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에 부응하는 삶
대학, 취업, 결혼까지, 나는 시기에 맞춰 착착 잘 지나온 편이다. 여느 부모님들처럼 대학을 가면 '취업만 잘하길', 취업을 하면 '결혼만 잘하길' 바라시던 우리 부모님이, 결혼을 하고 나니까 이제 '아이는 꼭 낳길'로 바뀌셨다.
나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면서 자라왔다. 뭐든 하라는 건 다 했고, 하지 말라는 건 절대 하지 않았다. 비교적 사춘기도 없이, 부모님과의 그 흔한 말다툼 한 번 없이 착하게 자랐다. 다툼이 없었던 건 아마 불만을 표현하지 않는 나의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한 번도 반항한 적 없는 삶을 살아왔는데, 결혼 이후 나에게 주어진 '출산'에 대한 요구는 차원이 다른 숙제였다. 그건 절대 등 떠밀리듯이 들어줄 수 있는 숙제가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날수록 양가 부모님들의 출산 압박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얘네가 정말 자기들 뜻대로 살고, 우리의 말을 안 들어주면 어쩌나, 손주를 못 보게 하면 어쩌나 애가 타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요구를 덜컥 들어드릴 수도 없었다.
아이는 나와 남편이 키우는 것이고, 태어나면 평생 책임져야 할 것도 우리 둘이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다. 아이를 낳고 기를 당사자 둘이 생각이 없는데, 왜 어른들이 이렇게나 간섭을 하시는지. 평생 대신 키워주실 것도 아니면서, 왜 이 결정을 우리 맘대로 하지 못하게 압박을 하시는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표현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시댁에서는 남편이, 우리 집에서는 내가, 부모님들의 말씀에 충분히 대꾸를 해드렸다. 저희의 생각이 이러이러해서 저희는 아이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백날, 천날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2024년 12월의 마지막 주말, 시부모님과의 식사가 있었다. 시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내가 오손도손 식사하는 자리였는데, 결국 그 자리에서도 똑같은 레퍼토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당최 너희들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 왜 아이를 안 낳겠다는 것이냐, 도대체 무슨 뜻이냐. 자세히 좀 말해봐라. (이미 우리는 5년 간 수도 없이 많은 자리에서 우리의 결혼관을 충분히 설명했지만 안 들어주신 건 어른들이다.) 왜, 뭐가 문젠데, 너희들 돈이 문제야? 아니면, 뭐, 건강에 문제 있어?" 이게 내가 들었던 워딩 그대로다.
이런 표현은 우리 아빠가 했더라도 화가 났을 거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까지 물어보시는지. 그런데 시부모님이라 내가 도저히 화를 표현할 수 없었다. 남편이 대신 화를 내며 시부모님의 말씀을 막아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가셨다. 나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고, 감정을 다스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보탰다.
"아이가 간절해서 낳은 부부들도 키우다 보면 힘들 때가 많다고들 하는데, 저희는 간절함 자체가 없어서 그런 시간을 견디기가 힘들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 없이 자유로운 저녁, 자유로운 휴가, 여행, 삶을 즐기는 게 저희는 행복합니다. 그 외에 저희에게 더 필요한 게 없어요. 억지로 아이를 낳아서 기르게 되면 저희가 전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자 반쯤 납득하시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하시며 질책하기도 하셨다. 남편이 그간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며느리인 나의 의견은 혹시나 다를 수도 있다고 기대하셨던 눈치였다.
그렇게 출산 압박과 함께했던 불편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어머니께서는 차에 타려는 나를 불러 안으시며 잘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잠시 양 볼을 손바닥으로 잡아보시고는 "으휴~" 하며 한쪽 볼을 살짝 미셨다.
그 순간, 나는 정말 당황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때리는 대신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신 걸까? 절대 예뻐서 하신 행동은 아닌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일단 기분이 몹시 나빴다. 우리 부모님도 나에게 이런 터치가 없으신데, 내가 여기서 왜 이런 하대를 받아야 할까 의문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차 안에는 긴 시간 정적이 흘렀다. 남편이 운전석으로 가는 동안 짧은 해프닝이 있었던 걸 이야기했다,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도 말했다.
남편에게 이렇게까지 표현했다. "당신이 그냥 빨리 나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는 다른 사람과 만났으면 좋겠어. 나랑은 부모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힘들 것 같으니, 우리 관계는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겠어. 나는 갈등도 싫고, 이 집안에서 애물단지인 것도 싫고, 또 쓸모없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너무 힘들어."
그냥 다른 사람 만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내가 빠져주겠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남편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다. 아이를 낳자고 우리가 헤어지는 것도 말이 안 되거니와, 본인도 부모님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닌데, 왜 그렇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럼 나는 평생 이런 고통을 견뎌야 하는데, 못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도망치고 싶다고. 이제는 시부모님한테서만 도망치고 싶은 게 아니라, 시부모님 아들인 당신한테서도 벗어나고 싶다고.
정말 벗어나고 싶었다. 나를 속박하는 이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여기서 벗어날 방법은 하나였다.
서랍을 열어 모아뒀던 수면제를 꺼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다시 수면제를 한 움큼 삼켰다. 나에게는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고, 아무도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갈등과 혼자 싸우고 있는 기분이었다. 외로웠다. 사라지고 싶었다.
내일 아침 눈 뜨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제발 이 삶이 반복되지 않기를.
...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자살 시도 이유였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세상에서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을 만큼.
나는 여기저기서 다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영역 안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