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돌려 안 보고, 귀를 막아 안 듣고 싶었어

by 두움큼

내 바로 위 네 살 터울 언니와는 어려서부터 하도 싸워서 애증의 사이였다. 좋다가도 싫고, 안쓰럽다가도 짐스러웠다.

어느 날은 언니가 조직검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피곤함이 몰려왔다.

내 마음속에서는 불쑥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또... 이번엔 또 뭘로 가족들을 귀찮게 하려고...‘


기분 좋은 토요일, 다음 주 있을 교육자료를 준비하던 찰나 전화를 받게 되었다.

희비가 쉽게 교차하던 순간.

발을 동동 그래도 눈물 흘릴 시간이 없었다.

제주에서 육지로 가는 제일 빠른 비행기표를 구해야 했고, 떨리는 손으로 대충이라도 여벌 옷을 챙겨야 했다.


원인은 병명이 길어 기억도 안나는 희귀병이라고 했다.

그때 했던 조직검사로 발견한 병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치료 도중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리고 두 달 후, 형부도 불의의 사고로 언니를 따라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내 조카가 있었다는 것.


불쌍한 우리 언니. 안타까운 형부. 그리고 내 조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세명의 가족을 잃었다.

도저히 믿기 힘든 현실을 마주 할 자신이 없어 고개를 돌려 안 보고, 귀를 막아 안 듣고 싶었다.

외면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언니 이름도 부르지 못하고, 언니 이름을 듣는 것도 힘들다.

너무 아픈 것은 꺼내지 않는 게 차라리 나으니까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내 마음에 숨겨 버린다.

언니에게 가졌던 너무한 생각도 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 이런 불행은 온 적이 없는 것처럼 묻어 놓고 살아간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 마음속에서 다 꺼내어 털어 버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건 내가 아파하는 것보다 고통 없는 곳에서 편안하길 빌고 또 빌어 주는 것이 언니에게 더 좋을 거라 생각한다.


다음 생이 또 주어진다면 우리가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길.

영특한 사람으로 태어나 토끼처럼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살길.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이 생에서 못다 산만큼 오래 행복하길.




언니. 언니를 보내고 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지?

언니가 너무 아파서, 언니에게 미안해서, 마음이 다 닳아서 해어졌어.

82년생 언니와 동갑인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언니 생각이 나서 너무 슬펐어.

서른아홉 살, 나보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언니가 너무 그리워서 지금도 한 번씩 폭풍처럼 슬픔이 몰려와 한참을 엉엉 울게 돼.


그리고 아기는 그곳에서 만났어?

아마 언니가 조카를 두고 갔다면 나는 내 아이로 키웠을 거야.

세상의 빛도 못 보고 떠난 작고 작은 아가가 내 마음을 어찌나 사무치게 하는지.


언니 천도재를 지내던 날, 스님 꿈에 어떤 여자가 갓난아이를 안고 감사인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여자가 언니라고 믿고 싶었어. 그래서 좋은 곳에서 아기와 있구나 조금은 안도했었어.


그리고 형부. 기가 막힌 소식을 듣고는 세상이 이럴 수는 없다고,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남은 가족들은 다 가슴을 쳤어요.


형부가 우리 언니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미워하기도 했어요.

따뜻한 눈빛으로 형부를 보지 못한 시간이 죄송해요.

형부가 사고 난 그 길을 출퇴근할 때마다 지나가야 하니까 마음이 너무 쓰라려요. 출근길엔 거의 매일 형부를 생각하고 엄마 집 여기저기 형부의 손길이 남아 있어 눈길이 닿을 때마다 감사해요. 형부가 많이 안타깝습니다.


가족들에게는 가혹한 아픔으로 남아있지만 저마다의 방법대로 애도하고 있으니 세 가족이 그곳에선 아픔 없이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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