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이상하게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내가 마치 이 여리고 약한 아이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었다. 목을 조르거나 찌르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치기도 했다. 원치 않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2024년 9월, 진료실에서 이런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공격적인 사고 말고도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는지 물으셨다. 그리고 평소에 '이건 내가 생각해도 과하다' 싶을 만큼 집착하는 행동 패턴이 있는지 물으셨다. 나는 청결 강박이 조금 있다고 말했다. (사실 조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추가로 확인 강박도 약간 있다고 말했다.
언젠가부터 집에 들어오면 밖에서 들어온 모든 물건에 알코올을 뿌려 닦았다. 하루 종일 손에 쥐고 다닌 휴대폰과 전자기기는 당연했고, 서점에서 산 책 한 권도 마찬가지였다. 소독하지 않으면 집 안에서 읽을 수 없었다. 마트에서 산 물건도 알코올로 모두 닦아야만 냉장고에 넣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생수를 12병 샀다면 12병의 생수를 전부 알코올 뿌려서 닦고 있는 거다.
바로바로 세척이 어려운 가방, 코트, 그리고 매일 밖에서만 사용하는 개인물품의 경우 어느 한쪽 '더러운 존'에 몰아놓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그 물건들을 다시 만지지 않는다. 만약 가방 안에서 뭔가를 꺼내 확인해야 한다면, 그 작업이 끝난 이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
더러운 손으로는 집안 어느 것도 만질 수 없고, 외출복 상태로는 집안 어느 곳에도 앉을 수 없다. 오자마자 외출복 일체를 얌전히 벗어두고, 깨끗이 씻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어야만 집안에서 생활할 수 있다. 결혼 후 우리 집에서 정해진 규칙이었다. (남편은 이렇게 피곤한 룰을 가진 나에게 모두 맞춰주었다.)
만약 집에 손님이 다녀갔다면, 손님들이 모두 가신 후에 손님이 앉았던 곳, 만졌던 물건, 손잡이, 스위치 등 모든 접촉면을 닦았다. 소파는 가죽 클리너로, 나머지 것들은 알코올 뿌려서. 이런 힘든 뒷정리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손님 초대를 좋아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집에 다녀가신 손님들께서 미안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편하게 놀러 와주세요. 청소는 제가 잘할게요. 조금만 할게요.)
어떤 날은 이런 나 자신에 지쳐서 울기도 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멈추는 순간 불안해졌다. '더러운 무언가가 집 안 여기저기 퍼질지도 몰라. 소파에, 손잡이에, 스위치에, 그리고 결국에는 침대에 묻게 될 거야. 그건 절대 참을 수 없어.'
나는 결정적으로 침대가 더러워지는 게 너무 싫었다. 침대의 청결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침대는 무조건 깨끗해야 해. 침대가 더러워지면 내 몸도 더러워져.'
어디서부터 비롯된 생각인지 모르겠다. 결혼 전의 나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아무리 고민해보려고 해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 불편해도 잘 참고 살았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어느 새부터 이런 불편함, 정확히는 불안함을 참지 못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정신과적으로, 원치 않는 불안을 유발하는 생각이나 충동은 '강박사고'라 하고, 강박사고에 의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고 느끼는 행동 또는 정신적 행위를 '강박행동'이라 말한다.
나는 '집이 더러워질지도 모른다'는 강박사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 모든 걸 닦는 강박행동을 실행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강박사고가 이것 하나뿐은 아니지만, 이게 가장 강하다.
선생님은 "집이 조금 더러워지면 어떤가요? 그게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칠까요? 그게 나에게 큰 질병을 가져다줄까요?"와 같은 질문을 하셨다. 나는 명확한 답을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게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선생님은 '쉽게 따라 하는 강박증 인지행동치료'라는 책을 소개해주셨다. 책에서는 '인지행동치료(CBT)'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노출치료를 따라 해보라고 권하셨다.
강박사고를 일으키는 상황에 일부러 노출되어 보고, 그 상황을 회피하려는 강박행동을 의도적으로 막는 것이다. 정확히는 ‘노출 및 반응방지 기법(ERP)', 영어로는 Exposure and Response Prevention이라고 부른다.
노출 및 반응방지를 집에서 혼자 자주 연습해 보라고 하셨다. 이렇게 '인지행동치료'를 지속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약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 이후로 아주 작은 것부터 조금씩 연습해보고 있다.
외출복 상태로 소파에 앉아 보기, 앉았다가 일어나서 닦지 않기, 실내복 상태로 방바닥에 앉아보기, 앉았다가 일어나서 옷 닦거나 세탁하지 않기, 밖에서 들어온 물건 중 일부를 닦지 않고 방치해 보기, 혹은 냉장고에 넣어보기 등 작고 사소하지만 나에게는 큰 불안들을 참기 위해 노력해 봤다. 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실 강박이 다 없어지지는 않았다. 선생님도 아직은 청결 부분에서 높은 수치가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F429 상세불명의 강박장애'라는 새로운 질병코드를 얻었다. 정신과 질병코드 콜렉터가 된 것만 같다.
나무위키 강박장애 - 5.3 청결강박 이 링크의 전체 내용과 아래의 예시가 나의 사고 패턴과 매우 유사하다. (똑같다.)
손 씻기 강박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은 패턴으로 나아간다.
1. 자신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물체가 있다. (대표적으로 공용 손잡이나 출입문 등)
2. 내가 저 물체를 만지면 저 물체에 있는 오염물이 내 손으로 묻는다.
3. 그 손으로 개인물품을 만지면, 개인물품에도 오염물이 묻는다.
4. 그러므로 귀가해서 내 몸을 청결히 씻더라도, 내 개인물품에는 오염물이 존재한다.
5. 기껏 씻은 몸으로 개인물품을 만지면, 거기에 붙어 있는 오염물이 다시 손으로 묻는다.
6. 옮아온 손으로 자기 몸을 만지면 만진 부위에도 오염물이 묻는다.
한마디로 외부의 접촉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오염물이 귀가했을 때의 나에게도 묻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