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에 갇힌 여행, 쉴 수 없던 나

by 김마음


2024년 9월, 미리 예정되어 있던 호주 여행을 떠났다. 여행 자체는 즐거운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숙제가 있었다.


첫 번째 시도('약을 삼키고 나서야, 말할 수 있었다' 참고) 이후, 나는 합창단 활동에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여전히 음악총괄 역할을 맡고 있었고,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있었지만, 좋아서라기보다는 '해야 하니까' 마지못해 하는 일이 더 많았다. '내가 하기로 한 일이니 끝까지 마무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고통스럽지만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끝을 향해 달리던 중이었다.


그 무렵, 맡은 일 중 하나 밀리고 있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연습노트'였다. 연습노트는 매주 토요일 3시간의 연습시간 동안 지휘자님 말씀을 모두 받아 적는 일이었다. 즉 연습일지다. 어느 누가 시킨 일은 아닌데, 연초부터 스스로 계획해서 진행하고 있던 과제였다. 음악총괄 업무를 맡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시간 동안 지휘자님의 말씀을 모두 손으로 받아 적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매주 3시간의 연습을 녹음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그 녹음 파일을 재생해서 들었다.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반복해서 들으며 곡별, 파트별 지휘자님의 지시사항을 텍스트로 모두 받아 적었다. 그리고 받아 적은 텍스트를 정리해서 합창단 카페에 공유했다. (여름 연주회까지는 지시사항을 악보 파일에 일일이 표기까지 해서 공유했는데, 그건 도저히 더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매주 연습노트를 정리하다 보면 대여섯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아마도 나의 강박증 때문에 작업이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확인강박이 발동되어, 한 글자라도 놓칠까 봐 뒤로 돌려 다시 듣고, 다시 듣고를 반복했다. ('새로운 질병코드를 얻었다, 강박장애' 참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주말이 다 사라져 있었다.


시간도, 품도 참 많이 드는 일이었다. 날이 갈수록 지쳤다. 내가 시작한 일이라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그저 힘들 뿐이었다. 징징거릴 수도 없었다.


합창단 활동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삶의 의욕이 떨어지면서, 내가 시작한 이 과제도 다 관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하던 일을 중간에 멈추는 건 또 나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무슨 대단한 사람으로 과대포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을 기회 삼기로 했다. 마침 호주 여행은 일정도 많지 않았고, 비행기 좌석도 편안한 비즈니스석이었다. 약 두 달치 양이 밀려 있었는데, 비행 중, 여행 중간중간, 자기 전 조금씩 쓰다 보면 왠지 숙제를 모두 끝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0240908_223452_1.jpg 인천-시드니행 비행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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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가 한눈에 보이는 호텔이었다. 이 뷰를 보며 연습노트를 쓰는 기분이란...
SNOW_20250512_144821_596.jpg 꾀죄죄한 내 모습도 한 장


그리고 나는, 계획했던 대로 그렇게 호주에서 숙제를 마쳤다.


그곳은 햇살이 쨍했고 하늘은 끝없이 맑았지만, 나는 그저 고단한 숙제를 껴안고 있었다. 낯선 거리를 걸어도, 멋진 풍경을 마주해도, '아, 나 들어가서 일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멈추면 안 된다고 믿었던 나의 책임감은, 심지어 여행지에서조차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풍경은 사뭇 달랐지만, 마음은 여전히 한국에 있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이렇게나 끊임없이 들볶는다. 이렇게 해서 누가 알아준다 한들, 그게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내 삶에 어떤 플러스 요인이 되는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안 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하나도 모르면서. 모르면서.


모르면서, 나는 나 자신을 괴롭히는 걸 멈추지 못한다. 끝까지 밀어붙이고, 몰아세우고, 다그친다. 도망칠 틈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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