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그리워할 수 있어 행복하다

항상 나를 생각하며 지내주지 않을래

by 초들

너를 그리워할 수 있어 행복하다




엊저녁 8:20 암천리에 도착했다. 수많은 가로등과 주택의 전깃불이 있어 도시 길은 환하지만, 이곳 산골길은 별빛만 쏟아지는 으스름한 길이다. 더군다나 무심한 개구리울음소리, 풀벌레 소리만 메아리치는 산골길을 자전거 끌며 타박타박 걷노라니, 한없는 적막감이 엄습해 온다.


얼마 전, 서울 가는 도중에 수원역에서 그만 내려버린 우리 반 O단이가 이해된다. ○단이는 '저기 엄마가 있어요'하며 갑자기 열차에서 내렸다고 했거든. O단이를 찾느라 가슴 졸이며 밤늦게까지 수원역 주변을 헤맸다. 길 잃고 우는 아이를 역전파출소로 데려다준 고마운 시민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아이를 잃어버린 담임교사가 되고 말았을 거야. 아찔하다.



承弟야!

몇 시간 동안 안녕. 광주에 너를 두고 훌쩍 떠나올 때마다 왠지 미안함을 느낀다. 헤어짐 없이 늘 함께 지내고 싶지만, 우리들은 아직 그럴 수 없네. 공용정류장에서 헤어질 때마다 우수진 네 모습을 보며, 갖가지 감정이 교차한단다. 오늘은 갑자기 슬퍼졌어. 그래서 눈시울 뜨거워져서 버스 속에서 너의 모습을 끝까지 붙잡느라 애썼단다.


어쩌면 우리 두 사람, 몹시 그늘진 운명 속을 거닐고 있지. 약동하는 청춘, 젊음 속에서 늘 패기 발랄한 모습이라야 하는데, 움찔거리고 주춤주춤 하니 속상하다. 어려운 환경이 우리의 감정마저 이렇게 만들어 가는 걸까? 젊었을 때의 고생은 일부러 찾아서라도 한다는데, 이까짓 어려움 무시해 버리자. 우리에게는 소중한 꿈과 이상(理想)을 맘껏 펼칠 찬란한 미래가 있다. 오늘보다는 새롭고 아름다운 내일이 있어. 그러니 힘내자.


너를 사랑한다. 사방이 꽉 막힌 암천리에서 너, 承弟를 그리워할 수 있어 행복하다. 비록 네 몸은 광주에 있지만, 지금 너는 내 마음 가득 나와 같이 있거든.



承弟야!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네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게 아주 많은 것 같아. 미안해. 앞으론 네 마음 아프게 하는 일 없이, 너에게 충실하여 너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 개나리 꽃 속에서 활짝 웃는 너의 모습을 그리며, 나도 세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고 싶어.



承弟야!

너, 나를 사랑하지? 그러면 소청을 하나 들어줄래. 뭐냐 하면 항상 나를 생각하며 지내주지 않을래. 우리 사랑, 온통 사랑 덩어리라면 모든 사람에게 우리 사이를 당당히 알리며 지내자. 우리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자.


별들의 대화가 끊이지 않는 이 밤. 팔짱을 끼고 호젓한 농로(農路) 위를 거니는 너와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입에서 살살 녹는 솜사탕처럼 감미로운 사랑의 언어를 무진장 나누면서.


오늘은 이만 줄인다. 몸조심해라.



1980.05.06.(화) 10:15 pm 浩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