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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쁨 Oct 20. 2022

말길

규슈 -03

생각보다 빨리 미야자키에 도착해 관광할 시간이 생겼다. 누군가 일본 여행 중에서 가장 경치가 좋았던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미야자키를 꼽을 정도로, 각종 폭포와 섬,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천혜의 자연경관은 끊임없는 감탄을 자아냈다. 


도깨비 빨판이 인상적인 아오시마와 크로스노우미, 일본에서 가장 높은 주상절리 중 하나인 우마가세 절벽 등이 여정 위에 펼쳐졌다. 아오시마를 둘러보던 중 100엔짜리 운세 뽑기인 오미쿠지가 있길래 앞으로의 운수를 점쳐보려 하나 뽑아봤다. 그랬더니 결과는 말길. 길을 잃고 헤매며, 여러 가지 착각과 실수를 범할 운세란다.


여행 쪽은 대놓고 좋지 않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여행의 시작부터 이게 뭐람. 하필이면 제일 안 좋은 걸 뽑아놓다니 이후 고생길의 복선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사실이 된다!)

▲ 우마가세 절벽. 유구한 세월 앞에 우뚝 솟은 주상절리를 보고 탄복을 금치 못했다. 
▲ 반나절 낚시해서 잡은 새끼 복어.

아오시마 근처 바닷가에서 낚시를 했더니 조그마한 복어가 잡혔다. 2000엔이나 되는 돈을 내고 낚시용품을 빌렸는데 반나절 간 잔챙이 몇 마리밖에 못 잡은 게 서러웠다.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다음 날 아침 북쪽을 향해 걷는데, 갑자기 한 차가 멈춰 섰고 창문 안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전날 낚시용품을 빌렸던 가게 주인 시바 씨가 이제 출발하는 길이냐고 방향이 같으면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는 미야자키의 명소들과 머물만한 곳들을 소개해줬다. 처음엔 괜히 낚시했나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뜻밖의 인연을 만들 수도 있다니. 살면서 손해인 것처럼 보이는 일들도 실은 손해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엔 아직 이른 늦여름. 수시로 이슬비가 포슬포슬 내리곤 했다. 미야자키에서 휴우가를 넘어 노베오카를 지나는 길. 오이타를 앞에 두고 하늘은 기다란 먹장구름을 품었다. 이때라도 눈치챘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때까지도 도보 여행에서 수시로 날씨를 체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가방이 젖고 신발이 물기로 가득 차면 길을 걷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진다. 한 손으론 우산을 잡고 한 손으론 지도를 보며 빗길을 뚫자니 어마어마한 피로가 몰려왔다. 


그러던 중 노베오카에서 한 여고생 무리가 차를 멈추고 자신과 싸움을 하던 내게 말을 걸어왔다. 여기서 뭐하냐는 물음에 상황을 설명하자 흔쾌히 뒷좌석을 내주겠다고 했다. 오이타까지는 안 가지만, 도중까진 태워줄 수 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화색이 돌았다. 


아즈사와 미카, 쥬리는 K팝에 관심이 많은 여학생들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방 뒤에 붙어있는 태극기를 보고 내가 한국인인 걸 알아차리자 호기심에 차를 멈췄다고 했다.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냐고 물어보자 빅뱅의 열렬한 팬이라고 했다. 우린 빅뱅의 노래를 틀고 함께 부르며 빗길을 달렸다. 나중에 한국에 가면 꼭 YG 사옥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SNS를 교환하고 친구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그녀들은 내 박스에 예쁜 글씨로 '일본 일주 !! 오이타'라고 적어줬다. 내 서투른 한자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발랄한 목소리로 힘내 기쁨 군~! 이라고 외치며 멀어지는 그녀들을 뒤로하고 오이타를 향해 다시금 빗길을 헤쳐나갔다.     

▲ 아즈사, 미카, 쥬리. 내 악필을 대신해서 박스에 글씨를 써줬다.

그러자 말길의 징조는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해가 저물기 전엔 그리 거세지 않던 비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금 내리는 정도면 그냥 길옆에 텐트를 치고 자려고 했는데, 정말 말도 안 나올 만큼 많은 양이 폭포수처럼 날 덮쳤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오른손에 간신히 치켜든 박스는 세찬 비에 젖어 낱낱이 찢겨나갔다. 보이는 거라곤 산과 평야뿐인 시골. 우산과 랜턴을 동시에 들고 다른 손으론 박스를 치켜들었지만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다. 맞으면 따가울 정도로 빗발이 굵어지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빗방울이 온 액정에 맺혀 터치도 잘 안 되는 핸드폰을 꺼내 날씨를 검색해 봤다. 태풍이 규슈를 관통해 남서쪽에서 북상하고 있었다. 




비가 오면 기본적으로 히치하이킹은 포기하는 게 맞다. 날씨가 궂으면 사람들은 얼른 목적지를 향하고 싶어 할뿐더러, 비에 흠뻑 젖은 낯선 이로 하여금 카 시트를 젖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해가 지면 도로변이 잘 보이지 않아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에게 위험하다. 악조건에 악조건이 겹치면 확률은 극히 희박해진다. 그동안 생각보다 히치하이킹도 잘 됐고, 도와주는 이들이 많았기에 예상보다는 걱정을 덜고 여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건 규모가 다르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야밤에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반 조난 당하게 생겼다. 


