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차이, 온도 차이, 성격 차이
결혼 2개월 차.
5개월의 짧은 연애를 하고 결혼 한 커플 치고는 크게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10월 결혼식, 하와이 허니문, 11월 서울에서 한 번, 광주에서 한 번씩 피로연을 하고 보스턴에 돌아왔다.
2주 정도는 별 다른 일정 없이 푹 쉬었다.
금요일, 눈에 많이 내렸다.
보스턴은 '브라운 스톤'이라는 붉은 벽돌 건물이 많다. 눈이 내리면 도시는 왠지 더 운치 있어 보인다.
토요일에 하버드 대학교가 있는 케임브리지로 데이트를 하러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남편과 시내에 나가는 날. 소풍 가기 전날 초등학생처럼 설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평소 안 하는 화장도 하고, 나갈 준비를 다 했다.
그런데 남편은 평소보다 더 늦게 일어났다.
샤워를 하러 들어갔는데, 30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점점 인내심을 잃어갔다.
책을 펴서 읽어보려 했지만, 금세 덮어버렸다.
8평짜리 좁은 스튜디오 안을 서성거렸다. 이럴 때는 공간이 조금 더 넓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다섯 발자국 걸으면 벽이다. 다시 반대로 다섯 발자국을 걸으니 또 벽이다.
답답하다. 나가고 싶다. 지금 당장!
시계를 본다. 5분이 지났다. 남편은 아직도 욕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 보고 싶다. 도대체 35분 동안 혼자서 좁은 화장실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좁은 공간을 싫어한다.
그래서 샤워도 얼른 끝내고 나온다. 5분이면 충분하다.
볼일도 웬만하면 3분이면 충분하다. 얼마나 빠른지, 종종 친구들은, "쉬했어?"라고 물으며 내 속도에 놀라곤 했다.
그런 나와는 달리, 이 남자는 느려도 너무 느리다.
남자가 도대체 씻는데 오래 걸릴 필요가 있을까. 머리도 짧은데.
혹시 몸에 있는 털 한 올, 한 올을 정성스럽게 씻고 있는 건가.
어떻게든 저 안에 들어가 있는 남자의 행동과 심리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데, 그가 나왔다.
"빨래했어???"
툭 하고, 내 입에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남편은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서 화장실 문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는 나를 보고 움칫했다.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셔츠와 바지를 입는 그의 동작은 슬로모션이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른다.
드디어 집을 나섰다.
캠브리지 거리에는 하얀 눈이 쌓였다.
보도에 눈이 녹아 질척거리긴 하지만 풍경만큼은 아름답다.
뾰족한 첨탑이 있는 하얀 교회가 햇빛을 받아 눈과 함께 반짝반짝 빛이 난다.
나는 금세 집에서 느꼈던 짜증스러운 감정을 잊어버렸다.
신이 나서 남편에게 눈에 보이는 것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며 종알거렸다.
그런데 이 어두운 기운은 뭐지?
남편은 내 말에 대답을 하고 있지만, 평소와 다르다.
하지만 딱히 그가 기분 나쁠 상황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한다.
작은 상가 안에 일본 사람이 하는 함박 스테이크 집을 찾아갔다.
하얀 타원형 접시에 에 겉을 노릇하게 구운 타원형 함박 스테이크에 포일에 구운 감자와 야채가 곁들여 나왔다.
스물일곱 살에 혼자 도쿄에서 살 때 먹었던 게 생각났다.
그리움과 맛있음을 동시에 느끼며 나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지금 이 느낌을 남편과 공유하고 싶다.
맞은편에 앉아서 해물 야끼소바를 먹고 있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본래도 차분한 성격이지만, 지금은 지나치게 차분하다.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
"오빠,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아니긴, 분명 안 좋은 일이 있는데. 말해봐요."
그는 계속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집요하게 물었다.
결국 그는 입을 열었다.
"아까, 내가 샤워하고 나왔을 때, 당신이 나한테 빨래하냐고 했잖아요.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어요."
잠깐,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화를 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애써 참아가며 웃음으로 승화하려고 한 말인데, 기분이 나빴다?
내가 그에게 존중의 범위와 높이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았다는 걸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남편은 9년 동안 꾸준히 나에게 존댓말을 쓴다.
기분이 상하거나, 화가 났을 때도 반말을 하지 않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존중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마음만 전해지면 형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말'이 매우 중요했다.
말이 곧 존중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내가 "빨래하냐?"라고 했을 때, 그는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내가 자신을 함부로 대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화만 내지 않으면 괜찮은 줄 알았다.
말투도 문제였지만, 서로의 공간과 시간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려 한 것도 그의 맘을 불편하게 했다. 어떤 사람은 준비하는데 10분이 걸리기도 하고, 30분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각자 필요한 시간이 다르다.
그런데 나는 내가 정한 시간, 내가 원하는 시간에 상대방도 맞춰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함께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필요한 시간이 다르단 걸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오해도 있었다.
남편과 내가 욕실에서 느낌도 달랐다.
나에게 욕실은 비좁고, 습하고 답답한 공간이었다.
반면, 그에게는 따뜻하고, 안락하고, 혼자서 생각을 할 수 있는 장소였다.
함께 살면서 보니, 나는 멍 때리는 시간이 별로 없는데, 남편은 멍하니 혼자서 생각에 빠질 때가 많았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코딩과 공식을 해결법이 생각나는 중이었다.
여러 해 동안 우리는 서로의 차이에 놀라고, 이야기하고, 인정하고, 합의점을 찾아나갔다.
함께 외출할 때, 남편이 먼저 샤워를 하고 내가 다음에 한다.
그가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침대에서 뒹굴거리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일단 내가 발동을 걸면, 속도를 늦추기가 힘들다. 그래서 아예 늦게 시동을 걸기로 했다.
그가 멍을 때리면, 말을 시키지 않고 내버려 둔다.
기분이 상하거나, 화가 날수록 존댓말을 사용한다. 문제의 원인과 합의점을 찾는데 집중해야 하는데 마투 때문에 발목을 잡히고 싶지 않아서다.
그리고 9년 동안 애 낳고, 키우고, 지지고 볶으며 살다 보니, 말투 하나하나에 기분이 상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내가 그한테 익숙해졌듯, 그도 나에게 익숙해진 거다.
서로의 본심에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신뢰도 생겼다.
서른 살이 넘도록 자기 식대로 살아온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되었다.
같은 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다. 속도차, 온도차, 성격차.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이 만나 적당한 속도를 찾는다.
뜨거운 사람과 차가운 사람이 만나 미지근한 온도를 만든다.
이런 성격과 저런 성격을 비슷하게 맞춰나간다.
'맞춰가기' 결혼 생활의 묘미자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