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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쁨 Oct 20. 2022

상실

주부 -03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편은 아니다. 어쩌면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게 된 건 아마 여행으로부터 배운 건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이동하는 이는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일단 소유한 것들은 전부 중요하기 그지없으므로, 오히려 멈춘 이보다 소유한 것에 집착하게 된다. 사람들은 유목민족이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무소유’의 정신을 실현하기에, 농경민족을 지배했으며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유목민족은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동안에 많은 것들을 옮기지 못하므로, 늘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다닌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은 잃어버려서는 절대로 안 될 것들이다. 농경민족은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구하면 되지만, 유목민족은 그러지 못한다. 한 번 손을 떠난 물건은 영원한 상실이 되어 깊게 기억 속에 남는다. 그런 사달이 나는 것을 방지하려면, 언제나 철두철미하게 가방 안을 들여다보고 빠진 것은 없는지 체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기한 법칙을 지키지 않아서 그랬을까. 지금 내 손엔 지갑이 없다. 가방에도 물론 없다. 어디로 간 것일까. 옛말에 남자는 평생 세 번 운다는데, 이미 여기 오기까지 열 번은 더 운 것 같다. 그리고 11월 4일 오전 11시 26분. 열한 번째 울음이 터져서 그칠 순간을 모르고 있었다.




후지산을 뒤로하고 일본의 수도로 방향을 옮겼다. 도쿄에 도착하기 전에 요코하마라는, 한국으로 치면 인천쯤 되는 위성 도시가 일차 목표였다. 다음날 있을 변고에 대한 반대급부였을까…. 이상하리만치 운이 좋은 하루였다. 아침부터 후 지시에서 나오는 도중에 마음씨 착한 라이더 형님을 만났다. 타지마 씨는 60일 동안 일본 열도를 바이크로 일주했던 경험이 있는 회사원이셨다. 새벽부터 걸어서 땀 범벅이 된 나에게 이온 음료와 에너지 드링크를 사주시면서, 자기도 바이크가 고장 났을 때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도움과 더불어 격려를 보내주었다고, 너도 나중에 커서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호의를 베풀어 주라고 말씀해주셨다. 건네주신 2000엔 지폐를 꼭 쥐고 벅찬 마음으로 대답했다. かしこまりました!(알겠습니다!) 


새벽부터 걸어 후지시에서 동쪽으로 25km 떨어진 미시마시에 도착했다. 마침 미시마시에서는 축제를 벌이고 있었는데, 정확히 11월 3일, 가을 큰길 역참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대로변이 모두 축제의 현장이 되어, 형형색색의 축제 의상을 입은 마을 주민들이 기쁜 마음으로 가을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도로 중앙엔 *다시(山車)라 불리는, 신이 내려와 탄다는 가마가 커다란 기세를 자랑했고, 길거리 군데군데에는 원숭이 재롱잔치, 목공체험, 비눗방울 놀이 등등 남녀노소 즐길 거리가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다시 : 일본 축제나 가부키, 스모, 연극 등에서 휴식이나 막의 전환을 알릴 때 사용하는 나무토막 두 개로 이루어진 타악기. 


어린이들이 부모들과 나와 참 많이 보였는데, 함박웃음이 핀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핑크빛으로 물드는 기분이었다. 일본은 수도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매년 여러 종류의 다채로운 축제를 즐긴다. 우리나라도 자치단체의 주도하에 지역상권과 주민협력, 전통보존 등을 도모할 수 있는 축제들을 활발하게 기획한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미시마시 축제의 모습. 주민들이 다시라는 가마와 함께 박자목을 치며 흥겹게 행진하고 있다.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박자목(拍子木,ひょうしぎ)과 일본식 꽹과리(鉦,チャンチキ)가 절도있게 리듬을 타며 가마의 휴식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구경하고 있는데, 한 여자아이가 내게 빵이 담긴 봉지를 가져왔다.


알고 보니 저기 빵집 주인아주머니가 내 행색을 보고 여행자임을 알아차려, 아이를 시켜 요깃거리를 챙겨주신 것이었다. 나는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저편의 아주머니에게 묵례로 감사함을 표했다. 


짝짝짝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고, 주민분께서 챙겨주신 음식까지 먹으니 어엿한 축제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줄곧 동쪽을 향해 걸어가는 중에서 족히 한 시간은 축제가 펼쳐졌던 듯싶다. 마을을 벗어나 동쪽 산 중턱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여느 때고 마주하는 석양이 유난히 청아하게 모습을 비췄다. 비 오듯이 쏟아지는 땀을 닦고 지나온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노점상의 음식 연기와 알록달록 이어지는 축제 행렬이 새삼 유복해 보였다. 자, 아쉬움은 뒤로 하고 나는 내 길을 가자. 계속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등장했다. 여기서부터는 영락없는 산악지형인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야생동물이 많이 출몰하는 시즈오카에서 숲속 노숙을 할 수는 없었으므로, 적당한 굽잇길을 찾아 팻말을 흔들었다. 종일 쉬지 않고 걸은 것에 대한 보답인 걸까. 또 한 명의 귀인을 여기서 만나게 된다.



