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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 애순, 그리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귤

<폭싹 속았수다>에서 전하는, 그리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전하는.

by yannseo Mar 25. 2025

백문이 불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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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로 인해 남녀노소 불문하고 보는 이들의 눈가가 마를 날이 없어 보입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한 소녀와 소년의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눈물을 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우리가 살아왔던 순간들과 맞물리는 부분이 많기에 더욱 와닿기 때문이죠. 그래서 드라마라 하더라도 주인공이 울고 웃는 모습에 덩달아 같이 울고 웃게 됩니다.

게다가 인물들의 감정선, 그리고 그 감정선을 표현하는 드라마 속 요소들이 모여 감동이 배로 몰려옵니다. 섬세하면서도 센스있는 요소들이라서 슬픔과 기쁨을 억지로 유발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합니다.

이들의 제목도 잔잔하게 감정을 건드립니다. '폭싹 속았수다'는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으로, 이를 그대로 한국 넷플릭스 제목으로 사용한 반면, 넷플릭스 해외 타이틀은 제주도 방언과는 색다른 표현으로 의역하였습니다.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 살다가 감귤이 생기면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a lemonade out of lemons (삶이 너에게 레몬들을 줄 때, 레몬에이드를 만들어라)'라는 미국 철학자 엘버트 허버드의 명언에서 영어권 제목이 탄생했습니다. 레몬은 영어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죠. 경제적으로는 질 낮은 제품을, 감정적으로는 우울과 같은 맥락을 보여줍니다. 드라마는 레몬 대신 제주도를 고려해 감귤의 품종인 'Tangerines(탄제린)'을 넣는 식으로 변형하였는데요, 애순 역을 맡은 아이유는 이에 대해 ”인생이 떫은 귤을 던지더라도, 그걸로 귤청을 만들어서 따뜻한 귤차를 만들어 먹자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레몬 대신 넣었기에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감귤이지만, 이 제목에서 만큼은 왠지 모르게 더 씩씩하고 따뜻하기만 합니다. 백마디의 말로 분위기와 감정들을 설명하는 것보다 단어와 생김새 하나로 모든 것이 표현되는 과일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애순이와 관식이의 인생이 던져진 귤에 모두 녹아져 있는 것처럼 말이죠.



 아이유가 이야기하는 귤 비하인드는 마치 애순이가 화면 밖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 같습니다. 애순에게 있어서 그녀가 느껴온 떫은 귤들은 따뜻한 귤차가 될 소중한 버팀목이였을 것입니다. 애순이의 인생 자체라고 해도 될 것 같네요. 살면서 달고, 따뜻하고, 소소한 행복이라고 느끼게 해주거나 혹은 자신과 닮은 과일, 아니면 소중한 무언가가 우리 자신에게도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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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씁쓸하면서도 상큼한 과일은 쓴 맛 끝에 행복을 주는 레몬과 귤. 중의적인 특성 덕분인지 인생에 비유하기에도 딱 좋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과일, 라임오렌지도 말이죠. 제주도에는 애순의 감귤이 있다면, 브라질에는 제제의 라임오렌지가 있습니다. 바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그 제제와 라임오렌지 입니다.

느닷 없는 소설이야기에 뜬금스럽긴 하지만, 애순이의 삶을 보면 볼 수록 제제와 닮았다는 인상이 듭니다. 살아가는 환경이나, 성격이나, 방식에서 서로의 모습이 겹쳐보이곤 합니다. 귤과 애순, 그리고 라임오렌지와 제제, 이들의 관계를 새롭게 연결해본다면, 동서양을 막론한 또 하나의 메세지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Editor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기에 <폭싹 속았수다>를 보았고, 그 안에는 애순을 연기하는 아이유가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넷플릭스 제목에 대한 비하인드를 보며 감귤에 집중하게 됐고, 감귤의 상징성을 이해하려고 하니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과거 아이유의 '제제'라는 노래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네요. 비록 그녀가 제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다소 민감한 이슈가 함께 불거지기도 했었지만, 그러한 의도성 보다는 그녀가  정말 소중하게 여겼던 소설이기에 제제 또한 그녀에게 소중하고 각별했으리라 봅니다. 소란스러웠던 그때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아이유가 바라본 제제를 알고싶어졌습니다. 그렇게 그 소설을 다시 꺼내들어 보았고, 우연 아닌 우연으로 찾게 된 제제와 아이유, 그리고 귤과 라임오렌지의 접점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글을 적어 내립니다.














