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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in Apr 25. 2024

[KR-Seoul] 양재천 찬가

봄이 지나는 시간

봄이 지나는 시간.


요즘엔 부쩍 일을 많이 한다.

샌디에이고에서 있을 때는 다시는 일을 하지 않을 기세였는데, 

막상 일을 하니, '그래, 내가 생각보다 일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난 내가 속한 분야에 있어서 최고의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허접한 수준의 그저 그런 역량과 경험을 가진.

그럼에도 그저 도움이 된다면,  좀 더 나아지는 것에 작은 기여라도 한다면. 


안타깝게도 세상은 층층이 뛰어나고 눈부신 사람들이 차고 넘치지만, 

또 한편으로는 후지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도 차고 넘친다.

누구나 다 그 두 곳을 넘나드는데, 

특별히 기죽고 주눅 들 필요도 없고, 유별나게 업신여기거나 무시할 필요도 없다.

그냥 그렇게 때론 후지게 때론 괜찮게 다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뿐이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봄빛 아닌지. 설레는 연둣빛 숲 속에 핑크빛 여린 단풍잎이 어찌나 예쁘던지.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할 기회가 여기보다는 미국에서 확실히 더 많았다.

아이들이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또 아무도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난 인간의 삶의 목표가 '내가 원래 가지고 있는, 원래의 그것보다는 좀 더 나은 인간인 채로 죽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한 장의 빛바랜 사진처럼 각인된 장면이 있다.

어둡고 좁은 빌라들 사이로,  좁은 집들이 빼곡하고.

거실도 없는 작은 집 한 칸에서 두 남자 청소년 아이들이, 한대의 PC 앞에서 게임을 하던 어느 집의 모습. 

부모님들이 바삐 일터로 나간 듯하고, 아이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어둡고 쓸쓸한 집.


그렇게 어둡고 온기가 없는 곳에서 쓸쓸함을 안고 자라난 아이들에게 

넌 왜 게임을 하냐고, 왜 공부를 하지 않냐고, 왜 꿈을 크게 가지지 않는 거냐고 다그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주하는 모든 사람의 삶과 순간을 다 알 수 없는 우리로서는, 그리하여 사람들을 쉬이 판단할 수 없다.

너무 자주 잊고 판단하고 또 판단하지만. 눈앞에 서 있는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의 모든 것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되어 판단되어질 수는 없다.

어리석은 인간에게 그나마 허락된 정도란,


내가 가지고 태어난 정신적, 물질적, 기운, 운명, 그 모든 것.

'내게 허락된 그 무엇'에서 시작한 나의 삶이,


그저 좀 더 선하고 진정 어린 마음으로 삶을 정성스럽게 살아내었을 때 도달한,

'지금의 나'와 비교될 수 있을 뿐.


'허락된 삶'보다 '마감하는 삶'이 (어떤 의미로라도)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자체로 삶은 아름답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비가 살짝 내린 봄 숲을 거닌다는 것은 천국이 있다면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만 같은 이 기분.



양재천 예찬.

작은 숲과 곳곳이 연결되어 있고, 벚꽃 날리는 4월이 아니더라도 매 순간 참 좋은.

제주도의 샤려니 숲길보다는 사람도 많지만, 샤려니보다는 자주 찾을 수 있는.


그 아름다운 길을 따라 무작정 걷기가 심심하면, 보물창고 같은 소중한 곳을 목표로 하여 또 걷는다.

샌디에이고의 엔시니타스 도서관은 그리워도 갈 수 없지만, 이곳 도서관은 맘만 먹으면 매일매일 또 간다.

책을  보던 보지 않던, 그저 통유리에 비친 양재천을 바라보기 위해서든.. 가고 또 가도 그리운 이곳.


봄이 지나가는 시간.

그 아름다운 시간과 공간 안에 머무는 것만으로 그저 좋네.

이런 길 끝에 도서관이라니, 너무 로맨틱 하지 않은지....



분당의 탄천도 아름답고, 대전의 갑천도 좋지만. 잘 가꿔지고 아기자기 보기 좋은 건 양재천 만할까 싶다.

이곳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이곳이 삭막하였을까. 부자들은 탁 트인 한강뷰를 좋아한다던데, 부자랑 거리가 먼 나이어서인지 탄천, 갑천, 양재천 같은 천들이 더 익숙하고 좋다.  그늘도 많고, 숲이랑도 더 가깝다. 이만한 호사가 없다.

참 곳곳에 멋드러진 벤치와 놀이터, 쉼터. 참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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