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싶은 마음, 살아지고 싶은 마음

내게 필요한 건 안전지대

by 김마음


2025년 2월 초는 내게 유난히도 힘들었다. 회사는 3월부터 새로운 체재가 시작되기 때문에, 돌아가려면 지금 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나를 강하게 압박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가서 내가 다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자리에 놓일 수 있을까?' 싫었다. 생각만 해도 다시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렇다고 가지 않는 게 더 편한 것도 아니었다. 또다시 주저앉았다는 사실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려웠다. 어떻게 생각해 봐도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아무 선택도 못 하겠어요. 그냥 사라지고 싶어요."


주치의 선생님은 늘 한 번에 3개월씩만 진단서를 끊어주셨고, 나는 복직이냐, 휴직이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몇 번을 겪은 과정인데도 이 앞에만 서면 늘 숨이 막혔다.


내 손으로 내 미래를 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지금’의 나를 기준으로 ‘앞으로’의 삶을 정해야 한다는 게 벅찼다. 나는 아직 지금을 견디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인데. 작고 사소한 결정에도 큰 힘이 필요한 나에게, 이 고민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


이 무렵, 또 한 가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있었다. 연말에 있었던 갈등이 요인이 되어(오늘 밤 내 삶이 고요히 멈추길) 나는 더 이상 시부모님을 뵙고 싶지 않았다. 남편도 나의 마음에 공감하며 이번 설에는 가지 말라고 말했다. 본인이 혼자 다녀오겠다고. 그동안 우리의 불만이 무엇이었는지, 얼마만큼 힘들었는지, 당신들께서 우리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는지, 다 전달하고 오겠다고.


그렇게 1월 말 설날, 나는 남편의 뜻대로 정말 시댁에 가지 않았다. 이건 나에게 있어 사고였다. 사고를 친 것이었다. 살면서 반항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저질러 버렸다. 사고를 치는 데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도 내가 직접 싸울 용기가 없으니 남편을 대신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제대로 된 용기는 내지 못한 것이다.


전장에 나갔다 돌아온 남편은 이야기가 잘 끝났다고 말했다. 우리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하셨고, 이해하기로 하셨다고. 그동안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고 했다. 나는 일단 혼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맥이 조금 빠졌다. 어쩌면 이 싸움이 파국으로 번지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모든 걸 포기하시고, 화를 내시며, 다시는 보지 말자 하시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뜻을 받아들이시겠다니.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죄송하다고 말하며 굽히고 들어가야 하나?


이런 걸 고민해야 하는 상황도 싫었다. 고민하고 나아갈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자체가 힘겨웠다. 어떤 방향으로도 잘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진료실에서 내내 울었다. 아무 선택도 할 수 없다고. 나를 괴롭게 하는 이 모든 상황이 싫다고.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치료 의지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마음으로 병원을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이틀 전에도 자살을 생각했는데, 병원에 한번 더 오고 싶다는 생각으로 겨우 버텼다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나의 전이 감정은 멈추지 않은 모양이다.


"자살 시도를 멈춘 이유 중에 하나가 저를 보고 싶어서라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해서 그게 그 순간에 멈출 수 있는 힘이 됐을까요?"


- "그냥, 보고 싶었어요. 한 번은 더 뵈었으면 좋겠다. 다음, 또 그다음. 그게 계속 이어진 거예요."


잠시의 침묵이 흐른 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드는 생각 중에 하나는, 여기가 그래도 무섭지 않은,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끼시지 않나 싶어요. 여기선 그래도 하고 싶은 말씀들 많이 하시잖아요. 밖에서는 삼키면서 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영역을 더 넓혀가는 거예요. 지금 집에 있을 때는 그런 공간이 별로 없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전부 다 두렵고,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치료실에서처럼 안전하다, 편안하다 느끼는 공간을 더 넓혀가는 게 우리의 치료 목표 중 하나예요."


나에게 진료실은 심리적 안전지대였다. 어떤 말을 해도 모두 받아들여지는, 틀릴지, 혼날지 걱정하지 않고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공간에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물론 남편이 항상 나를 걱정하며 지켜봤다는 걸 알지만, 그 순간엔 진료실이 떠올랐다. 이 감정은 남편의 자리를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얼마나 안전한 공간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완전한 안전지대는 내가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특히나 없었던 것이다. '오늘은 또 무슨 이유로 부모님께 혼이 날까' 걱정하며 눈치를 봐야 했고,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내 생각을 자유롭게 말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시절의 내가 이런 안전지대를 경험했다면 지금처럼 마음이 무너지는 시간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시부모님과의 일에서 김마음 님은 어느 정도 원하는 걸 얻으셨잖아요. 내가 내 주장을 얘기하고 불만을 얘기한다는 게 잘못된 게 아니구나, 받아들여질 수도 있구나. 어쩌면 그동안 원해왔던 경험을 하신 거잖아요. 진료실 밖에서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구나, 그걸 기억하세요. 시도하고, 경험하고, 기억하고. 그걸 반복하는 게 중요하겠어요."


용기를 내서 시도하고, 경험하고, 그 성공 경험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물론 실패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살다 보면 결국 성공하는 경우가 더 많을 거라고, 그렇게 성공 경험이 쌓이다 보면 또다시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날 거라고.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진심을 담아 나에게 부탁하셨다.


"말씀드렸지만 수면제, 모으지 말고 잘 드세요. 잘 못 자면 용기가 더 안 나요. 잘 자야 그런 용기를 낼 의지도 생겨요. 약 드시고, 남은 수면제 꼭 가지고 오세요. 아시겠죠?"


...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무거웠다.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해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질문 속에 갇혀 있었다. 어느 쪽으로도 마음을 기울일 수 없었다. 그저, 계속 끝을 떠올렸다. 간절히 없어지고 싶었다.


그리고, 이 상상이 나를 또 어디론가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