그들의 인생은 누가봐도 볼품없고, 누가봐도 떫다


 서울의 가로수길처럼, 제주도에도 일주도로 한복판에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울창한 가로수, 반듯하고 가지런한 가로수도 아닌, 하귤 나무들이 도로에 나란히 줄 지어져있습니다. 보기만해도 탐스럽고, 노오란 장식들이 걸려있어 한 껏 제주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죠. 하지만 아무리 귤이 달려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도 따먹지않을뿐더러, 오랫동안 버틴 하귤들은 길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어지는 게 일상입니다. 제주도민들도 건들지 않는 이 하귤은 단 맛은 커녕 신 맛만 100%라고 하네요. 너무나 떫어서 줘도 안가지는 하급 물건 취급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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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임오렌지나무 또한 브라질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가 브라질의 가로수 역할, 국가수 역할을 하죠. 다행스러운 점은 라임오렌지는 그곳에서 가장 스윗한 오렌지라고 불린다고 하네요. 그러나 열매를 맺기 전, 나무들의 모습은 작고 하찮을 뿐만 아니라 가시도 솟아있어서 참 볼품없어 보입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도 크고 튼튼한 망고나무와 일반 오렌지나무와 비교해 늙고 작은 라임오렌지나무를 '볼품없는 나무'라고 표현합니다.




 누군가에게 등한시 여겨지고 볼품없는 가치로 매겨지는 이들이 왜 한 작품의 타이틀이 되었을까요. 더군다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가장 스윗한 열매를 두고, 왜 하필 라임오렌지나무를 메인으로 두었을까요.







세상으로부터의 초대를 가로챈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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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순과 제제를 이어주는 가장 큰 동질감은 가난에서부터 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잃고, 양배추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애순은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장녀이기에 돈을 벌어도 그녀 손에는 한 푼의 돈도 쥐어지질 않습니다. 나중에 시집을 가려고 해도 은수저 하나 혼수로 마련할 수 없어 시댁이 달가워하진 않습니다. 시를 너무 좋아하는 문학소녀이지만, 대학에 들어갈 형편이 되질 않아 문학소녀의 인생이 아닌 식모의 인생을 걷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는 모든 것을 아이에게 쏟아붓죠. 보리콩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아이에겐 모든 보리콩을 다 주고, 자신은 다 푸고 남은 탄 밥을 먹는 모습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것도 포기하는 애순의 인생을 보여줍니다. 그녀에게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길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가난은 매몰차게 그 길들을 가로막았고, 그녀의 인생보다 가족들에게 눈을 돌리도록 했습니다. 이토록 매정한 가난은 제제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제의 아버지는 실직 상태이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는 공장에서 야간 노동을 하며 겨우 돈을 벌어왔어야 했습니다. 가난 때문에 형제들도 모두 힘든 상황을 겪고 있었고, 경제적인 형편으로 형제 중 한명은 다른 집으로 보내야 할 정도였습니다. 어린 제제는 부모님이 외출하는 동안 동생을 돌봐야했고,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는 이들의 형편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유일하게 모든 세상이 한 마음으로 축하하고 기념할 수 있는 날이라 사람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뻐하는 날입니다. 그렇지만 제제네에게만은 그 축하자리를 위한 초대장이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것도 사치였기 때문이죠. 평소와 다름없이 모두들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먹고, 빵만 조금 먹을 뿐, 면도도 하지 않고 자정 미사에도 가지 않아 마치 집안 분위기는 '죽음을 슬퍼하는 날' 같았습니다.


