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들 Mar 28. 2024

분명히 우리는 사랑해

우리는 없어지면 죽어 버릴 거야

분명히 우리는 사랑해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 & 浩兄!  

   

달 밝은 여름밤 주위는 조용하고 선풍기 바람만이 유일한 친구가 되고 있구나.


나의 인내력이 겨우 이제야 한계가 되었는지 편지를 쓰게 됐어. 실은 그날 즉시 써놓은 편지는 부칠 수 없었어.

     

광주에 왔던 네가 나를 만나지 못하고 그냥 갔구나. 즐거운 시간이 더 많았겠지만 아쉬움만 쌓이더군. 토요일은 참기가 힘들었지만 난 가지 않았어.

     

浩兄이는 지조가 없구나. 왜냐고?

승자 씨가 뭐지. 한번 승자라 했으면 끝까지 준수해야지. 어색스럽게…. 나는 그럼 경호 할아버지라고 계속 불러 버릴 거야. 아니지, 그렇게 엄격해야 할 사이라면 뭐 상관없지. 하지만 복잡한 생활 구조 속에 살면서 그렇게 부자유스러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음에는 반말 쓰라고 해도 못쓰니까 실컷 쓰는 거야. (그렇다고 말을 그냥 쓰라는 게 아니고 이름에 한해서) 괜히 쓸데없는 말로 시간 낭비했군.           



만나고 싶은 浩兄아!


날씨는 덥고 피곤할 텐데, 학생들은 잘 지도하는지, 무료하지 않은지 걱정이군. 내가 한가한 존재라면 한없이 즐겁고 기쁜 시간을 마련해 주겠지만, 안타까울 뿐이구나. 어휴! 이렇게 여유가 있을까? 내가 …. 사실은 浩兄이가 내게 찾아와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 할 때일 것 같은데, 인정이 많아서 공부하라는 핑계를 옳게 사용하니까 할 말은 없구나. 그리고 자신이 흩어진 심혼을 모으는데 힘을 기울이고, 내가 붙잡아 주기를 바란 마음이었다면 잘못했군, 내가.


하지만 浩兄아, 분명히 우리는 사랑해. 그리고 우리는 없어지면 죽어 버릴 거야. 浩兄이의 모든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나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며, 浩兄이의 사랑에서 나온 거야. 주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를 사랑하였다면, 큰 비극이 되고 말아.


나를 슬프게 만드는 그런 얘기는 하지 말고, 진실한 이성에서 차분한 심령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해야 돼. 나로 인해 浩兄이의 신앙에 믿음이 떨어지는 일을 빚어서는 더욱 안되고, 나는 浩兄이의 운명에 나의 운명을 던지는 것뿐이야. 그래서 浩兄이의 가는 길은 사랑의 길이어야 하고 행복의 길이어야 돼. 풍요로운 영혼들로부터 영원히 죽지 않기 위해.

      

온갖 지식과 지혜를 동원해서 하나님을 아는 데 바쳐야 할 거야. 浩兄이는 열심히 주를 받들어야 해. 조금도 틈이 있어서도 안 되고 교육에 헌신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浩兄이는 유명하고 훌륭한 남자야. 보잘것없지 않아. 그것은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감히 가슴속에 키워온 온갖 사상・사랑들을 너에게 다 주고 있으니까. 나는 죽을 때까지 한 인간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헌신할 것이며 그에게 순종할 거야.

    

그래. 浩兄이를 사랑하는 것은 아마 다른 이유는 조금도 없을 거야. 하나님 사랑을 가진 浩兄이에게서 난 사랑이란 것을 알고 싶어서, 그 속에 난 살고 싶어서. 세상 사람의 사랑이 아닌 사랑을 浩兄이는 지녔으니까.


    

나에게 시간이 없을 때에는 별수 없지만, 광주에 오면 꼭 나를 만나고 갔으면 해. 얼굴 좀 보고 싶구나. 잊어버리기 전에….  학원은 5시 30분까지 오면 돼. 그리고 올 때는 ‘어떻게 하면 나를 즐겁게 해서 잠시나마 쉬게 만들까?’ 생각 좀 하고 오도록.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으면 편지만이라도 부지런히 써 주길.

     

난 꼼짝도 할 수 없는 신세구나. 浩兄이를 위해 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생활이겠지. 건강하고 방학을 주면 엄마한테 가서 젖이나 많이 먹고 속 좀 차리고 편지 좀 하루에 한 통씩 써라. 화나기 일보 직전이니까, 내가.     

浩兄이는 엄마가 나보다 더 좋을 거야. 제일 꼴찌로 나를 좋아하겠지?

열심히 공부할게. 보고 싶구나, 정말이지.


안녕!  



1979.07.06. 밤 11:00  

이전 23화 예비고사 종합반 학생이 될 거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