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고 싶어질까?
2024년의 마지막 날 진료실에 갔다. 두 번째 자살시도로 인해 진료가 하루 밀린 상태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미 알고 계셨지만, 그날 있었던 일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선생님은 다시 한번 입원에 대한 얘기를 꺼내셨고, 다시 시도할 마음이 있는지 물으셨다. 나는 충동적 시도였고, 당장은 다시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면제를 주시며 선생님은 당부하셨다.
"잠을 자긴 해야 하니까 수면제 드릴 건데, 약 모으지 말고 드세요. 그러실 거라 믿고 드리는 거예요."
...
연말에 시도가 있고 나서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그러다 처음 말을 꺼내게 된 건 2025년 1월 초 어느 날, 남편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나는 진지하게 우리가 헤어지는 것도 고려하고 있어. 내가 도저히 부모님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을 것 같아."
단순히 감정에 휩쓸려 생각한 게 아니고, 현실적인 부분도 충분히 고려해 봤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혼을 하게 되면 어떤 방법으로 정리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간단할지, 재산 분할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의 몫으로 나눠질 재산으로 구할 수 있는 아파트는 어느 정도 있을지, 미리 다 찾아보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남편은 조금 놀란 것 같은 눈치였다. 내가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러니까 그 말은 '너무 멀리 가 있었구나'와 같은 뜻이었다.
남편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가 싫어져서 헤어지는 거라면 이해할 텐데, 주변 환경이 문제여서 헤어지자는 말이면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계속 같이 살면서 이 고통을 감내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남편과의 이혼에 있어 하나 두려운 점이 있었다. 나의 가족. 그들은 남편을 너무나도 예뻐했다. 내가 시댁에서 은근히 홀대받는 것에 반해, 우리 집은 남편을 진심으로 아끼고 위하는 편이었다. 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혼을 하면, 본인들이 그렇게나 아끼는 사위를 '나 때문에' 못 보게 되니까, 나에게 엄청난 원망을 쏟아내실 것 같았다. 나를 탓하실 것 같았다.
이혼을 생각하는 와중에도 나는 가족들이 내 편이 아니라 남편의 편일 거라 생각했다. 엄마도, 아빠도. 내 편을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상상만으로도 외로웠다. 정말 세상에 고독하게 남을 것 같았다. 단순한 헤어짐이 아니었다. 가족과의 단절까지 감수해야 할 문제였다.
진료실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자, 선생님은 정말 가족들이 나로부터 돌아설 거라고 생각하는지 물으셨다.
"그래도 딸인 김마음 님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김마음 님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예뻐하는 사위도 얻으신 건데, 김마음 님이 없다면 그 관계가 의미가 있을까요?"
- "제가 빠져도 다 유지될 관계일 것 같아요. 그냥, 저 하나만 여기서 쏙 빠지면 좋겠어요."
"그런데 왜 '빠져나가서 잘 살아야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빠져나가서 없어져 버려야지'로 생각이 흘러가나요?"
- "빠져나가서 잘 살려면 누구와든 싸우는 과정이 필요한데... 저는 그걸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고, 제 삶을 찾을 용기가 없고, 그냥 도망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또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인데, 앞으로 돌진해서 문제를 헤쳐나가는 것보다는 그냥 뒤로 훌쩍 뛰어내리는 게 더 쉬울 것 같아요."
이혼도 싸움인데, 다 모르겠고, 싸울 힘도 없고, 지금 당장 없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생각만 해도 피곤했다. 그런 싸움을 견딜만한 힘이 있지도 않았고, 그렇게 싸워서까지 얻고 싶은 삶도 아니었다. 나 하나만 없어지면 되는데, 왜 이게 이렇게 힘들까 싶었다.
이혼도 답은 아니었다.
이혼도 결국, 나를 살고 싶게 만들어 줄 방법은 아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