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둥이가 새끼 여섯 마리를 낳았다. 조그맣고 눈도 못 뜬 새끼 강아지가 너무너무 귀여웠다.
가랑비가 살살 내리던 일요일, 검둥이와 삐뚤삐뚤 걷기 시작한 여섯 마리 강아지를 데리고 마당에서 놀았던 순간 느낀 행복이 생각난다.
다음 날 하교를 하고 강아지랑 같이 놀 부푼 마음으로 집에 부리나케 달려왔는데 새끼 강아지들이 없어졌다.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 엄마에게 물으니 어제 비를 맞아서 다 죽었다고 그래서 멀리에 묻어주었다고 하셨다.
새끼를 잃은 검둥이가 너무 가여워서 검둥이 집에 몸을 구기고 들어가 위로도 하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다.
어제 내가 데리고 나와 가랑비를 맞지만 않았어도...
여섯 마리를 모두 잃게 한 게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더 이상 귀여운 새끼 강아지를 엄마인 검둥이도, 나도 못 본다고 생각하니 정말 속이 상했다.
(나중에 언니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는데 새끼 강아지들은 죽은 게 아니고 입양을 보낸 거라고 했다. 함께 의논이라도 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그냥 사실대로 말씀해 주시지...)
꽤 자주 강아지 집에 들어가 딱한 검둥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언니는 '야! 밖에서 키우는 개집에 왜 들어가. 더럽지도 않냐'라고 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1초도 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검둥이니까.
그랬던 검둥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이별에 며칠 밤낮으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검둥이가 남기고 간 털을 모아 소중한 것들을 모아놓는 책상서랍 첫 번째 칸에 고이 보관하면서 계속 기억해 줄 거라고 약속했었다.
얼마쯤 지나 뒷발 한쪽을 절었지만 재빠르게 잘 달리는 누렁이가 생겼다.
나는 검둥이를 잃어 슬픔이 가시지 않았지만 뒷발을 절뚝이는 누렁이가 측은했다.
그런데도 잘만 달리는 누렁이 모습에 점점 내 마음이 열렸던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누렁이를 아마 2년 정도를 키우고 있었는데...
아빠 아시는 분 중에 여러 마리 개를 키우는 분이 다짜고짜 우리 누렁이를 데려간다고 했다.
안 된다고, 내 동생이라고 막아섰지만 아빠와 이야기가 됐다고 막무가내로 우리 누렁이를 끌고 갔다.
아빠에게 당장 확인할 방법도 없었고, 그 아저씨가 무섭기도 했다.
안 끌려가려고 세 다리로 있는 힘껏 힘을 주면서 나만 쳐다보며 눈물 흘리던 누렁이.
나도 동동거리며 울고 언니와 껴안고 울고 털썩 주저앉아 울었다.
그때, 누렁이를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고 괴로웠다.
누렁이를 껴안고서 죽어도 데려가지 못하게 했어야 했는데.. 후회에 후회로 힘들었고 용기를 내지 못한 내가 두고두고 미웠다.
어른들이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내막은 지금도 모르지만 어린 내 마음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또 누렁이가 남기고 간 털들을 모아 검둥이 털이 보관되어 있는 곳에 같이 보관했다.
검둥이와 누렁이를 보내고 아픔이 커서인지
검둥이와 누렁이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한 나름의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동물을 좋아하는 나는 더 이상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검둥아, 누렁아. 언니는 아직 너의 모습들이 조각조각 기억나.
검둥이와 새끼 강아지를 보내고 흘린 눈물과 아픈 마음,
누렁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또 인간의 무례함에 분노도 일어.
너희를 보낸 후엔 다른 강아지에게 무감해졌어.
근데 엄마 집에는 지금 흰둥이가 있잖아.
엄마 강아지니까 우리 가족으로 생각은 하고 있는데
너희를 배신하는 것 같아서, 또다시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아서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게 돼.
언니는 다른 강아지는 끝내 사랑하지 못할 것 같아.
이게 언니가 할 수 있는 애도고, 미안한 마음을 씻을 수 있는 방법이고, 너희를 정말 사랑한 증명이야.
너희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킬 거야.
그런데 이제는 아주 가끔씩만 생각할게.
아, 치즈까미라고 고양이 두 마리는 조금 예뻐할 테니 서운해하지 말아 줘.
(혹시 너희가 환생해서 우리 집에 온 건 아니... 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