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안실 안, 처음으로 마주한

by 두움큼

“망각은 신의 선물 아닌가요?”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대사다. 그런데 그날, 뇌리에 박힌 그 장면은 또렷하기만 하다.


전화벨이 울렸다.

“너희 할아버지가 우리 집 앞에서 교통사고가 나셨어, 구급차에 실려 갔는데 빨리 부모님께 말씀드려!”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게 뭔지 그때 알았다.


아빠와 나는 영안실 앞에 있었다. 나는 아빠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후부터 아빠와 내가 영안실 앞에 있기까지 그 사이의 기억만 소멸되었다.


“아버지 가시기 전 마지막 얼굴은 꼭 봐야겠습니다.“

아빠의 무게 실린 말에 직원분은 ’그 부탁은 들어 드려야 겠다‘며 경건한 표정으로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나도 할아버지 보고 싶어.”

아빠는 4학년 어린 나를 데리고 가셨다.

우리는 두려움을 나누듯 손을 꼭 잡은 채 뭔가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영안실 안에서 할아버지의 시신을 마주했다.

고운 할아버지. 방금 전 사고로 상처가 생긴 얼굴에 꾹 감은 두 눈은 눈꺼풀의 작은 떨림도 없었다.

실감이 안 났다.

“간난아, 막걸리 사 오너라”

어제까지 단정하게 한복을 입으시고 심부름을 시키신 할아버지셨다.


그날, 할아버지 시신을 본 그날부터 시작된 것 같다.

무언가 씌이기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많은 가족들이 가는 길을 봐야만 하는 아픈 운명이.

그래서 아빠를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면, 아빠가 나를 놓고 혼자 들어가셨다면,

그럼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미련스런 생각을 해본다.


엄마는 할아버지의 한복 동정을 매일 같이 바느질하셨고, 정성스럽게 할아버지 밥상을 차렸다.

맏며느리 귀하다시며 시집살이에 힘든 엄마에게 금반지를 해주시는 자상함이 있으셨다.

할아버지는 서예를 하셨고, 글을 쓰셨던 한량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빠가 어려서부터 가족을 부양하느라 일을 해야 했으니 원망할 만도 한데,

할아버지를 보내시고는 오래 침묵하셨다. 엄마처럼 고모처럼 울고불고하지 않은 아빠가 더 슬퍼 보였다.

장례가 끝나고 할아버지가 사고나신 곳에 가보았다.

뺑소니 사고. 그 도로에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흰색 락커로 그려져 있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고 한동안 그 길을 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도로에 cctv도, 목격자도 없어 범인을 끝내 찾지 못했다.


신이 나에게는 망각을 선물로 안 주셨거나, 내가 내 기억은 죽어도 사수하겠다 고집을 부렸거나.

그날 본 영안실 안, 할아버지의 모습은 지금도 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하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신 할아버지.

11살, 처음으로 죽음과 장례를 지켜봤어요. 그날의 기억이 적잖이 충격이었는지 삼십 년이 지났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하기만 합니다.


산소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께 올릴 막걸리를 준비해 드리니,

글을 쓰셨다는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저도 이렇게 끄적거리는 중이니,

이제는 죽은 가족의 시신을 보는 게 무섭지도 않게 되어버린

간난이 막내를 어여삐 봐주셔서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저의 이 기억도 같이 흘려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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