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같은 내일의 삶이 영글어가고 있다

고귀한 사랑의 감정을 공유하니

by 초들

보석 같은 내일의 삶이 영글어가고 있다




개울물이 흐르고 숨 막히는 고요와 적막으로 둘러싸인 암천리!

웬걸 오늘은 귀뚜라미가 정적을 깨뜨린다. 벌써 가을이 다가오나 봐.


11시 35분, 장흥행 버스를 타고 2시간 달려 오랜만에 유치에 도착했다. 마침 교감 선생님께서도 함께 내려 공손히 인사드렸다. 자전거를 타러 가 살펴보니, 이를 어째. 고물 자전거가 되어 버렸네. 비 안 맞게 하고, 다른 사람들이 타지 않기를 바라며 민가에 숨겨 두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용(愛用)했는지 완전 고물 자전거야. 내 자전거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시골 사람들이 자가용처럼 이용한다는 걸 익히 알았지만, 허허허 정말 허탈하다.



承弟야!

동안 안녕. 뒤돌아보며 내내 헤어지는 서운함 뒤로하고 오전을 맞이한 지 벌써 한참 되었다.

너를 사랑해서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에 생기가 난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기에 우리 마음가짐을 새롭게 단장하고 사랑도 재정비하자.

기말평가에 대비해 너는 열심히 공부하고, 나는 참신한 사도(師道?)를 확립하려고 교육에 헌신할 것이다.


어쩜 우리는 숱한 잡생각과 우울감 속에 살지만, 그래도 가장 고귀한 사랑의 감정을 공유하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현재의 너와 내가 처해있는 환경은 암담하지만, 우리 희망찬 내일을 만들어가자. 매 순간 매사에 충실하고 정성껏 시간을 가꿔 나간다면, 분명히 행복의 날이 올 거야. 시험공부하느라 진땀 빼는 너의 모습 속에는 보석 같은 내일의 삶이 영글어가고 있음을 안다.


비록 나의 몸뚱이는 첩첩산중 암천리에 있지만, 자못 대견스럽게 여겨본다. 남들이 감히 상상하지 못할 오지(奧地)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거든. 이런 내가 무척 커 보인다.


네 report를 다시 하려고 줄을 그으며, 마냥 행복감에 젖어든다.

너에게 조금이나마 사랑의 흔적을 보여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건강을 빌며,

수고하는 너에게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기도하마.


1980.08.20.(수) 11:20 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