고 화를 표현하기로 했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여보, 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 같은 날은 내 얘기를 좀 더 들어줘야 되지 않아? 나 오늘은 죽을 수도 있었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었다. 낮과 저녁에 하지 못한 말도 덧붙였다.


"내가 듣고 싶은 건 농담도 아니고, 칭찬도 아니고, 진심 어린 위로였어."


남편은 그제야 미안해했다. 본인 입장에서는 그게 나를 위한 걱정의 표현이었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잘했다 잘했다, 으쌰으쌰 이게 정말 걱정과 위로의 표현이었다고? 우린 정말 다른 사람이구나, 실감이 났다. 그러면서 갑자기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병원에 가서 하면 이해받을 수 있을 텐데. 거기서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해 주실 텐데. 내 상태에 대해서 잘 아시니까. 남편은 아직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아... 근데 병원은 돈 내고 가는 곳이었지? 나는 돈을 내야만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


생각이 이렇게 흘렀다. 돈과 시간과 이해. 다시 이 생각의 굴레에 빠졌다. 나는 이해받으려면 돈을 투자해서 선생님의 시간을 사야 하는구나.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구나. 서러웠다.


이해는, 나에게 너무나도 비싼 무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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