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하셔야겠어요, 입원하세요

by 김마음


언젠가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그렇게 위험한 상상을 하면서, 왜 마치 여행 계획 세우듯 즐겁게 말씀하시냐고. 본인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생각인데 왜 두려워하지 않으시냐고. 다른 건 다 무서워하면서, 왜 정작 진짜 무서워해야 할 건 안 무서워하시냐고.


나는 정말 그런 생각이었다. 내게는 여행 혹은 휴가 같은 것이었다.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기대되는 일이었다. '아, 이제 아무도 나를 괴롭힐 수 없는 건가? 행복하겠는데?'


...


마지막 진료 이후 며칠 동안 마음이 계속 바닥으로 떨어졌다. 삶을 붙잡을 이유는 점점 희미해졌고, 마침내, 나는 준비를 마쳤다.


2025년 2월 9일, 남편은 아침 운동을 하러 밖으로 나갔고, 내게 때마침 적절한 기회였다. 마지막 인사를 적은 종이도 화장대 위에 올려두었다. 욕조에 물을 받으며 와인을 홀짝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꽤 즐거웠던 것 같다. 전혀 슬프지가 않았다.


와인을 반 병 정도 비운 뒤, 모아뒀던 약을 모두 삼키고,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몸을 담갔다. 따뜻했다. 이렇게 잠들면 다 끝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편안했다. 이번에는 성공할 것 같았다. 술기운 덕분인지 기분도 좋았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서서히 잠에 빠져 들고 있었던 그때, 남편이 소리를 지르며 욕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


2월 10일, 여느 때처럼 응급실에서 다시 깨어났다. 이번에는 정말 깨어나지 않길 바랐는데, 실패했다.


새벽에 집으로 돌아와서 약 기운으로 자다가, 오후에 예약된 병원 진료를 갔다. 주치의 선생님께 어제 세 번째 시도가 있었음을 얘기했다. 이번엔 많이 위태로웠고, 남편이 많이 놀랐다는 얘기도 함께. 아마도 남편이 빠르게 와서 날 구하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이번에도 동일하게 물으셨다. 다시 시도할 생각이 있는지. 나는 '기회가 된다면'이라고 말했다. 혹시 몰라서 약도 일부 남겨뒀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선생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이 정도면... 입원합시다. 입원하셔야겠어요. 입원하세요."


이번에 하신 입원 권유는 권유라기보다 명령에 가까웠다. 자살 시도 환자 중에서도 시도 후 자살 사고가 계속 남아있는 환자는 고위험군이라고 하셨다.


"1년 사이에 위험한 시도를 벌써 3번이나 하셨고,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지금은 잠시 입원해서 마음을 추스르고 나옵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안전하게 보낸다고 보장할 수 없겠어요."


이렇게 다급한 선생님의 목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말씀하시는 와중에도 나는 선생님께 진단서를 요청했다. 다음 주에 출근해야 하니까 '정상 근무 가능. 일상생활 지장 없음' 내용이 담긴 진단서를 써달라고. 선생님은 나의 요청을 거절하셨다. 처음으로 나에게 뭔가 안 된다고 말씀하신 순간이었다.


"아뇨, 지금 그런 상태 아니신 것 같은데요. 지금은 복직 안 될 것 같아요. '정상 근무 가능' 그런 진단서가 왜 필요하세요? 정말 돌아갈 마음이 있으세요? 당장 어제 시도를 하셨는데, 일주일 뒤에 회사로 돌아갈 마음이 있으세요? 아닌 것 같아요. 이러고 집에 돌아가시면 분명히 다시 시도하실 것 같아요."


내가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면, 복직일을 기다리는 일주일 새에 또다시 시도할 거라고 판단하신 것 같았다. 마침 그 사이 남편의 출장도 잡혀있었다.


"진료 의뢰서 써 드릴 거예요. 의뢰서 가지고 오늘 아산병원 응급실이라도 가시고, 안 되면 다른 대학병원 보호병동 있는 쪽으로 꼭 알아보세요. 남편분 곧 출장 가신다고 알고 있는데, 출장 출발하시기 전에 반드시 입원하셔야겠어요. 지금 너무 위험해요."


나는 내가 왜 입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입원할 정도의 환자가 아닌 것 같다고. 나 지금 멀쩡하다고. 그런데 다시 시도 안 할 자신 있느냐는 질문에는 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끊임없이 나를 설득했다.


"일단 지금은 입원을 합시다. 입원해서 고비를 좀 넘깁시다. 그거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어 보여요. 지금으로써는 필요해요. 남편분께 전화해 주세요. 제가 상황을 자세히 설명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통화 연결을 꼭 해야 하냐고 여쭤봤는데 해달라고 하셨다. 남편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입원 치료의 필요성과, 반드시 보호병동으로 동의입원 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다급하게 설명하셨다. 통화를 마친 후에도 나는 계속 입원하기 싫다고 얘기했고,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나를 설득했다.


"이건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저를 믿고, 입원해 주세요."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마음을 건드렸다.


'이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정말 선생님이 원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본인을 믿고 입원해 달라고?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수 있나? 정말 선생님을 믿고 한번 가 볼까?'


...


진료 의뢰서를 들고 서울아산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응급실도 줄이 길어서 당장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회사 상담 선생님께 연락드렸다. 강북삼성병원을 연결해 주실 수 있다고 하셨다. 바로 다음날인 2월 11일,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님 외래 진료가 잡혔다.


나는 집에서 출발하기 전까지도, "나 입원 안 할 거야. 이제 괜찮다고 얘기할 거야. 나 진짜 멀쩡해진 것 같아." 이야기를 계속 읊었고, 남편은 병원 가서 결정해 보자고, 일단 교수님 진료 보고 나서 결정하자고 다독였다.


그리고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교수님은 나에게 입원하라고 말씀하셨다.


"입원하셔야겠어요. 지금 주치의 선생님은 더 이상 약을 쓸 수 없다 하고, 약을 주면 자꾸 모으니까, 회사 상담 선생님은 상담이 더 이상 안 통한다 하고, 김마음 님 상태가 총체적 난국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잠시 들어와서 쉬다 간다고 생각하세요. 폐쇄병동은 환자분들이 못 나가도록 막는 곳이 아니라, 외부인들로부터 환자분들을 지켜주는 곳인 거예요.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고 푹 쉬다 가세요. 기본 검사 하고 병동 올라가시면 됩니다."


자의 반 타의 반 나는 입원을 당했다. 내 발로 걸어가긴 했지만, 반은 끌려서 들어간 입원이었다. 믿기지 않게도, 정말 하룻밤 사이에 정신병원 보호병동 환자가 되었다.


이렇게, 나의 정신병동 입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6/6(금) 현충일 하루 연재를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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