온종일 비에 젖어 무게가 불은 가방에 어깨가 무너져 내렸다. 날이 완전히 저물기 전 이미 근 두 시간 동안 박스를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런 수완도 없었다. 우산을 거머쥔 손은 덜덜 떨렸고 다리는 흠뻑 젖은 물수건 같은 몸을 더는 지탱하지 못했다. 레인 커버를 씌운 가방을 갓길에 내려놓고 랜턴과 핸드폰을 양손에 각각 쥐었다. 핸드폰의 플래시 밝기를 최대로 높였다. 이미 몇 번이나 배터리가 나간 뒤여서, 보조 배터리를 주머니에 넣고 충전기를 연결한 상태로 랜턴과 함께 흔들었다. 그리고는 울부짖는 목소리로 도로를 내달리는 차들을 향해 외쳤다. 

▲ 태풍 속에서 목숨 걸고 했던 히치하이킹. 정말 여기까진가 싶었다.

"다스케테 쿠다사이!!!! (살려주세요!)" 


여기서 차를 세우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이를 꽉 물고 양팔을 8자로 휘두르며 안간힘을 썼다. 나도 모르는 새에 눈물방울이 빗물과 섞여 흘러내렸다. 도로는 곡선 구간이었지만 차가 서기에 여의치 않았고, 쉰 목소리는 빗소리에 파묻혀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 듯했다. 이미 밤 8시가 다 된 시간. 태풍이 몰아치는 시골 도로엔 차도 얼마 없었다. 


오기와 악다구니도 여기까지였다. 갑자기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회의감이 몰려왔다. 포기하고 싶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호기롭게 했던 도전은 역시 무모했다. 그냥 대학교 앞 자취방에서 비가 오면 배달음식이나 시켜 먹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잠이나 실컷 잘 수도 있었을 텐데. 그냥 버스나 전철을 탔으면 진작 오이타에 도착해서 따끈한 저녁밥을 먹고 있었을 텐데.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사서 하는 생고생이었다. 주변에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라곤 오로지 고속도로 터널밖에 없었다. 제발 단 한 명만이라도 멈춰주었으면. 마지막으로 불빛을 흔들었다. 앞만 본 채로 소리 지르고 있었기에 뒤에서 울리는 경적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돌아보자 한 차가 후방 등을 깜빡이고 있었다. 




아츠이시 씨. 줄여서 아츠 씨는 39살의 회사원이셨다. 지방 출장을 나갔다가 오이타로 돌아오는 길에 나를 봤다고 했다. 처음엔 겁을 먹었다고 했다. 인적 하나 없는 고속도로에 태풍까지 몰아치는 길 위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니. 그래도 틀림없는 구조신호일 것 같다는 생각에 우선 길옆에 차를 멈춰 세우고 후진을 했단다. 


내 행색은 처참하기 그지없었고 흠뻑 젖은 옷 때문에 조수석도 물난리가 났다. 너무나 죄송했는데도 아츠 씨는 인자한 미소로 그냥 신경 쓰지 말고 편히 앉으라고 했다. 편의점에 들러 샌드위치와 삼각김밥, 에너지 드링크를 쥐여주는 그의 모습은 마치 구세주 같았다.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에 신나게 얘기를 했다. 그는 북한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유심히 물어보면서, 통일을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지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국 사람 임에도 북한에 대해 그렇게 깊이 고민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통일 글쓰기 대회 따위가 있을 적에나 잠깐 알아본 일 외에는, 진지하게 통일의 방안에 대해 궁리하거나 사람들의 생각을 물어본 일이 없었다. 


그러자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하물며 외국인도 남북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데, 정작 자국민 임에도 별로 문제의식을 못 느껴 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마치 친구들의 싸움 얘기엔 귀를 기울이다가도 가족들끼리 저녁 밥상에 모여 진지한 얘기라도 하려고 하면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는 자식의 모습과 비슷했다. 

사실 외면한다기보다는 무뎌진 것이겠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북한과의 관계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는 걸 알게 됐다. 실로 가장 가깝고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북한이야말로 우리가 하루빨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아츠 씨와 얘기하며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또 일본 일주를 하는 도중에 내 이야기를 일본 곳곳에 있는 한인 학교에서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재일교포 2세, 3세들은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언어와 사고방식은 일본인인 만큼, 한국인들의 삶이나 대학 생활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을 거라고 했다. 


얘기하시는 아츠 씨의 차분한 목소리에서 인류애가 느껴졌다. 그도 세상을 둘러보고는 싶지만, 현실이라는 장벽에 막혀 자주 여행을 가보진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고 사회를 바꾸는 데에 일조하려는 너의 생각이 참 이롭고 기특하다면서, 오늘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역경이 네 앞을 막아설 땐 주저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했다. 그러면 나처럼 도와줄 사람이 꼭 나타날 거라고. 진심 어린 응원을 받자 아까 흘린 눈물과는 다른 온도의 뜨거운 물방울이 눈망울에 맺혔다.

▲ 물에 젖은 생쥐를 구해주신 아츠 씨. 지금도 그의 웃음을 보면 울컥하곤 한다.


12시가 다 돼서야 오이타에 도착했다. 태풍은 금세 규슈를 벗어난 듯했다. 매정하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그치고 밤하늘에 별이 하나둘씩 다시금 빛났다. 오랜 운전과 업무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는데도 아츠 씨는 흔쾌히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다. 우린 지쳤지만, 활짝 웃고 있었다.

      

문득 아오시마에서의 운세가 떠올랐다. 삶은 언제나 착각과 실수투성이겠지만, 잘못을 깨닫고 개선해 나아간다면 언젠가 분명 행복은 찾아온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태풍도 어느샌가 지나가고 환한 새벽 놀이 세상을 비추는 것처럼.      

이 점괘를 뽑은 사람은 
길을 잃고 헤매다 마침내 올바른 길로 들어서듯이 
여러 가지 착각과 실수를 범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이를 개선하며
신불을 믿고 마음을 바로잡으면 
마침내 행복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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