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5(금)
맞춰놓은 알람을 여러 번 미뤄가며 밍기적 꾸무적 거리는 것은 유배지에서도 다를 바가 없군요. 어제 평소보다 일찍 졸려서 침대에 누웠다가 책이라도 좀 읽을까 했는데... 책이 너무 재밌어서 평소랑 다를 바 없이 늦게 자버렸다. 그래도 숙소에 금방 적응한 탓인지 푹 잘 자서 컨디션은 너무나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 숙소에 비치된 LP 플레이어에 블루투스 연결해서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는 밀린 일기를 끄적였다. 핸드폰으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나를 정돈하는 시간을 보내니 마치 구겨진 마음을 뽀송하게 다려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왜 평소에는 이렇게 못했을까 생각하니... 집에는 일상의 흔적이 너무나 두텁게 쌓여 있어서 오히려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개수대에 쌓인 설거지 거리들, 빨래통에 담긴 빨래들,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와 머리카락, 책상도 모자라 의자 옆에 탑으로 쌓인 정리해야 할 책들까지. 아침에 일어나 이 모든 것을 마주할 때면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 다시금 침대로 도망쳐 핸드폰 화면을 의미 없이 내리거나, 아예 밖으로 뛰쳐나갔던 것 같다. 지금 이 유배 공간은 일상의 공간 같지만 사실은 실제 일상에서는 유리된 공간이라, 그 동안 나를 짓눌렀던 일상의 무게에서 나를 해방시켜주는 듯 하다. 그래서 내가 희망하는 나를 꺼내보일 수 있다고나 할까. 이곳에서 나 스스로를 일단 잘 정돈하며 마음의 힘을 기르고나서 집으로 돌아가 집도 다시 차근히 정돈해야지 싶다.
오늘은 셀프유배를 온 가장 중요한 이유인 본진의 공연 중 첫 공연일에 해당하는 날이다. 매번... 내가 공연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긴장되고 떨리는지. 본진은 분명 또 무대를 찢어놓을텐데 말이다. 처음 가보는 극장이라 조금 더 긴장되나 싶기도 하고. 오늘은 본진의 첫공을 보고, 맑음언니랑 저녁에 쐬주를 마시기로 했다. 만약 이 부분이 그대로 올라간다면 맑음언니와 쐬주를 거나하게 마셔서 글 수정 없이 바로 올렸기 때문일 것... 아마 본진은 무대 너무 잘했을 거고, 나는 또 오랜만에(?) 본진이 본업하는 모습 보면서 또 좋아했을 거고, 극 때문에 눈물 팡팡 흘렸을 거고, 언니랑 본진 얘기 한가득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거다.
*글 쓴 이상으로 본진은 그 이상으로 잘 했고, 언니와의 시간은… 말로 어떻게 표현할지 모를 정도로 최고였다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