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끝여름 꿈에도 그리던 캠핑을 가게 되었다. 들뜨고 신나서 술을 조금 많이 마신 탓일까?
늦은 밤, 밝고 밝은 달빛이 강물에 비춰 윤슬처럼 반짝거렸다.
이렇게 예쁜 달빛이 일렁이는 강물을 본 적이 있던가.
나는 곧장 강가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니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생각은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것인 줄 알았지만 그 순간의 충동은 처음치고는 강했다.
그날 이후로 살고 죽는 것이 나에게도 멀지만은 않은 일 같았다.
그리고 나를 구하고 떠난 언니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고작 13살,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우리 언니.
6살과 10살 동생 두 명을 구해놓고 떠난 우리 언니.
이 단 두줄을 쓰기만 해도 내 눈엔 뜨거운 눈물이 차오른다.
너무 예쁘고 착했다고 했다. 똑똑해서 공부도 잘했다고, 아까운 아이였다고 그리워하는 가족들의 눈물 앞에
죄인처럼 나는 울 수도 없었다.
이 망할 놈의 기억력은 1초 1분 흘러가는 시간의 영상 속에 찰칵 사진을 찍은 것처럼 어떤 장면들이 동동 떠올라 뇌리에 박힌다.
6살의 나도 그 순간이 사진처럼 각인되어 있다.
비가 오고 있었다. 나와 언니를 바위에 앉혀 놓고 어른들이 올 때까지 절대 내려오지 말라고 하고선 언니는 사라졌다.
긴 장마에 강물이 불어있는데도 동네아이들이 수영을 하겠다고 모였는데 급 물살에 그곳에 있었던 아이들이 거의 휩쓸려 갔다는 이야기.
그 속에서 우리 언니는 6살, 10살 동생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건지.
그 난리에 우리 둘이 생존자가 될 수 있었던 건 해봐야 13살밖에 안 된 한 소녀의 절박한 의지와 희생이 있었던 것.
언니가 보고 싶어 얼굴을 그려보고 그려보지만 계속 희미하기만 하다.
목이 메어와서 언니라는 말도 나는 할 수가 없어.
이름도 예쁜 우리 언니.
너무 아픈데 아프지만 보고 싶고 그립고 많이 생각 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더라고.
언니가 그렇게 포기해 버릴 이승이 아니었어.
언니가 살지. 언니가 살았어야지.
나는 언니보다 안 똑똑해서 큰 인물도 못되었고
이렇게 무거운 돌덩이를 안고 살잖아.
언니들은 다 아빠한테 수영을 배웠다는데
그 일 이후 일부러 나는 수영을 안 가르치셨대.
그래서 수영도 못하는 데, 언니도 보냈는데, 나는 물이 좋아. 어쩜 이래?
작년에 베트남으로 여행 가서 스노클링을 해봤는데
예쁜 산호초나 물고기를 보는 것보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기분이 들어서 너무 좋았어
그렇게 바다로, 바다 끝으로, 모래 아래 그 아래로 들어갔으며 좋겠더라고.
언니한테 가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캠핑 가서 강물에 뛰어들고 싶었던 것도.
언니 목숨을 내게 주어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도, 언니가 살지 왜 그랬냐고 원망도,
열심히 살겠다는 약속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그날 죽었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살아 있게 해 줘서
남아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언니를 그리워하는 것 밖엔.
내 마음속에 있는 언니를 꺼내 보는 것 밖엔.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언니 대신, 아니 언니처럼
지켜내야 할 것들을 꾹 잘 지켜내며 살아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