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3(수)
사실 긴 호흡의 글을 그동안 꾸준히 써온 것이 아니다 보니 뮤덕부정기와 덕질유랑기도 판은 벌려놓고 겨우겨우 놓치지 않을 정도로 쓰고 있는데 또! 브런치북을 만들다니. 이렇게 자꾸 일만 와르르 벌여내기만 할 거냐 싶지만...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우글우글 담고 있기보다 행동으로 조금씩 풀어내고, 특히 글을 꾸준히 써 내려갈 수 있는 글력을 쌓는다고 생각하면 이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무엇보다 뮤덕부정기나 덕질유랑기 같은 경우에는 나름 야심 찬(?) 기획 하에 글을 쓰려고 하니 오히려 힘이 빡 들어가서 쓰기가 힘든데, 셀프유배기는 그날그날의 일기 쓰듯 편안하고 자유롭게 힘 빼고 써보려고 한다!
그래서... 갑자기 웬 유배냐 하면... 5월의 어느 봄날 그림처럼 아름답던 날이었다... 생애 첫 덕질을 하면서 생애 첫 회전문을 팽팽 돌던 날의 한복판이었다. 매주 애정하는 배우를 보러 갈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면서도, 이 행복이 끝나간다는 사실에 동시에 서글퍼지는 나날들이었다. 그 서글픔이 가득 차오르다가 마지막 결정적인 한 방울처럼 서울 공연의 마지막 티켓 오픈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 공연 마지막 티켓 오픈?! 그 이후로는 다시 예전처럼 내 배우 보기 어려워지는 거야...?' 마음이 컴컴해지려고 하던 찰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한 줄기 빛, 그것이 바로 부산 공연이었다.
서울 공연 마지막 티켓 오픈이 뜬 시점이므로, 그 이후인 부산 공연의 상세 일정이나 캐스팅 일정은 당연히 알 수 없었다. 유일하게 알 수 있던 것은 2차 프로그램북에 적힌 부산 공연 전체 일정(7/4-7/21) 정도? 1차 프로그램북(7/5-7/21)과 비교해서 날짜가 미세하게 달라진 것을 보아하니 2차 프로그램북에 적힌 일정이 정말 픽스된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부산에 가야 한다...!
가장 먼저 이전에 부산에 여행 갔을 때 묵었던 호텔이나 공연장 근처 호텔과 숙소들을 알아봤다. 1박에 1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들을, 정확한 일정을 모르니 약 3주가 되는 기간을 풀로 잡아보니 200만 원이 훌쩍 넘어버리는 것이었다. 퇴사자로서 돈 들어올 구멍이 전혀 없고 내 손에 쥔 퇴직금을 솜씻너처럼 애처롭게 내려다보는 나로서는 눈을 질끈 감게 되는 금액이었다. 그렇다고 캐스팅 스케줄 뜨기까지 기다리자니 괜찮은 숙소들은 다 나갈 거 같고, 그때 가면 더 비싼 값을 줘야 겨우겨우 방을 얻을까 말까 할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떠오른 건이 에어비앤비. 학생 시절 여행 다닐 때는 종종 쓰기도 했는데 직장인이 되고나서부터는 여행을 자주 그리고 오래가지도 못할뿐더러 일상에 찌들다 못해 푹 쉬고 싶은 마음에 호텔로 향하곤 해서 잊고 있던 플랫폼이었다. 그나마 최근 덕메 사과님과 지방 공연 갔을 때 에어비앤비에서 숙소 찾아주셔서 덕분에 떠올릴 수 있었다. 어차피 내가 부산에 가는 목적은 확실하니... 광안리나 해운대 같은 바다, 관광지 근처에서 숙소를 찾을 필요는 없어서 가격 측면에서도 조금 부담이 적지 않을까 기대하며 공연장 근처에 에어비앤비를 찾아봤다. 그리고 확실히 호텔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이면서도 컨디션이 괜찮아 보이는 숙소가 여럿 떴다. 그중 제일 마음에 드는 숙소가 3주 정도 기간에 100만 원 조금 넘는 가격에 묵을 수 있었다. 들뜬 마음이었지만 어쨌든 적지 않은 돈을 결제하기에는 심약한 개복치인지라 조금 신중하게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친구랑 만나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다가 부산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친구에게 나중에 시간 되면 부산 놀러 오라고 말하면서 숙소를 보여주기 위해 에어비앤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앞쪽에 한 2주 정도가 그새 예약이 완료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지금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과 너무 마음에 드는 숙소인데 1주일도 안 되는 기간 동안만 머무르기에는 아깝다는 마음에 그 숙소를 2주 정도 예약해 버렸고, 극이 개막하는 시기에도 숙박은 해야 하니 에어비앤비로 인근에 있는 다른 숙소를 찾아서 예약을 해버렸다. 이렇게 해서 7월 4일부터 7월 29일, 정말 한달살이에 가까운 느낌으로 부산에 가게 된 것이다.
그게 어느덧 당장 내일인데... 어떤 사이즈의 캐리어를 들고 갈 지, 뭘 챙겨가야 할 지 아무 것도 정하지 못한 채로 하루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리기만 했다. '으아아아아 다 귀찮아...' 정신차려...! 당장 내일 출발이라고! 어쩌면 이 글이 쓰고 싶었던 것도 짐을 싸야한다는 것을 회피하기 위함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