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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부마 Dec 11. 2024

마흔의 부부 생활, 관계의 재발견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엄마가 마흔둘, 아버지가 쉰 살이었을 때, 나는 열여덟 살이었다. 만약 그때 누군가 나에게 “너희 부모님도 섹스를 한다”라고 말했다면, 나는 크게 충격을 받고, 절대 그럴 리 없다고 항변했을 거다.


어느덧 내가 마흔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마흔 이후의 사람들도 여전히 사랑을 나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지, 사람들이 부부의 성생활에 대해 잘 말하지 않을 뿐이다. 나 역시 친한 친구들과 모여 서로의 부부 관계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원하지 않아도 상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정사 장면은 에로틱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 모습이 내 앞에 앉아 있는 친구와 그 남편으로 대체되는 장면을 굳이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나는 왜 ‘마흔의 부부 관계’에 대해, 그것도 누구나 볼 수 있는 브런치에 굳이 쓰고 있는 걸까? 이유는 혹시 7년 전의 나처럼 “우리도 결국 섹스리스가 되겠구나” 하고 미리 체념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서다.


출산 후, 소원해진 부부 관계


2016년, 첫아이이자 유일한 아이인 나단이를 출산했다. 나는 자연분만과 모유 수유가 산후 회복을 빠르게 한다는 말을 믿었고, 태반을 건조해 알약으로 만들어 먹으면 회복이 더 빠르다는 정보를 접하고 태반도 먹었다. 하지만 ‘빠르다’는 기준이 모호했다. 나는 3개월 내에 회복되길 기대했지만, 6개월이 지나도 아이가 나온 부위는 여전히 아팠고, 기분도 우울했다. 게다가 나단이는 예민한 아기였다. 젖병과 분유를 거부했고, 밤에는 두세 시간 간격으로 깼다. 이런 상황은 1년 넘게 이어졌다.

나는 남편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은커녕, 남편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조금이라도 나를 건드리면 짜증이 날 것 같았다. 남편 역시 피곤한 아내와 손이 많이 가는 아이를 돌보느라 관계를 시도할 여력조차 없었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나면서 자는 시간이 길어지긴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일상에 치여 지쳐 있었다. 특히 밤에는 아이를 재운 뒤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는 게 더 행복했다.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이 들더라도 피곤한 몸 때문에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 일쑤였다.


각방 생활


우리 부부는 결혼 2년 차에 침실이 여러 개인 집으로 이사하면서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남편의 코골이 때문이었다. 신혼 때는 스튜디오에서 함께 잠을 자야 했기에 남편이 먼저 잠들면 나는 한참 뒤척이다 겨우 잠들곤 했다. 그러나 각방을 쓰면서 숙면을 취했고, 일 년 넘게 기다렸던 아이도 생겼다. 어쩌면 잘 잔 덕분이 아닐까 싶다.

각방을 쓴다고 해서 사이가 멀어지진 않았다. 오히려 밤마다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웃다가 “잘 자요, 내일 봐요!”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주방에서 서로를 꼭 안아주며 “잘 잤어요!” 하고 반갑게 맞이했다. 다만, 같은 침대에 누워 자연스럽게 스치며 사랑을 나누는 우연한 기회는 없었다.


결혼 4년 차쯤 되었을 때 문득 “이러다 우리 부부도 섹스리스가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그 재미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니 아쉽고, 왠지 우울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고, 서로를 많이 사랑했다. 그래서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사랑이 충분하다면 육체적인 사랑은 어느 정도 포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줄었다.


마흔 이후, 다시 타오른 사랑의 불씨


1. 체력 소모가 줄었다.

나단이가 여섯 살이 되면서부터 부모가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여전히 남편은 업무가 많고, 나도 집안일과 작업으로 바쁘지만, 이제는 아이가 울거나 보채는 일도, 다치거나 길을 잃을 걱정도 거의 없다. 사랑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아이가 크면서 여유가 생기니, 부부가 서로를 더 바라보고 보듬을 여력이 생겼다.


2. 운동으로 체력이 좋아졌다.

지난 새해부터 헬스클럽에 등록해 퍼스널 트레이너의 지도 아래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을 통해 몸이 단단해지고 가벼워졌다. 육아로 인한 체력 소모가 줄어든 상황에서 운동으로 체력을 더 끌어올리니 남은 에너지를 더 잘 활용하고 싶어졌다.


3. 식단 조절로 체중을 줄이고 뱃살을 뺐다.

육체적인 관계에서 몸의 상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1년 넘게 식단을 채소와 단백질 위주로 바꾸었고, 거의 매일 남편에게 점심 도시락을 싸주었다. 그 결과, 남편의 뱃살이 사라졌다. 30대 몸매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서로 매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부부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4. 우리에게 맞는 시간대를 찾았다.

우리는 밤보다 낮에 사랑을 나눈다. 충분히 자고, 아침을 먹고, 컨디션이 좋을 때. 밤에는 하루 종일 에너지를 다 쓰고 나면 지쳐버리기 쉽다. 애써 분위기를 만들고 시도했다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실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부마다 기운이 가장 좋은 시간이 다를 수 있다. 필요하다면 반차를 내서라도 서로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5. 나이가 들며 서로를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결혼 초에는 서로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상대의 취향보다 자신의 선호를 앞세우거나, 서툴게 시도했다가 기대와 다른 반응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마흔이 되면 어느 정도 서로를 알게 된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이해하고, 쌓인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사랑을 나누는 동안 대화할 수 있는 여유와 노련함도 생겼다.

솔직하되 다정한 태도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무조건 상대를 위해 한다거나, 만족하지 않았으면서도 좋은 척을 하는 태도는 오래갈 수 없다. 서로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 자신도 존중하는 솔직한 태도가 부부 관계를 더 건강하고 만족스럽게 만들어준다.


6. 정서적으로 안정되었다.

함께 쌓아온 시간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쌓아온 정서는 부부 관계의 단단한 토대가 된다. 육체적 관계는 단순히 욕망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 서로를 포용하고 사랑을 표현하며 정서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만약 당신이 예전의 나처럼 아기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일상에 치여 배우자와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상황이라면, 조급해하거나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여 특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배우자와 솔직히 대화하고 필요할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그러나 당신이 배우자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새로운 부부 관계를 발견할 시간과 기회는 여전히 충분하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시간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매일 조금씩 당신과 배우자의 관계에 작은 변화를 더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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