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도 그리울 엄마까지 보내고

by 두움큼

꿈이라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세상이 나를 '너 이래도 안 무너질래?' 밀어붙이는 것 같았다.


응급실로 달려가며 '그냥 차라리 기절해 버렸으면 좋겠다.

내가 엄마도 없이 다시 웃을 수 있을까.' 한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아빠를 보낼 때는 물을 한 모금도 못 넘겼었다. 어린 나는 그저 슬퍼만 해도 됐었다.

어른의 나이가 되니 챙길 것도, 할 것도 많아졌다. 와주신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식사도 챙기고

위로를 받다가 위로도 해드리고 씩씩하게 고개 숙여 배웅도 해야 했다.


밥을 먹었다. 밥수저가 입으로 들어갔다.

슬퍼할 겨를도 없어서 지금 내가 엄마를 보내고 있는 건지, 이게 현실인건지도 둔해졌다.


엄마를 그곳에 혼자 두고 돌아왔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엄마가 없는 집으로 돌아와 나는 몸살이 났다.

끙끙 앓다가 펄펄 열이 났다가 잠옷이 다 젖도록 땀을 흠뻑 쏟았다.


당분간 언니 집으로 가서 지내자고 했지만 그냥 이 집을 지킬 거라고 했다.

엄마를 떠나보낸 곳이지만 동시에 엄마와 살던 시간을 지키고 싶었다.

며칠 더 쉬다가 출근도 했다.

평소처럼, 평소보다 더 웃기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농담도 하고 봄이 온다고 좋아도 하고 고기도 먹었다.


큰언니는 나를 못 울게 했다.

네가 울면 엄마가 못 떠난다고, 가시는 길 잘 가게 해드려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사십구일 동안 엄마가 곁에 있는 거니까 이승에 미련 갖지 말고 좋은 곳에 가시라고 위로해드려야 한다고 했다.

다음 생엔 좋은 인연으로 만나자는 말도 해주라고 했지만,

그 말이 이렇게도 슬픈 말인지 목에 탁하고 걸렸다.


나는 그냥도 흐르는 눈물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슬픔도 잘 참아내고 있는 것 같다.

엄마를, 꿈에도 그리울 우리 엄마를.




'엄마, 우리 지금처럼만 살자'며 연재를 완료한 브런치북 [엄마와 함께 사는 중입니다]를 읽어주신 독자님들도 놀라실 것 같습니다.


지난달 [엄마와 함께 사는 중입니다] 연재를 마치고 이주 뒤,

현재 쓰고 있는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사이] 연재를 막 시작한 무렵 엄마는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무슨 장난 같고 드라마 같고 거짓말 같고 잔인한 겹침이었습니다.


그 사이 예약글로 써놨던 글들이 자동발행되었긴 한데, 이 연재글에 엄마가 포함될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단 한순간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세상이 너무 가혹하게 여겨지면서도 저는 이를 꽉 물고 버텨봅니다. 연재를 중단할까 하다가 물러서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평소보다 더 힘을 주고 살다가 어느 순간 긴장이 풀어지게 되면 저는 무너질 것 같아 무섭기도 합니다.

큰언니는 엄마를 사십구일 동안 절에 모시며 칠일재를 드리고 매일매일 기도도 하러 갑니다.

넷째 언니는 집에서 잘 동생걱정에 스케줄을 조정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오가며 온기를 나눠주고 있고요.

할머니를 보낼 때도 안 울던 삼촌이 처음으로 소리를 내어 울었고, 엄마강아지 흰둥이는 곡기를 끊고 슬퍼했습니다.

저는 밤이 되면 엄습하는 불안을 온몸으로 버티며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각자의 방법대로 엄마를 애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매들은 엄마를 좋은 곳에 보내기로 결심하고 시시때때로 불경을 틀어놓고 기도합니다.

십계명에는 다른 신들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기독교인인 저는 부처님 앞에 절을 했습니다.

이생에서처럼 고생하고 고단하지 않길 간절히 바라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더라고요.

이렇게 딸들이 정성으로 빌고 있으니 좋은 곳으로 가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직은 무엇인지 어떤 건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엄마를 지켜드리지 못한 밤, 가실 때조차 아프게 가시게 해서 저는 또 어떻게 마음을 싸매고 살아갈까요.


엄마 없는 집, 하늘 아래 아빠도 이제 엄마도 없는 나. 그 고운 엄마 살결을 영영 만질 수 없는 시간만 남아 있네요.

엄마 품에 얼굴을 파묻고 꼭 안겨 있다가 저도 엄마를 꽉 안아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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