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야 붉은 단풍
올 가을은 유달리 오래 따뜻한 것 같다.
캘리포니아의 누르스름한^^ 따뜻한 가을을 2년째 보고 와서일까,
붉은빛이 감도는 이 따뜻한 가을이 참 좋구나.
봄과 가을은, 아주 덥고 아주 추운 극한의 상태를 이어주는 변곡점 같은 시기.
사람의 인생도 계절 같다면, 이제 나의 인생은 여름을 지나 가을일까 초겨울일까.
무언가 변화가 가득한 봄과 가을은 닮았지만 다르다.
봄은 때로는 춥고 매섭지만, 화려하고 눈부시다. 연둣빛 새싹과 화려한 봄꽃 덕분이다.
순하지만 아름답고, 봄비가 내릴 때면 모든 게 신비롭다.
가을은 쓸쓸하지만 때론 온화하고 따뜻하다. 낙엽의 바스락 거림과 향기가 좋다.
알록달록 단풍과 은행이 몹시 화려하고, 가을비가 내리면 마음 가득 쓸쓸함이 채워진다.
삶이 늘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이 아니라는 것은 서글프다.
힘들었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웠던 시절이 지나고,
그래도 누군가는 아름다운 가을을 만들어내고 그 가을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순하디 순한 핑크빛보다는 때로는 단호한 빨간 단풍잎의 모양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직장을 다니면서 가사와 육아를 책임지던 그 '말도 안 되게 억울하던 시절'을 어찌 보냈나 싶었는데,
그 '말도 안 되게 억울하던 시절'에는 꼭 해야 하는 회사일과 아이들 관련된 일 외에는 모든 일을 정말 건성으로 아무렇게나 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해야 할 일을 주르륵 적은 to do list를 옆에 끼고 '미친년 널 뛰듯' 정신없이 살아왔던 그 시절.
그렇게 살아오던 일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노동을 제외하고 났더니,
그 자리에는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일상의 소소하나 중요한 일들이 꼭꼭 채워진다.
창 가득히 산이 담긴 풍경을 감상한다거나, 햇빛이 비치는 화분의 풀잎이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너무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되거나, 작은 화분에 담긴 초록빛에 마냥 감탄을 하거나.
혹은 아이방을 이리저리 꾸며 주거나, 맘에 드는 가구를 직접 조립한다거나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그동안 마음을 담지 못했던 일상의 모든 일에 마음을 꼭꼭 담는 중이다.
아, 내가 놓치고 지나친 참으로 많은 일들.
바깥의 아름다움을 집 안으로 모두 들일 수는 없지만, 집 안이든 밖이든 온통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하면 좋겠다. 가끔씩 심통이 나고 화가 나는 마음도 많은데, 이렇게 많은 아름 다움 속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고 살아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