"그래서 난 아기 예수가 그냥 보이기 위해서만 가난한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해. 그 다음엔 부자들이 더 소용 있다고 깨달은 거야.... 이런 얘기 그만하자. 내가 한 말은 큰 죄가 될지도 몰라."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다섯살 짜리 자그마한 꼬마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기는 커녕, 자신이 믿던 예수를 위선자로 바라보는 형의 말에 아무말도 못한 채 체념할 정도로 가난한 그들이었습니다.







빼앗김과 제한적 인생


 가난도 서러워 죽겠는데, 세상은 이들의 속을 몰라줬던 것일까요. 자꾸만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가는 것도 모자라, 이상한 선입견이 그들을 가두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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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것만 다 가져가"

 10살도 안된 아이에게 풍족한 삶과 더불어 소중한 사람들까지 잃게될 위기에 여러번 빠지는 애순. 오죽하면 바다 앞에서 왜 다 뺏어가냐고 목놓아 울부짖기까지 할까요. 물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 모두 빼앗기지만, 그녀를 더 힘들게 한 건 세상이 만들어 놓은 시선들이었습니다. 과부 딸에서부터 시작해 가난한 처녀라 집안을 망하게 할 팔자라는 욕을 듣고 사는 건 디폴트. 그 시절이라 여성들에게 더욱 엄했던 터라 남자아이와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징계는 더 무겁습니다. 시를 아무리 잘 쓰고, 영리하고 똑부러지게 생활을 해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1등과 반장은 애순의 것이 되질 못합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녀는 단 1평자리의 아궁이 앞에서 불질을 해야했고, 하고 싶은 반장도, 받고 싶었던 1등상도 모두 양보해야 했습니다.






 제제에게도 그의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제제도 어린아이인지라 금쪽이처럼 사고를 치고 다녔고,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별난 말들을 많이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아이를 사고뭉치로만 바라보았고, 가족은 '악마새끼'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친구이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빠와 같은 따뜻한 사람, 포르투가는 제제를 지켜주었습니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제제에게 단비같은 존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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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나이가 많아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 저도 알아요. 얼마나 속상해하는지도 알고요. 엄마는 새벽에 나가요. 랄라 누나는 공부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공장에 나가요. 이런 일들은 모두 가슴 아픈 일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날 그렇게 심하게 때릴 것까지는 없었는데. 저번 크리스마스에 아빠한테 마음대로 때려도 좋다고 하긴 했지만 이번엔 정말 너무하셨어요." "맙소사! 너처럼 어린애가 어쩜 그렇게 어른들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나눌 수 있지? 너 같은 아이는 처음 봤다."

아빠도, 형제들도, 그리고 주변 이웃들도 이해해주지 못했던 제제의 마음을 그는 감싸안았습니다. 심지어는 기차에 달려들려고 하는 제제에게 "난 널 무척 사랑한단다, 꼬마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러니까 자, 이젠 웃어 봐야지."라며 꾸짖음보다 가족도 알려주지 못한 사랑을 전해주려고 한 그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포르투가가 몰고 있던 차를 달려오는 기차가 밀고 나가면서 포르투가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렇게 제제는 죽어가는 사람처럼 의욕을 잃고 절망에 빠져갑니다. 제제는 친구이자 아빠같은 아저씨를 한 순간에 빼앗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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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순과 제제의 인생을 보면 제 3자들은 그들이 딱하고 고단하고 떫고, 보잘 것 없이 비참해보이기만 할 뿐입니다. 정말 줘도 안가지고 싶은 인생으로 비춰지는 애순과 제제의 이야기입니다.  
















