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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의 조앤 Nov 18. 2022

뮌헨에 사는 엄친딸과 학센

독일의 식탁

엄친딸. 엄마의 고등학교 절친의 딸. 풍문으로만 전해 들은 엄친딸이 아니라 몇 번 같은 동네에 살아서 종종 한 시절씩을 가깝게 보낸 언니가 뮌헨에 살았다. S, Y와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여행 일정을 짜다 언니 집에 갈 결심을 굳히고 친구들과는 베를린에서 만나기로 한 뒤 며칠 먼저 뮌헨으로 떠났다. 언니의 딸, 꼬마에게 줄 패딩턴 베어도 같이. 


공간은 그 주인의 성향을 꼭 닮는다. 꼬마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있음에도 집안 모든 물건은 각자의 자리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를 키워본 적은 없어도 아이를 키우는 집안이 그 정도로 단정하려면 주인이 얼마나 바지런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이 방에서 저 방을 오갈 때 손에 항상 정리할 물건을 들고 다니는 우리 엄마처럼. 하나를 사더라도 꼼꼼히 따져봤을 언니의 성향이 그대로 느껴지는 살림살이. 내가 언제 가족을 꾸리게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언니 정도로는 해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꽤 괜찮은 아내, 엄마라 자신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집이었다. 


마침 주말이었다. 형부가 회사에 가지 않는다. 그 말은 차를 타고 모두 함께 근교에 갈 수 있다는 뜻. 모두가 공평하게 신나는 외출이지만 언니가 가장 부산하다. 아이들을 챙기고, 간단한 음식과 옷가지를 챙긴다. 우리는 옥토버페스트의 도시 뮌헨에서 차로 30분쯤 떨어진 안덱스 수도원 Kloster Andechs*으로 향한다. 거기서 맥주와 바이에른주의 명물 슈바인 학세Schweinshaxe를 먹을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학센으로도 잘 알려진 독일식 돼지고기 요리. 기차나 버스에서는 보기 어려운 국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낡은 인상이 역력한 간판이나 수 십 년째 그 자리에서 공산품과 기름을 공급하고 있을 슈퍼마켓과 주유소. 로터리를 지나면 나타나는 푸른 들판 위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와 양. 나라를 막론하고 교외라면 으레 상상할 수 있는 모습이지만 오늘은 단란한 가족과 함께다. 형부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런던, 뮌헨, 서울에서의 삶에 대해 두서없는 대화를 나눈다. 대화가 재밌게 들리는지 꼬마도 끼어들고 싶어 하지만 역부족이다. 다음에 만날 때에는 지금보다 훨씬 정교한 대화가 가능할 테지.


학센 한 입을 베어 문다. 잡내 하나 없이 부드럽게 입안에 퍼지는 단백질 냄새를 음미하며 언니가 부러 나를 데려오고 싶었던 이유를 완벽하게 이해한다. 이미 몇 번이나 이곳에 와봤다는 꼬마는 능숙하게 자리를 잡고 언니가 챙겨 온 파프리카, 오이 조각과 학센을 오물오물 씹는다. 가족 위주의 손님들과 문득문득 보이는 혼자 온 노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도 주말 오후의 공기를 만끽한다. 


나는 언니의 집 거실에 며칠 더 머물렀다. 모두가 잠든 밤 기사를 쓰기도 했고, 시내로 외출하기 전엔 언니가 말아준 김밥도 먹고, 아침엔 멀리 희끗하게 보이는 알프스 산맥을 바라보기도 했다. 카드 게임을 하다가 과몰입한 내가 이기는 바람에 꼬마를 울리기도 했다. 눈치 없는 이모라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를 했다. 사랑 많은 꼬마는 금세 나를 용서하고 같이 춤을 춰줬다.  


서울에서 대형 광고대행사에 다녔던 언니는 그 센스 있고 야무진 감각과 재능을 뮌헨에서 베이킹으로 풀고 있었다. 독일식 빵과 쿠키를 열심히, 그것도 퍽 잘 구워냈다. 인스타그램에서 눈으로만 구경했을 때는 그저 단아하고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베를린으로 떠나던 날 기차에서 먹으라며 건네 준 쿠키 스무 조각을 한 자리에서 끝내고 나서는 파는 제품이라도 종종 사 먹을 정도로 수준급임을 알게 됐다. 지금 언니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언니는 제과학교에 가기 위해 매주 새벽 기차를 탄다. 



1 언니가 맛보기로 내어준 독일식 빵. 크리스마스 시즌에 먹는 슈톨렌도 있다. 2 베를린 가는 기차 안에서 먹은 언니의 쿠키 박스.



언니뿐 만이 아니다. 해외에 사는 내 인친들 중에는 고단한 해외살이에 육아만 해도 벅찰 텐데 음식으로, 글로, 그림으로 재능을 발휘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다 기어코 브랜드를 개발하기도 하고, 책을 내기도 하고, 갤러리에 작품을 걸기도 한다. 고국에서 보다 반짝일 기회도 적고, 그 과정은 터무니없이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는 걸 알기에 그분들의 크고 작은 성취가 늘 대단하고 멋지다. 멈춰 있지만 않으면 끝내 어디로든 닿는다. 













안덱스 수도원 Kloster Andechs* : 1455년에 건립된 수도원. 유럽의 수도원들은 그 유지와 경영을 위해 양조 허가권을 받아 수입을 창출해왔다. 더불어 맥주와 음식은 고된 길을 온 순례자의 목을 축이고 배를 채워줬다. 현대에 들어서는 순례보다는 제대로된 퀄리티의 술과 음식을 맛보고자 찾는 관광객들이 훨씬 많다.

안덱스 수도원에서 공식적으로 테이블 좌석에 맥주와 음식을 서브하는 타번 / 펍 (Tavern or Pub)인 Bräustüberl을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 어떤 순례자든 자신의 음식을 가져와 이곳에서 먹을 수 있다는 전통이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두 번째(중간) 그림이 20세기 초  홀의 모습. 아치형 구조와 녹색 난로가 여전히 남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학센은 'Crispy grilled knuckle of pork'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며, 100g 당 € 1.99 (2022년 홈페이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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