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를 걱정해 주지 않나요?

걱정받고 싶었던 마음이 분노가 되었다

by 김마음


정신과 선생님들 대부분이 그러시겠지만, 나의 주치의 선생님은 특히 감정 표현이 거의 없으신 편이다. 물론 비교 대상이 없어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회사 상담 선생님과 견줘보면 확실히 그렇다. 그래서 인지적 공감은 느껴지지만, 정서적 공감은 잘 와닿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끔 서운한 상황이 있었다. 분명 이런 이야기에는 걱정해 주실 법도 한데, 절대 말로 표현해 주시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나는 또다시 무심했던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매번 나의 감정을 축소해 받아들이던 남편의 모습도 겹쳐졌다.


남편이 출장을 가고 없었던 어느 날, 진료실에서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밤새 죽고 싶은 충동이 강해져서 힘들었다고. 그래서 '지금 참고 잠들면 내일 병원에 갈 수 있어. 오늘만 참으면 돼.' 그런 마음으로 겨우 버텼다고. 그렇게 말하고 나서 선생님을 바라보니 선생님은 여전히 '그랬구나.' 하시는 표정이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걸까. 선생님은 나를 충분히 걱정하고 위로해 줬으면 좋겠는데. 지금 나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아는 이 사람만큼은, 나를 좀 더 걱정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원하는 만큼 채워지지 않자 내 안에 불만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를 걱정해 주시지 않지? 내가 좀 더 위험해지면 나를 걱정해 주시려나?' 비뚤어진 마음이었다. 위험해지고 싶었다. 내가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지고 아파지면 나를 걱정해 주실 것 같았다.


이 마음 또한 진료실에서 이야기했다. 일종의 복수심처럼 느껴진다고도 말했다. 이해받고 싶은 절실함이 분노로 변하면서 생긴 뒤틀림이었다. 선생님은 그 화를 더 이야기하라고 하셨다. 내가 바라는 지점이 어디인가, 그 분노 속에서 더 풀어보자고 하셨다.


현재 치료의 방향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짚어주셨다. 우리는 정신분석적 치료를 하고 있기 때문에, 치료자가 내담자의 말에 최대한 반응하지 않고, 개입하지 않고, 치료자의 자기 노출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그게 전이를 이끌어 내고 내담자의 마음을 분석하는 데 필요한 방법이라고. 걱정과 같은 치료자의 주관적 표현을 왜 아끼는지 설명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걱정을 하지 않을까요? 말로 하지 않아도 이 사람이 나를 걱정하고 있구나, 아니구나는 행동과 분위기에서도 느낄 수 있지 않나요?"


- "말로 하지 않는데 어떻게 알죠...? 그리고 선생님께는 어차피 내가 여러 환자 중 한 명일 것이고, 그만큼 나에게 쏟을 관심과 시간이 없을 것이고, 나보다 위험한 상황인 환자도 분명 있을 테니, 나의 이야기가 특별히 걱정스럽게 들리지는 않겠다 여겼어요."


"걱정스러운 이야기에는 당연히 걱정을 하죠. 다른 환자와 비교를 해서 걱정을 하고 안 하고, 그러지는 않죠. 김마음 님은 실제로 위험한 시도를 계속하시기도 했고요."


- "그렇지만 말로 하지 않으시면 저는 모르잖아요... 이제 그런 생각이 들어요. '복수하고 싶다. 안심하게 만들고 나서 배신하고 싶다. 나를 걱정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해 화를 표현할 수는 없으니, 그냥 행동으로 저질러야겠다.' 그런 생각이요."


"화는 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인가요? 그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면 나에게 돌아오기 쉽겠어요. 밖으로 향하지 못하는 그 분노, 원망스러움이 자꾸 나에게 돌아오는 것 같아요. 척도 검사에는 매번 화 안 나 있다고 하시는데, 사실 화 많이 나 계신 것 같아요. 그리고 화를 내면 이 관계가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계속하시는 것 같아요."


정곡을 찔렸다. 내가 화를 내면 지금까지 쌓아온 치료자와 내담자의 관계가 끝날 것이라 생각했고, 나의 화를 표현하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화를 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화는 계속 내 안에서 화살이 되어 나를 찔렀다.


이건 내가 병원이 아닌 밖에서도 늘 반복하던 패턴이다. 화를 내야 할 사람에게 내지 못하고, '나만 참으면 돼. 나만 참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하고 넘기곤 했다. 그 화는 쌓이고 쌓여 계속 나를 찔러왔다. 친구에게 화가 나도, 부모님께 화가 나도, 선생님께 화가 나도, 심지어 회사에 화가 나도, 나는 언제나 나를 공격했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못나서, 내가 뭔가 잘못해서라고 생각했다.


왜 분노는 나에게 이렇게 공포스러운 감정이 되었을까. 나는 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을 이렇게나 주저하게 되었을까. 나의 분노가 건강하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




나는 1월 한 달간 또 약을 모았다고 고백했다. 이걸 어떻게 쓸까 고민 중이라며 원망인 듯 협박인 듯 애매한 말들을 뱉어냈다. 나의 감정 섞인 말에도 선생님은 차분히 대답하셨다.


"중요한 건 행동하는 게 아니라 계속 말하는 거예요. 그 복수심을 행동으로 옮기지 말고 말로 표현하세요."


그날부터 처방에 수면제가 빠졌다. 날짜 맞춰서 먹고, 남은 수면제는 꼭 가져오라고 하셨다. 행동으로써 끝내지 말고 대화로 치유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달래셨다. 나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위태로운 상태로 1월 말 긴 연휴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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