    

나오미 씨는 고등학생 아들이 있는 여성분이셨다. 일반적으로 여자 혼자 타고 있는 차는 좀체 멈추지 않는다. 저번에 유다이의 어머니는 아들이 함께 타고 있었기에 태워주셨던 것이고, 시고쿠에서 만났던 누나 둘도 혼자였다면 멈추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흔쾌히 히치하이킹을 응해주셨다는 건, 그만큼 도와주시려는 마음이 강했다는 방증인 셈이다. 


나오미 씨는 늦은 시간에 자기 아들뻘로 보이는 (난 성인이지만) 아이가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면서, 자세히 보니 심지어 외국인이라 차를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짐작하건대 도움을 청하는 내 모습이란 생각보다 동정심을 유발하는 모양이다…. 


어쨌든 창문을 내리고 행색을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이상한 사람은 아닐 것이란 확신이 들었단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어디를 향하는 중이신지 물었다. 그녀는 마침 요코하마로 가고 있다고 했다! 안도의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미시마시에서 요코하마까지는 꽤 거리가 되었다. 중간에는 하코네라는 온천으로 유명한 도시가 있었는데, 나오미 씨는 저녁도 먹을 겸 중간에 온천에 한 번 들러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텐잔온천(天山温泉)이라는, 한국에도 꽤 소개된 유명한 온천으로 향하기로 했다. 


나오미 씨와 나는 요코하마까지 가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자기 아들이 현재 폭풍 같은 사춘기를 겪고 있다면서, 자칫하면 엇나가지 않을까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나이는 비슷한데 벌써 아저씨같이 성숙한 내가 (칭찬인가…?)부럽단다. 


나는 아직 아이를 낳아보지도 않았고, 인생을 많이 살아본 것도 아니기에 감히 조언을 드려도 될까 싶지만, 인간은 살면서 어느 땐가는 꼭 방황하는 시기가 찾아오는 법이라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난 그 방황을 어릴 때 겪었고, 많은 친구와 선생님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부모님께도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런 방황의 시절로부터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다듬어갈 것인가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고, 또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방황한다. 망망대해에 부유하는 외로운 한 척 돛단배처럼, 정해진 목적지도, 영원한 동반자랄 것도 없는 넓디넓은 세상 속의 개인이 완벽한 경로를 설정하여 일직선으로 살아간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작위적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허술하고, 헐렁하며, 느슨한 존재다. 기계처럼 완전무결하고 계획적이며 획일화된 물체가 아니란 말이다. 그렇기에 때론 낭비도 필요하고, 비효율적인 선택도 나름의 의미를 지니며, 멍때리는 시간도 헛된 일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합리주의에 근거해 개인을 기계부품쯤으로 전락시키려는 사회는 개인을 끊임없이 편달하고 닦달하지만, 인간은 죽어라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을 잡고 좋은 집, 좋은 차를 얻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온 시간을 쓰다 요양병원에서 쓸쓸히 삶을 마치려고 태어나는 존재가 절대 아님을 알아야만 한다. 


대중교통으로 여행을 했다면 낭비되는 시간 없이 단숨에 목적지에 도착했겠지만, 그랬다면 단언컨대 내가 한 천금과도 같은 경험을 얻을 순 없었을 것이다. 또한, 합리성에 근거해 채찍질해온 삶이 강한 부작용을 불러오는 모습을 나는 수도 없이 보아왔다. 학원가에 파묻혀 학창시절 대부분을 공부만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과 지긋한 나이가 됐음에도 몰래카메라와 같은 범죄로 순식간에 몰락하는 유명인의 사례를 보고 말이다. 유년기에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고 억눌린 자아를 지닌 채 어른이 되어버리면 언젠가 일그러진 형태로 그것이 표출되고 만다. 따라서 아이들의 방황은 충분한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바라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네들이 스스로 겪고 느끼며 실패로부터 배움을 얻고, 잃어버린 길에서 문제해결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위의 얘기를 하고 있자니…. 나오미 씨는 굉장히 격양된 어조로 공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엄마가 처음이다 보니, 기다려주고 신뢰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때론 감정적으로 대하고 만다며 시무룩해 있길래 그게 바로 인간미가 아니겠냐고 말해주었다. 나오미 씨가 “그런 거겠죠?”라며 오늘 나를 만나 참 다행이라고 얘기했다. 속이 후련하다면서, 자기 아들도 언젠가 기쁨 씨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과찬을 해주시길래,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져 손사래를 쳤다. 도로가 어두워 낯빛이 안 드러나 다행이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온천에 도착했다. 시간이 늦어서 온천에 몸을 담그지는 못하고, 안에 딸린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하코네의 온천은 소문대로 규모도, 운치도 대단했다. 나중에 일본을 다시 오면, 반드시 다시 들러 탕 안에서 여유를 즐겨보겠다는 결심이 섰다. 밤 열 시가 다되어 드디어 요코하마에 입성했다. 

