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들 Nov 22. 2024

하수구 없는 부엌, 그리고 오줌사건

아예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이 글은 아내가 썼고 뒤늦은 미안함, 감사함을 얹어봅니다.



흙먼지 자욱한 길 위를 매일 오가야 하는 시골의 분위기는 생경했다. 어려서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상황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곳이 고향인 교사들의 마음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멀리 가지도 않고 읍내 학교를 회전초밥처럼 돌려가며 근무하기 때문이다.


40 넘긴 나이 먹은 선배 언니를 보면 왜 아직도 교직에 계시는지 궁금했다. 신규인 나의 눈은 '그 나이가 되면 그만해야 한다'라는 묘한 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젊은 나의 얼굴에 비하면 엄청 늙어 보였을지도 모르는 많은 교사들, 그분들도 초임 때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나는 신랑이 같은 장흥군내 다른 학교에서 근무했기에 출퇴근 버스 갈아타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 관산읍에 사글셋방을 얻었다. 2층으로 큰 방과 부엌이 있었고 친정집에서 가져온 석유곤로는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었.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났을까? 


해남에 사는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신혼생활이 궁금했나 보다. 친구와 즐거운 이야기를 하라고 남편은 슬쩍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한참 놀다 보니 달빛이 창가를 둘렀다. 커튼을 통과해서 방 안으로 들어오는 달빛은 왜 그렇게 샛노랗게 빛나고 밝았는지, 엄마가 계신 집 생각으로 많이 울었던 얘기를 했다. 하지만 친구가 온 그날에는 나는 슬픔을 머금지 않는 달빛을 바라보았다.


남편과 연애할 때에는 같이만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이 좋을 것 같고, 부모를 떠난다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며, 그립고 보고 싶을 거라고는 1도 없었을 때였다. 그런데 신혼의 느낌과는 전혀 별개로 가슴속에 찬 바람이 일었고 엄마와 가족이 그리웠고 아련했다. 가족이 원망스럽고 혼란스럽던 순간순간들은 어디로 간데 없이 나는 새로운 국면의 생각의 방을 마련하고 있었다.


결혼 후의 변화 등 그간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친구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지금과 달리 화장실에 멀리 있어서 그랬는지, 아마도 귀찮아서 그랬는지 확실치 않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부엌 한쪽에 작은 볼일을 보라고 했다. "물 뿌리면 하수구로 나갈 것이야"라고 말하며.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나를 불렀다. "큰일 났다. 부엌 바닥에 하수구가 없어!" 나는 문을 드르륵 열고 나가보았다. '어, 이게 무슨 일이야?' 얘기꽃을 피우다가 참고 참았는지 거짓말 붙여서 부엌 바닥이 한강 물이 되어 있었다. 친구는 혼자 치우려고 물을 뿌린 바람에 더 물이 차 있는 것 같았다. 친구와 나는 그 시절에 많이 사용했던 쓰레받기로 물을 긁어서 반대편 하수구 있는 곳으로 퍼 던졌다.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오랫동안 오줌물 퍼 올린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우리 둘은 한참 동안 퍼 올리고 또 물을 뿌려서 깨끗해질 때까지 반복했다.      



집에 온 남편이 이 광경을 목격했다. 


우린 어쩔 줄 모르고 쓰레받기를 들고 우두커니 서서 그 상황을 설명했다. '남편은 얼마나 웃음이 났을까?' 살다 보면 이런 일은 참 황당하고 창피한 일인 것 같다. 나는 해남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나는 서러운 신혼 시절 사글셋방도, 황당오줌사건도 잊을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