살민 살아진다



 그럼에도 살면 살아지는 것인지, 너무도 보잘 것 없고 떫은 인생이 계속 떫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곁에는 항상 쓴 맛을 없애줄 달달한 귤 한조각이 있었고, 다 자라지 않은 나무지만 든든한 친구같은 라임오렌지나무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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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히 말해, 세상에서 억까를 당하는 애순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던 이유는 알게 모르게 자신을 도와줬던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순이 어떤 상황에 있던 항상 애순의 편에서 같이 서줬던 해녀 이모들이 있어줬고, 너무도 가난한 집안이라 쌀도 부족했던 애순의 식구들에게 집주인 노부부는 3일치 쌀을 남몰래 퍼다 주었고, 그렇게나 원수같았던 새엄마는 툴툴 대면서도 애순의 심정을 이해하면서 뒤에서는 조용히 도와주었죠. 그리고 남의 편이 아니라 진정한 남편이 되어주는 관식이 있었기에 그 험한 난관들을 함께 이겨내면서 소소한 행복으로 그들의 삶을 채워나갑니다.



 반면, 제제의 가족은 가난에 대한 고통 때문에 지옥같은 삶을 살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서 행복을 찾는 애순과 다르게 제제는 가족에게 사랑보다는 매질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아이가 말을 안듣고 못난 행동을 할 때면 악마새끼라면서 죽을 때까지 매질을 합니다. 제제에게 세상을 알려주고 사랑을 맛보게 한 건 가족이 아닌, 바깥에서 만난 사람들과 선물 받은 라임오렌지나무였습니다.


 제제는 그의 담임선생님 세실리아 파잉의 꽃 병을 항상 주시했습니다. 제제 학교의 학생들은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꽃을 주곤 했지만, 유독 세실리아의 화병에만 꽃이 있질 않았었죠. 그래서 제제는 선생님을 위해 꽃을 꺾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세실리아에게 제제가 남의 집 정원의 꽃을 꺾었다는 신고가 들리고 세실리아는 그를 꾸짖으려 합니다. 제제는 자신이 꽃을 꺾은 이유를 솔직히 말하고 결국 세실리아는 그의 마음에 감동을 받으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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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하지만 병은요? 늘 비어 있어야 하나요?" " 이 병은 결코 비어 있지 않을 거야. 난 이 병을 볼 때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될 거야.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 거야. 내게 이 꽃을 갖다 준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나의 학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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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이고 엄격한 가정에서 자라는 제제에게 자유를 가르쳐준 아리오발두. 그는 길거리 음악가로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활보합니다. 어느 날 제제는 기차역 주변에서 그의 노래에 매료가 되었고, 어느새 그와 친해지면서 조수로 활동하게 됩니다. 제제는 그를 음악가 그 이상의 존재로 바라보며, 자유롭고 낭만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동경했습니다.





제제가 아리오발두에게서 배운 노래를 부르자 그의 아버지는 천박하다며 그를 죽도록 팼지만, 아리오발두는 제제와 함께 노래하며 그를 응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제를 진정한 친구로 맞아주었습니다. 매를 맞고 입원한 제제를 문병하며 가슴이 아파할 정도로요.






 그리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하이라이트인 제제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제제에게 현실에서 받지 못하는 사랑과 위로, 그리고 더 나아가 성장까지 함께하는 나무 그 이상의 존재입니다. 겉모습은 나무이지만 제제의 순수함 속에서는 '밍기뉴'라는 친구로 함께하죠. "또 네놈이구나"라며 한 소리하는 어른들로부터 벗어나 밍기뉴와 함께 대화하며 안식할 수 있었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단 하나뿐인 제제의 친구입니다.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제제가 잠시 현실을 잊고 천진난만한 아이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장난도 치고, 제제의 온갖 환상과 상상들을 받아줍니다. 제제의 조숙함을 별나게 보면서도, 어린아이답게 장난칠때면 매질을 하던 어른들과는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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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취직에 성공한 아버지는 이사를 하며 밍기뉴를 베어버리면서, 결국 제제의 동심은 영원히 막을 내리게 됩니다. 포르투가를 잃고 밍기뉴가 사라지면서 슬픔에 빠진 제제에게 아버지는 속도 모르고 라임오렌지나무를 하나 더 사주겠다고 하지만 제제는 " 내 라임오렌지나무는 이미 베어버렸어요."라고 이야기 합니다. 비록 하나뿐인 단짝, 유일했던 순수함이 아프게 사라졌지만, 고통과 동시에 어린아이의 눈이 아닌 현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며 완전히 성장하게 됩니다.



