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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호박 Jul 04. 2024

우당탕탕 귀양살이 시작

2024-07-04(목)

아니 근데 1화에서 조급하게 와르르 부산 숙소를 예약하고 부산에 오기까지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사실 현타가 왔었다. 일단 첫 번째, 부산 공연 스케줄이 떴을 때였다. 서울 공연 때는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공연이 매일 최소 하나씩은 있었는데, 부산 공연에서는 오픈 위크라고 할 수 있는 첫 주만 예외적으로 목금토일 공연이 있었고 이후 2주는 주말에만 공연이 있었다. 내 배우의 공연은 1주 차 금토일, 2주 차 토일, 3주 차 토일. 그나마 내 배우가 회차가 제일 많으니까 그게 위안이라면 위안이 되었을까... 차라리 주말마다 내려오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서울 공연이 막바지로 향할 때였는데 관극 한 내용을 정산하다 보니 내 배우 회차의 약 75%를 관극 했음을 알게 되었고 솜씻너처럼 녹여버린 티켓값을 떠올렸을 때였다. 부산 공연 티켓값에 숙소비에 생활비에, 아 맞다 왕복 KTX 비용까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수입이 하나도 없는 백수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들 때였다. 내 배우가 차근차근 노력해서 자기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에 비해 나는 지금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수렁처럼 나를 집어삼켰다.


여러 차례 닥친 현타에 무산이 될 뻔한 부산 유배는 의외의 지점에서 다시 심폐소생되기 시작했다. 퇴사하기 전 별 생각도 의미도 없이 들어둔 26주 적금의 만기였다. 매주 5천 원씩 증액하는 것으로 들어둔 26주 적금이 만기가 되자 3주 반 정도 되는 숙소 비용이 해결이 되었다. 그때 확 낮아지는 심적 부담이란! 훨씬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다시 생각해 보니, 3주 동안의 왕복 교통비와 1박 2일 2회와 2박 3일 1회의 숙박비를 따지면 금전적으로도 지금의 비용과 크게 차이 나지 않을뿐더러 체력적으로 많이 소진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그냥 지금 진행된 사항들을 굳이 바꾸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이 희망찬 생각의 아지랑이에 자기 합리화 장인인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퇴사를 하고도 사실 일상의 반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 제대로 푹 쉬지도 못하고 있는데... 여행 떠나듯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서 조금은 낯선 곳에 나를 데려다 두면 그동안 마주하지 못했던 나를 좀 더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오늘 나는 부산행 KTX를 타게 된다. 시작부터 사실 순조롭지 않았는데... 어제 고민하던 짐 싸기는 아무리 여름옷이라고 해도 최소 1주일 치 이상의 옷과 장마철을 대비한 장화와 기타 등등의 물건들을 넣어야 하니 결국 특대형 사이즈의 캐리어로 귀결되었다. 과장 조금 더 보태서 내가 몸을 유연하게 접으면 들어갈 수도 있는 사이즈의 캐리어인데 덕분에 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지 못할 뻔했다. 기내용 사이즈의 캐리어 이상은 안된다고 기사님이 말씀하신 것. 생각지 못한 거라 당황해서 허둥거렸는데, 다행히 기사님이 사람이 많은 시간대가 아니라 이번 한 번만 봐주신다고 했다. 가장 앞자리에 가방이 미끄러지지 않게 한 손으로 꼬옥 잡으며 역으로 향하는 길에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게는 아주 미약한 너스레를 영혼 끝까지 끌어올렸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엄격하고 냉정한 것 같던 기사님이 버스에서 내릴 때에는 부산에서 푹 쉬고 오라며 캐리어를 들고 계단 오르내릴 때 조심하라며 다정하고 유쾌하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그러나, 캐리어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는데... 역 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돌리며 앞전의 버스 기사님과의 에피소드를 즐거운 여행의 시작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한 기차에 올라타기까지는 말이다. 열차와 열차를 잇는 사이에 캐리어를 둘 수 있는 공간을 미리 파악해 둔 나는 기차를 타자마자 그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모든 칸이 캐리어들로 꽉 차 있는 것이 아닌가? 내 캐리어 자체가 클 뿐만 아니라 칸칸이 최소 2개 이상의 캐리어로 가득 차 있어서 아예 캐리어를 슬쩍 들이밀 공간조차도 없었다. 목을 쭈욱 빼고 객실 승무원님을 애타게 찾았으나 기차가 역을 출발해서 빠른 속도로 달릴 때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캐리어의 스토퍼를 고정해 놓고 자리로 돌아가서, 코레일 앱으로 승무원 콜을 처음으로 써봤다. '혹시 비어있는 짐칸이 없나요? 제가 6-7호차, 7-8호차 사이는 확인해 봤습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캐리어를 다시 보러 가니 내 캐리어가 같은 위치에 있기는 했지만 아까와는 달리 눕혀져 있었다. 메시지를 보신 건가 싶어 자리에 와서 앉아 있는데, 역 하나를 지나고 나서 객실 승무원님께서 내 자리로 와주셔서 캐리어 관련 문의한 것 맞냐고 물어보셨다. 캐리어 눕혀있는 것 봤는데 거기에 둬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내게 '캐리어 그렇게 눕혀둬도 괜찮을까요.'라고 다정하게 물어봐주시는 객실 승무원님께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저는 너무 괜찮아요!'라고 외치고 말았다. 생각보다 크게 나온 목소리에 다소 머쓱한 표정의 나를 보고 객실 승무원님께서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는 다음 객실로 넘어가셨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내 눈에 보인 것은 코레일 앱에 있는 짐배송 서비스^^... 서울 올라갈 때 쓰면 되지 뭐... 정도의 우여곡절은 이렇게 글로 있는 에피소드가 되니까! 숙소까지는 다행히 아주 수월하게 있었고, 생각했던 것만큼 숙소가 좋아서 아주 기쁜 상태로 글을 썼다. 히히 앞으로의 귀양살이 아주 기대가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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