▲ 나오미 씨. 시즈오카에서 요코하마까지 큰 도움을 주셨다.


나오미 씨와의 작별은 애틋했다. 그녀는 요코하마의 랜드마크, 무지갯빛 관람차가 눈앞에 보이는 스파 랜드 앞에 나를 내려주기 전, 피로를 맥주로 푼다는 내 말에 사우나 안에서는 맥주가 비싸니까 밖에서 몇 캔쯤 사서 들어가라며 편의점까지 함께 가서 결제를 해주었다. 


그녀가 5,000엔 지폐를 내밀며 진심으로 기쁨 씨를 응원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한껏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녀의 마음을 향한 감사를 드러내려 애썼다.


나오미 씨의 도움 덕분에 오늘도 따듯한 곳에서 안전하게 잘 수 있었다. 기분 좋게 샤워를 하고 사우나까지 들렀다가 밖에서 시원한 캔맥주를 마시니 천국이었다. 몸이 노곤했다. 그렇게 한 안마의자를 골라 나도 모르게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벽 놀과 수런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자리를 정리하고 가방을 챙겨 계산대로 나왔다. 비용을 계산하려 지갑을 찾는데 음…? 지갑이 없다. 큰 가방은 카운터에 맡기고 작은 가방만 들고 들어갔기에 분명히 지갑은 작은 가방에 있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아까 입었던 옷 속에 있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길한 예감이 드리웠다. 일단 침착함을 유지하고 아까 옷을 벗었던 세탁 망을 뒤졌다. 옷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로커를 확인하고 어제 잠을 잤던 안마기 쪽 온 군데를 이 잡듯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도 앙망하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반쯤 울음을 머금은 채로 혹시 몰라 큰 가방까지 모두 찾아 보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눈앞이 하얘지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CCTV를 확인해도 워낙에 큰 사우나라서, 지갑을 찾을 확률은 한없이 낮았다. 

▲ 지갑을 잃어버린 날 아침. 진정으로 서글펐다.

잃어버렸을까. 지금도 그것은 미스터리다. 아마도 잠을 자는 동안 작은 가방을 열어두었는데, 그 안에 지갑을 누군가가 가져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갑 안에는 카드와 신분증, 12,000엔이 들어있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이들의 명함과 연락처가 들어있다는 사실이 가장 절망적이었다. 

돈이야 벌면 되고 카드나 신분증은 재발급받으면 된다. 그러나 내가 직접 만났던 소중한 인연의 실은 몇억을 주더라도 바꿀 수 없었다. 


너무나도 슬펐다. 빗길에 몸이 젖던 때에도, 양아치한테 얻어맞던 때에도 이토록 슬프지는 않았다. 

가고시마 로손의 점장님. 시모노세키 복어집 사장님. 후쿠오카 팝콘 판매 중소기업 과장님. 후지산 

양조장에 취재하러 오셨던 도쿄의 기자님. 시코쿠를 함께 돌았던 히치하이커 형님. 미야자키에서 만났던 센다이의 철강 회사 형님. 타카마츠에서 인생 얘기를 들려주셨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분들의 명함이 사라지고 말았다. 망연자실해 넋이 나간 채로 몇 분을 벤치에 앉아있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로 세상에 태어났다.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모든 물건은 일생 잠깐 빌렸다가 고스란히 반납하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삶의 시간 대부분을 소유를 위해 애쓰다가 죽는다. 그리고 그렇게 집착했던 만큼, 가진 것을 잃어버렸을 때 커다란 상실감을 느낀다. 그러나 물건의 상실보다 슬픈 것은 인연의 상실이자 추억의 상실이다. 소중한 기억과 미래의 인연은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 이토록 슬픔이 밀려오는 것이다.

   

언젠가 내 책이 일본어로 나온다면, 그리고 다시 일본에 가게 된다면 끊어졌던 인연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다시금 잃어버렸던 명함을 되찾기 위해 발로 뛸 것이다. 처음 인연을 맺기 위해 발로 뛰었던 것처럼. 내게 친절을 베풀어주신 분들에게 갚아야 할 게 산더미처럼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길 위에서 만났던 이들을 자주 회상한다. 물건은 상실해도 되찾을 수 있지만, 기억은 상실하면 영원히 되찾을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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