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나에게 끈끈함이란 없는 그냥 바운더리였다.
가끔 가족애가 뛰어난 친구들을 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하고 느껴지기도 했다. 대학교 기숙사에 살 때,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집에 가야겠다는 룸메이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고? 매일 전화 통화를 해야 한다고? 통화는 일 있을 때만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집은 그게 익숙했다. 시시때때로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 떠드는 걸 잘 못했다. 부모님은 내가 알아서 잘 살겠지 생각하신 거 같고, 나도 그냥 부모님이 잘 계시겠지 생각만 했다.
사회에 나오고, 나이가 들면 조금 달라지려나,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도 조금은 애틋해지겠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와 다를 게 없었다. 궁금하지 않았고 애틋함이 없었다. 원래 통화를 자주 하지 않아서인지, 어쩌다 가끔 통화를 하면 어색하기까지 했다. 휴대폰 화면에 뜨는 엄마 또는 아빠를 보고 받을지 말지 망설인 순간이 많다.
그렇게 우리는 친한 듯, 서먹한 듯 애매한 가족이었는데, 결혼하면서 만나게 된 시댁은 우리 집에 비해 끈끈함이 강했다. 가족끼리 안아주는 걸 좋아하셨고, 자주 통화하고 싶어 하셨다. 그리고 통화가 끝날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게 부담스러웠다. 우리 엄마, 아빠랑도 잘 안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하길 바라시는 시부모님이 귀찮았고, 사랑한다는 말에 나도 똑같이 응답해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어찌어찌해서,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시부모님과 우리 부모님께 공평하게 전화를 드리고 있다. 결혼 6년 차인 지금도 실행하는 중이다. 매주 일요일 8-9시쯤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한다. 나 혼자 떠들지 않아도 돼서 좋다. 나 혼자라면 도저히 전화로 할 얘기가 없는데, 남편과 같이 하기 때문에 그나마 유지되고 있다. 사실 내 마음 같아서는 그만하고 싶다. 별일 없이 통화해야 하는 게 너무 귀찮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좋아하시니 그걸 맞춰드리려 노력하는 중이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렇게 가족애가 없을까 늘 의문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는 부모님께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부모는 어린아이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아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쏟아 보살펴 줄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사랑으로 대하기보다, 매섭게 혼내고 감싸주지 않는 분들이셨다. 사랑했다고 하시지만 내가 기억하는 부모님은 별로 그렇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셨기 때문에, 나는 그에 대해 응당 애정을 가지고 감사하며 효를 행해야 한다.
이게 참 모순적이다. 애정이 자라날 시간이 없었는데, 나는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왜지?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원망을 받겠지? 왜 원망을 받게 되지? 왜 불효자식이 되지?
나에게 의무만을 던져주시는 존재들이었다. 내가 느끼기로는 늘 조건부 사랑이었다. 이걸 잘하면 이만큼 예뻐해 줄게, 저걸 잘하면 저만큼 예뻐해 줄게. 그래서 나는 항상 아등바등해야 했고, 밝아야 했고, 웃어야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사랑을 나눠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온전히 얻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한 나의 발버둥이었다.
칭찬과 애정의 결핍 속에 자라난 나는 지금도 그것들에 목이 마르다. 유독 칭찬에 집착한다. 하지만 막상 그것들이 나에게 주어졌을 때, 그것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부정한다. 나는 그걸 받을 수 없다고. 받을 자격이 없다고.
'나는 쉽게 칭찬을 받을 수 없는 존재야. 나에게 칭찬이 주어진다면 의심해봐야 해. 내가 정말 잘해서 주어진 칭찬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즐기기보다는 그다음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해. 더 잘해야 해. 그래야 나도 사랑받을 수 있어.'
선생님은 내 안에서 '더 잘해야 해.'라고 몰아붙이는 목소리가, 원래부터 나의 것이 아닌 아버지로부터 받은 목소리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규칙이 나에게 각인되어, 이제는 나의 목소리로 나를 질책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규칙이었던 그것이, 나의 삶에도 규칙으로 자리 잡아버린 것이다. 칭찬과 애정을 갈구했지만 충분히 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나 자신에게 뿌리 깊게 심어놓은 습관인 것이다. 일종의 세뇌였다.
원래부터 내가 이렇게 나를 몰아붙이는 사람은 아니었을 텐데, 어린 시절 내 안에도 분명 해맑은 어린아이가 있었을 텐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의 욕구를 얘기하지 못하고, 부모님의 기대에만 부응하며 순응적으로 살아가는 아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나 똑같이 그런 어른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이제는 나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두 배로 늘어났다. 부모님과 시부모님.
부모님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해야 한다는 믿음,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드려야 한다는 강박. 이런 것들이 나에게 끔찍한 감옥이 되었다. 다 버리고 탈출하고 싶을 만큼 싫어졌다. 나에게 의무만을 지우는 내 주변의 모든 이가 싫어졌다. 떠나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아무 의무도 없는 곳으로.
가족은 나에게 그렇게 무겁고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서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동안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나 자신을 또 질책했다. 가족을 향한 분노가 끝내 밖으로 향하지 못한 채, 내 안에서 고스란히 나를 찔렀다.
내가 아프게 된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