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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주 Jan 20. 2024

새로운 스팟

ep.13

어제 못 갔던 피셔맨에서 서핑을 했다. 매번 가던 웰리가마랑은 물 색깔부터 달랐다. 웰리가마는 바닥이 모래라서 바다 색깔이 예쁘지 않았는데 피셔맨은 파아란 바닷물이었다. 션이 강사로 붙어서 같이 갔다. 배를 타고 포인트까지 가서 몸 먼저 풍덩 빠지고 선장님(?)이 던져주는 보드를 받으면 된다. 새로운 곳에서 서핑을 해보는 것이라 잔뜩 신이 났다. 게다가 션이 가져다준 파도도 족족 잘 타고, 어렵긴 했지만 혼자도 잡아 탈 수 있어서 힘든 줄 모르고 쌩쌩하게 있었다. 강습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파도 잡는 걸 도와준 착한 션 덕분에 더 재밌었다. 3시간 정도를 바다에 떠있으면서 실컷 탔다. 그리고 강한 햇빛에 내 얼굴도 시커멓게 탔다.


이상하게 하품은 가끔 나는데 잠이 오지는 않아서 멍을 때리고 있었다. 심심해 보였는지 서핑샵 사장님이 근처 카페에 데리고 가주셨다. 계단을 올라가서 해는 살랑이고, 바람은 시원하게 부는 자리에 앉았다. 문득 생각해보니 이 동네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본 기억이 없다. 고층 건물도 없다지만 모든 곳들이 계단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리랑카의 여유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처음 왔을 때도 느꼈던 점인데 스리랑카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마음이 가난하지 않고, 한국인들은 가난하지는 않지만 마음은 쪼들리듯 가난하다. 무엇이 나은 건지 옳고 그름의 정답은 없겠지만 조금씩 내려놓고 조금씩만이라도 스리랑카 사람들처럼 자주 웃었으면 좋겠다.


오후 서핑은 웰리가마로 갔다. 자리를 잘못 잡아서 큰 파도에서 고생을 하다가 파도의 크기가 작은 곳으로 옮겼더니 살 것 같았다. 독일에 간 적이 있다고 하니 엄청 좋아하던 한국어 잘하는 독일인 아저씨도 만나고, 전에 내가 션에게 강습 받던 게 기억난다는 스리랑카 아저씨도 만났다. 그리고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할만큼 아름다운 노을과도 마주쳤다. 큼지막한 해가 떨어지면서 시시각각 하늘 색깔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이 낭만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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