결국 강제적으로 빼앗긴 동심이지만, 그럼에도 밍기뉴는 제제의 성장을 끝까지 함께해준, 세상을 알게해준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제제가 조금이라도 어린아이로 남을 수 있게끔, 동화같은 시간을 선물해준 밍기뉴는 다섯살짜리에게는 버거운 조숙함을 잠시 내려놓도록 해주었습니다.














고되더라도 세상에 건네보는 자신의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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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트에 가면 흠집이 난 과일은 걸러지기 십상입니다. 그렇지만 흠집난 것들이 더 달달하고 비타민이 알차죠. 애순과 제제는 그러한 존재입니다. 살면서 던져진 떫은 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나무로인해 상처를 받고, 고되게 성장해갑니다. 죽고싶을정도의 절망들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순간 순간마다 찾아오는 달달한 시간들 덕분에 떫은 귤을 청으로 만들 힘이 났고, 보잘 것 없는 라임오렌지나무를 튼실하게 키워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힘으로 그들은 세상에 침을 뱉기보다, 소소한 위로와 행복을 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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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에게 건네진 달달한 귤 한조각들이 모여 애순에게는 살아갈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엄마가 되어 자신이 겪었던 세상이 아닌, 사랑으로 받았던 세상을 아이에게 전해주고, 아이의 세상이 되어줍니다.




"사랑하는 마누엘 발라다리스씨,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마흔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그리움 속에서 어린 시절이 계속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언제라도 당신이 나타나셔서 제게 그림 딱지와 구슬을 주실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나의 사랑하는 뽀르뚜가, 제게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구슬과 그림 딱지를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사랑 없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제 안의 사랑에 만족하기도 하지만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절망할 때가 더 많습니다. "




 밍기뉴를 잃고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완전히 현실로 들어선 제제는 자신의 철없을 시절을 강제로 빼앗김에 대해 분해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포르투가에게 맛본 사랑이 유일했고, 그 사랑의 힘이 너무 대단했기에 누구보다 사랑이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어른이 된 그는 아이들에게 구슬과 그림 딱지를 나눠줍니다. 비록 밍기뉴의 라임오렌지 열매는 보지 못한 채 이별을 했어야 했지만, 제제는 그 밍기뉴의 마지막 꽃을 이어받아 결국 가장 스윗하다는 라임오렌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라임오렌지의 달달한 조각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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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순과 제제, 이 둘은 시대와 장소 모두 다르지만, 결국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이유가 연기한 애순 역시 아이유가 제제를 바라보는 시선과 닮아 있었기에 더 비슷해보이는 지도 모릅니다. 제제가 건넸던 라임오렌지 조각은 국경을 넘어 그녀에게 와닿지 않았을까요. 제제가 각별했던 애순이. 이번에는 그녀가 제제가 되어 귤 한 조각을 세상에 건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귤 조각은 또 다시 누군가의 울림이 될 것이고요.

<폭싹 속았수다>가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유는 우리가 잊고 지낸 감정에 대한 그리움이 터져나왔기 때문일 듯 싶습니다. 핸드폰과 에어팟 이전에 세상 소리들이 백색소음이던 시절, 그 시절속에 우리는 '우리'로 존재했습니다. 함께 사는 이웃과 엘레베이터에서 인사라도 했던 우리, 동네 친구와 놀이터에서 놀다가 친구집에서 저녁밥을 함께 먹었던 우리로 말이죠. 파편화 되고 있는 사회는 우리가 아닌 '나'로서만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사람으로 인한 온기도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 느껴졌던 온도도 까마득합니다. 서로에게 따뜻하고 달달한 조각을 나눴던 '우리'의 시간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며 제제와 애순의 세계를 진득이 파헤쳐봅니다.  








Edited by. Han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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