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중요해진 더욱 ‘질문’]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
본격적인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아마 가장 유명해진 말이 아닐까 싶다. 생성형 AI의 기본적인 인터페이스가 ‘질문 대화’의 형태를 띠게 됨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맥락과 정보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전달하는 것의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말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게 AI의 시대가 와서 중요해진 것일까? 사람은 기본적으로 대화에서 ‘물음표’를 마주치면 답을 찾고자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질문은 이미 사람의 대화의 방향성과 지속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해왔고, 기업과 같은 조직에서는 너무나도 중요한 도구였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레 사용해야하는 것이었다.
[적극적인 탐구(assertive inquiry)의 자세]
글로벌 유명 기업 P&G는 전사적인 전략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적극적인 탐구’라는 대화 방식을 추진했다. 적극적인 탐구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조직 학습 이론가인 크리스 아지리스(Chris Argyris)의 연구에 기반을 둔 개념이다. 이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상대에세 분명하게 설명하고, 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와 논리를 공유하면서 동시에 동료들의 사고와 논리에 적극적이고 진심으로 호기심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적극적인 탐구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단계로 이뤄진다.
(1) 자신의 생각을 설명한 뒤 상대방의 의견을 요청하기
- “저는 이 상황을 ~~~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유는 ~~~ 이렇습니다. 제가 혹시 놓친 부분이 있을 것 같아, 혹시 ##님은 다르게 보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2) 상대방의 의견을 자신이 이해한 대로 다시 표현하고, 그 이해가 정확한지 확인하기
- “아, ##님은 ~~~라서 ~~~라고 보시는 거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한번 확인해주세요.”
(3) 상대방의 의견 중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설명하고, 추가적인 정보를 요청하기
- “그렇다면 ##님은 ~~~ 부분에 대해서 ~~~이란 의견을 가지신거군요. 그 의견에 이르는 과정에서 제가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혹시 놓친 게 있나 한번 봐주실래요?’라는 한 마디가 가진 힘은 엄청나다. 별 것 아닌 문장 같지만, 이 문장은 상대에게 “제 주장은 완벽하지 않으니, 의견을 적극적으로 주셔도 좋습니다.”라는 개방성을 암시한다. 즉,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방어 기제를 능동적으로 풀겠다는 제안을 하면서, 더욱 생산적인 논의로 진행할 수 있게 한다.
[적극적인 탐구의 자세가 필요한 이유]
조직에서 ‘좋은 결정’이란, 현재 조직이 갖고 있는 문제를 탁월하게 해결하여 의미있는 기회나 이익을 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즉, 이 의사결정을 통해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느냐다. 그렇기에 조직적인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논리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 정의’라는 것은 피상적인 현상을 관찰만 한다고 해서 완결성을 지닐 수 없다. 문제가 정의되기 위해서는 그 문제가 나오게 된 배경 정보, 맥락, 해석들을 다각적으로 분류하고 체계화해야 한다. 즉, 문제가 정의되기 이전에 폭넓게 발산하는 정보들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문제로서 수렴시키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폭넓게 발산하는 정보’는 각 당사자들의 정보 맥락을 철저하게 공감할 수 있게 해주며, 본인의 사고를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질좋은 정보들이다. 이러한 질좋은 정보들은 ‘좋은 질문’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닌 ‘공격적인 변호 기질’에 기반한 질문들은 이러한 좋은 정보들을 얻지 못하게 한다. 자신이 얻은 정보들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확증 편향은 더욱 심해지며, 그렇게 정의된 문제는 조직의 문제가 아닌 ‘내가 생각하는 매우 주관적인 문제’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이기적인 문제 정의’가 단순히 한 개인에 지나치면 괜찮겠지만, 이것이 조직 문화로 번져 만연하게 되면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 조직의 회의에서는 ‘조직의 목적’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개개인들이 서로의 생각들이 옳다고 주장하며 내부적인 정치와 싸움만 존재하게 된다.
[공격적인 변호, 그리고 조직을 망치는 ‘공격적인 질문’]
사람들은 조직에서 기본적으로 ‘자신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수많은 미사여구를 붙이며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논의 과정이 지속되면, 상대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굳히고 설득하는데에 매진하게 된다. 조직원들은 조직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본인의 말을 앞세우고 공적을 쌓는 것에 집중하게 되어 이기적인 논의로 변질된다.
더 나아가, ‘적극적인 탐구’의 자세가 단순히 ‘물음표’를 붙이면 되는 것이라고 오해하면 더욱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게 된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여태까지 뭐한거에요?”
이러한 질문들은 겉보기에는 ‘적극적인 탐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완전히 상반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적극적인 탐구와 공격적인 질문의 차이]
적극적인 탐구란, 대화의 중심이 ‘우리’로 설정되어있으며, 방향성은 ‘미래지향적’이다. ‘우리가 지금 A라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잖아요. 우리가 바라는 이 미래와 목적을 이루려면, 저는 당신과 함께 협력하고 열띤 논의를 나누며 정보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해요.’라는 뉘앙스를 지닌다.
공격적인 질문은, 대화의 중심이 ‘나’에게 설정되어있고, 방향성은 ‘과거지향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당신이 나를 한번 설득 시켜봐.’라는 뉘앙스를 강력하게 지니면서, 상대를 깔보거나 강요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상대를 방어적으로 돌변시켜버릴 수밖에 없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는,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죠?”로, 이미 공격적인 변호가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또한, 그 분위기는 상대가 이미 잘못했다는 가정을 하면서 상대가 ‘해명하도록’ 유도한다.
[지향해야할 것]
이런 공격적인 질문은 상대의 의견을 묵살시켜버리거나, 그 논의를 전투적으로 만들어버릴 수밖에 없다. 이런 결과는 성과를 만들고자 하는 개인으로나 조직으로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개인은 갇혀버린 시각만을 강화시킬 뿐이며, 조직은 목적을 절대로 달성할 수 없는 아사리판이 만들어진다.
조직은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사람이란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서로 다른 배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조직에서는 이러한 구성원 개개인들이 가진 정보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질문과 탐구는 구체적이며, 사람의 사고를 확장시키고, 행동에 있어서 변화를 할 수 있게 이끌어준다. ‘그래서 뭐?’, ‘어쩌란거지?’, ‘이 사람은 왜 이런 발언을 한 거지?’라는 감정만 들 뿐, 아무 행동 방향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 대화는 무언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대화가 문제됨을 인지하고 또 상대에게 ‘왜 당신은 이런 식으로 얘기하죠?’라고 말한다면, 이는 다시 ‘공격적인 질문’으로 시작되어 혼란을 야기시킬 수 밖에 없다.
정말로 나 자신의 성공을 바라고, 조직의 성공을 바란다면, 그 문제점을 어떻게 ‘우리’가 ‘미래 지향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부터가 필요하다. ‘왜 그런 식으로 말하시죠?’라고 말하기 보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라는 점에서 생산적이지 못 할 것 같다는 걱정이 들어요. 우리 팀이 함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논의해보는 게 좋을까요?’라고 한 번 제안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