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 아이가 갑자기 숨을 못 쉬기 시작했다

음식 알레르기로 겪은 아나필락시스의 밤

by 어디가꼬

다시 열린 하늘길


3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하늘길이 다시 열리자, 우리 가족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속에 우리가 선택한 첫 번째 여행지는 태국의 방콕이었다.

방콕은 태국의 수도이자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대도시다. 전통 사원과 초고층 빌딩, 로컬 시장과 대형 쇼핑몰이 공존하는 역동적인 도시, 짜오프라야강을 따라 도시가 펼쳐져 있고, 새벽 사원으로 불리는 왓 아룬, 화려한 왕궁, 수상시장 등 태국의 전통문화를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다. 대중교통(BTS 스카이트레인, MRT)이 잘 되어 있어 이동이 비교적 편리하고, 물가가 한국보다 낮은 편이라 가성비 여행지로도 인기가 있다. 방콕은 전통·미식·쇼핑·야경이 모두 살아 있는 에너지 넘치는 도시다.


그동안 몸을 맡기던 아이의 유모차는 코로나와 함께 사라지고, 어느덧 엄마·아빠 손을 잡고 함께 걸으며 여행을 즐기는 동반자가 되었다. 자기 목에 걸린 핸드폰으로 직접 담고 싶은 사진과 영상을 담으며, 간단한 태국 인사말 “싸와다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너무 비싸요. 좀 깎아주세요 “팽 빠이 롯 너이 다이 마이?”라며 물건값을 흥정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3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변화는 알레르기의 호전이었다. 그동안 면역치료법을 통해 달걀 완숙과 밀가루에 우유까지 알레르기 3종 세트를 모두 먹을 수 있게 된 아이는 출발 전부터 들떠 있었다.

“호텔 조식은 내가 다 먹을 거야.”

이번 여행은 단순히 하늘길이 다시 열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마치 일상에 대한 축제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식품 알레르기 아이에게 해외여행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지뢰밭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음식 알레르기로 겪은 아나필락시스


아이가 그토록 기대했던 조식 뷔페. 직접 접시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난생처음 뷔페에서 먹을 음식을 고르는 아이의 눈빛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밀가루는 통과 판정을 받은 터라 만두 정도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중에 먹으면 안 되는 생선살이 들어간 딤섬이 있었던 모양이다.

조식을 먹고 수영장으로 향하던 길. 아이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아빠… 배가 너무 아파.”

평소에도 배가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하는 아이라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나오면 괜찮아질 거라 여겼다. 그런데 아이는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차디찬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누워버렸다.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직감했다.

아나필락시스.

“아빠… 죽을 것 같아.”



아이는 난생처음 겪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눈빛을 마주쳤다. 망설임은 없었다. 비상용 응급 주사기 ‘젝스트’를 꺼내 아이의 허벅지에 꽂았다. 그 몇 초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아이는 다시 일어났다. 그날 나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자격을 시험받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위기는 지나갔다. 하지만 아이가 기대했던 여행은 첫날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남은 여행 기간 동안 우리는 현지 맛집은커녕 조식 뷔페마저 포기해야 했다. 대신 지겹도록 먹어왔던 즉석밥과 비상용 카레를 꺼내 끼니를 해결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괜찮아. 또 올 수 있잖아.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야.”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음식 때문에 놀라긴 했지만 그 순간 나는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음식은 포기했지만 아이에게 다른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룸피니 공원이었다. 룸피니 공원은 태국 방콕 도심 한가운데 있는 큰 공원으로 ‘방콕의 센트럴파크’라고 불리는 곳이다. 높은 빌딩 사이에 펼쳐진 넓은 초록 공간으로 현지 사람들과 여행객들이 모두 찾는 휴식 공간이다. 우리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도마뱀 때문이었다.

공원 안에는 사람 키만 한 워터 모니터 도마뱀이 살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작은 자연 탐험이 되는 곳. 실제로 공원에 들어서자 정말 악어만 한 도마뱀이 우리나라 동네 강아지처럼 평온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신비로운 세계였다. 더 놀라운 건 도마뱀도 사람도 서로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는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도마뱀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 다가갔다가
꼬리로 한 대 얻어맞았다. 하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언제 도마뱀한테 매를 맞아보겠어?”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여행은 아이의 몸만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도 함께 단단하게 자라게 하고 있었다.


폭풍우 속에서 묶여 있다는 확신

여행의 마지막 날은 밤 비행이었다, 동남아 여행의 특성상 밤비 행이 많아서 피곤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6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김해, 웬일인지 비행기는 착륙하지 않고 김해공항 상공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갑자기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현지 기상 상황 악화로 김해공항 착륙이 어려워 인천으로 회항한다는 내용이었다.


새벽녘,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여섯 시간을 더 달려 겨우 부산으로 내려왔다.

6시간 밤 비행에 공항 대기 시간까지 몸은 녹초였지만 버스 안에서 서로의 어깨에 기대 잠들며 이 황당한 상황마저 하나의 이야기로 저장했다.

쉬운 여행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이 우리 가족을 더 단단하게 하나로 묶어주었다. 나는 믿는다. 방콕에서 그 위기가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의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생사가 오가는 순간에도 부모는 주저 없이 자신을 구했다는 기억. 그 기억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안전띠가 되었다. 위험을 없애주는 장치가 아니라, 폭풍우 속에서도 함께 묶여 있다는 확신이었다.

부모에게 남기는 한마디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안전장치는

위험을 제거해 주는 기술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도 곁에 서 있는 부모라는 확신이다.

그 신뢰가 아이를 세상 밖으로 다시 나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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