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은 아빠 기일에, 명절에, 아빠 묘 앞에서도 조잘조잘 이야기를 잘한다.
큰언니는 엄마를 잘 봐달라던지, 막내가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게 해 달라는 그런 이야기들.
작은 언니는 아빠가 꿈에 나오고 나면 이상하게 계약이 잘된다면서 꿈에 찾아와 달라고 까지.
내가 스물셋, 알바를 하던 중 받게 된 전화. 이미 아빠는 돌아가신 후였다.
아빠가 수의를 입던 날도 언니들은 아빠에게 말했다.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거듭 말하며 여기 걱정은 하지 마셔라 가시는 길 안심까지 시켜드렸다.
아빠는 염을 마친 마지막 모습도 살아생전처럼 강단 있고 더할 나위 없이 깨끗했고 한편으론 아기 같았다.
나는 아빠라는 말은커녕 아 소리조차도 내지 못했다.
지금도 왜 나는 도대체 입이 떨어지지가 않을까.
아빠 쉰 살에 태어난 늦둥이인 나는 아빠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나도 아빠를 사랑했다.
어릴 적부터 아빠는 나를 ‘토끼’라는 애칭으로 불러 주셨고 어딜 가든 등에 업고 다니셨다.
아빠만의 은율을 넣어 ‘토끼야~’ 부르시면 나는 그 음에 맞춰 ‘으으응~’ 답했다.
아빠는 입버릇처럼 ‘토끼야~’ 혼잣말을 하신다고 했다.
일을 하시다가도, 내가 보고 싶을 때도 아빠는 허공에 나를 부르셨던 것 같다.
이전에도 없었고 아마 이후로도 없을 사랑을 받은 나는 아빠에게 죄송하기만 하다.
가슴 쓰라린 기억들, 후회와 죄스런 마음들로 어느 날은 자다가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런 사랑을 받은 내가 아빠를 아프게 했던 기억의 파편들이 나를 몇 배로 아프게 한다.
아빠에게 빚진 마음을 어디서 탕감받을 수 있을까.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던 그날,
나는 내 세상이 없어졌다. 하늘이 무너져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아빠, 나는 막내딸이라 조금은 억울해요.
언니들과는 못해도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하셨지만, 저와는 이십삼 년도 채 못 봤으니까요.
아빠를 생각만 하면 코끝이 찡해지고 가슴이 아려와요.
저는 아빠를 아직도 제 마음에서 못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때 마지막으로 아빠의 손을 못 잡아드린 게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있어요.
아빠를 속상하게 하고 슬프게 해서 많이 자책하고 후회해도 제 스스로 용서가 안 돼요.
그게 잊히지가 않아 제가 이렇게 아픈가 봐요.
아빠는 괜찮다고 해주실 텐데... 이 마음도 이제는 좀 털어버릴게요.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 그 죽음의 의미를 찾다가 과열되어 지쳐버린 저는 언니들 뒤에 숨어 덜 아픈 사람처럼 지냈어요.
이제는 삶과 죽음이 있는 인생길에 아빠도, 그리고 저도 죽음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순리인 것으로 받아들여요.
이생과 저승으로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 사랑받은 기억으로 저는 거뜬히 살아갈 수 있어요.
아파하는 시간을 토끼처럼 곱게 잘 살아갈 방법을 찾는 시간으로 써 볼게요.
부디부디 손에 묻은 흙을 털고 마음 조리지도 애끓이지도 마시고요, 초저녁 쪽잠 대신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