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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한 Nov 04. 2023

그것은 집착인가 사랑인가

혹은 당신의 공허함인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본다.

버스 창 밖으로는 온 세상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아직 물들지 않은 은행나무,

하늘 무서운지 모르고 솟은 높은 빌딩들,

가로수, 전봇대, 걸어가면서 책을 보는 사람,

이 모든 풍경들이 나의 시선을 스쳐 지나가며

나는 그것들을 그대로 흘려보낸다.


문득 이런 풍경들을 가만히 지켜본 지가

마지막으로 언제인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언제일까?

얼마간의 시간 동안 이렇게 평화로운 풍경들을

가만히 앉아 여유로이 관망하지 못했던 것일까.


평일에는 반쯤 뜬 흐린 눈으로 책을 보며 출근하고,

출근해서는 정신없이 치이며 일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입하고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그 느낌이 나쁘지는 않다.

퇴근할 때에는 모든 에너지가 방전된 채로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살을 맞대고,

서로의 힘을 피부로 온전히 느낀다.


관성을 이기지 못해 순간적으로 몸이 기울어

옆 사람의 어깨를 툭 치기라도 하면,

한껏 인상을 찡그린 채

불쾌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사람도 있다.

가끔은 서로의 에너지를 그렇게

무의미하게 뺏고 빼앗긴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탄다.

광역버스는 배차간격이 길어

한 번 놓치면 15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한다.


이어폰을 끼우고,

경제 방송을 틀어놓고는

좌석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인다.

집에 도착해 정신없는 식사를 하고는,

헬스장에 간다. 웨이트를 조금 하고,

수영 강습이 있는 날에는

같은 건물의 수영장에 가서

물에 몸을 내던진다.


그렇게 운동이 끝나면 몸을 깨끗이 씻고,

오는 길에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만 한다.

그녀는 깜빡 졸아서 자고 있을 때도 있고,

폼롤러를 굴리거나 가족들과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받기도 한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 뒤에는

연인 간에는 으레 전화를 하는 게

우리나라의 암묵적인 규칙이 되었나보다.

전화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사랑을 확인하고,

관습적으로 서로를 알아간다.

왜냐고 물어본다면,

그냥 사람들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다 가끔은 싸운다.

사실 자주 싸운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많이 싸울 때는 하루 걸러 하루 싸우기도 했다.

싸우느라 2시, 3시에 잠이 들고는

6시 반에 일어나는 일이 많았다.


원래 다들 이런가 싶을 때도 많았다.

초반에는 밤 잠을 설쳐가며 서로를 알아가지만,

이후에는 서로를 원망하고 싸우느라 밤 잠을 설친다.

싸우는 이유도 되돌아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것이 싸울 일이 된다.


왜 그런 것일까.

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높은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며,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화를 내는 것일까.


왜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상대방에 대해 상상한 그림을 그려놓고는,

왜 당신은 내가 그렸던 상상 속의 그림과

다르게 생겼냐며 서운해하고, 실망하고,

버럭 화를 내고, 상처받고, 서러움까지 느끼는 걸까.


왜 우리는, 사랑한다는 미명 하에

엄격한 재판관이 되는 것일까.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그 모든 사소한 것들에

왜 우리는 그렇게 엄격해져야만 할까.


왜 우리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는 것일까.

정작 그렇게 말하는 우리가

그렇게나 충분하고 완벽한 사람이어서

그러는 것인가?

우리가 바라는 그 무엇들이,

그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도대체 왜 우리는,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

그리고 세간의 많은 소음에 쉽게 흔들리는

자신의 나약함 탓에 자연스레 느껴지는

공허감과 외로움을 타인에게서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채우려고 하며


그것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신은 왜 나의 그것을 채워주지 못하냐'라고

손가락질하며 슬프다고, 상처받는다고 말하며

동정해 주길 바랄까. 그 값싼 동정심으로라도

그 무언가를 그리도 채우고 싶은 걸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능력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뚜렷하고

강인한 삶에 대한 확고함과,

철학과, 스스로에 대한 존경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타인으로부터

마음속의 빈 곳을 채우려는

얄팍하고 이기적인 어떤 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할 수 있다.


밑 빠진 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것이 아닌 타인이 길어놓은

소중하고 깨끗한 물로

일단 급한 대로 그것을 독에 채워 넣고 싶어 하고,


바닥에 난 구멍으로 그 물이 새어나가기라도 하면

왜 이렇게 물이 안 차냐며

너는 그렇게 적은 양의 물로

감히 나의 밑 빠진 독을 채우려고 했냐며

물을 더 가져와야 한다며

상대방을 탓하는 그것이,

그것이 진정으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주장하기 전에,

진심으로 자신을 돌볼 줄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간의 불완전함을 온전히 느끼고 인정하고,

그 불완전함을 다른 누군가를 통해 채우려는

그 어리석은 시도를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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