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고기보다 귀한 것
우리의 신혼집은 남편이 결혼 전부터 5년째 살고 있는 스튜디오(단칸방)이었다.
보스턴 찰스타운 네이비 야드는 번화가인 노스앤드 다리 건너에 있는 한적한 동네였다.
하버드 연구소와 요트를 갖고 있는 은퇴한 노인들이 사는 고급 타운 하우스가 있고,
작은 카페 두 개, 편의점 하나, 한국인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세탁소, 강 건너편에 보스턴 시내를 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전부였다.
그 흔한 슈퍼마켓 하나가 없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연구원 셔틀버스를 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홀푸드에 가서 장을 봤다.
생활비는 빠듯했다.
남편은 다음 해부터 월급이 오를 예정이었기 때문에 결혼을 그 이후에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원거리 연애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위태로운 관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을 하자고 했다.
일 년 동안, 생활비의 3분의 2는 남편이, 나머지는 내가 내기로 했다.
보스턴은 집세가 비쌌다. 방도 없고, 화장실 하나, 작은 부엌 하나가 있는 스튜디오 월세가 200만 원이 넘었다. 거기에 세금을 내면 남편 월급은 남는 게 없었다. 내 돈은 식비와 생필품비로 썼다.
결혼 초기에는 내 음식을 먹어줄 누군가가 있다는데 신이 나서 이것저것 매일 요리를 했다.
스파게티, 인도 카레, 스테이크, 마들렌, 초콜릿 케이크.
주말이면 보스턴 시내에 나가서 데이트를 했다. 예쁜 카페도 가고, 맛집도 갔다.
하지만 금방 한 달 예산을 초과했다. 그때부터는 식비와 데이트 비용을 줄였다.
하루는 캠브리지에 있는 한인마트, H마트에 갔다.
순대, 모둠전, 모둠회, 냉동 만두, 가락국수, 라면, 한국 과자.
전부 카트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국 식품은 미국 식품보다 비싸다.
고급 식재료다. 먹고 싶은걸 다 살 수는 없었다.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그러다 선홍빛에 하얀 마블링이 자잘하게 있는 한우가 눈에 들어왔다.
미국 마트에서는 마블링이 고운 고기가 흔치 않다. 미국인들은 스테이크는 살코기를 좋아하고, 돼지고기 삼겹살에는 지방이 거의 반이다. 한국 고기와 커팅법이 다르다.
한우 한 팩을 집었다가 가격을 보고 놀랐다. 30불(4만 원)이 넘는다.
그렇다고 그 앞을 쉽게 떠나지도 못했다.
계속 팩을 들었나 놨다가 만지작거리는 나를 보고 남편이 한마디 했다.
"우리 오늘 한우 먹어요."
나는 속으로 기뻤지만, 네가 원하니 마지못해 산다는 듯이 카트에 한우를 담았다.
이왕 먹는거 제대로 먹고 싶어서 겨우 20장에 4불이나 하는 비싼 깻잎도 한 팩 샀다.
얼른 집에 가서, 오랜만에 이 맛있는 한우를 구워 먹고 싶다.
내가 카드를 꺼내 계산을 하는 동안, 남편이 식재료가 담긴 비닐봉지를 챙겼다.
지하철 한 번, 셔틀버스 한 번을 타고 집에 도착했다. 집에 오는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신이 나서 식재료를 꺼내 냉장고에 정리를 하는데, 느낌이 싸하다.
한우가 없다!!!
남편이 한우가 담긴 마지막 봉지를 챙기지 않은 거다.
순간 나는 화가 치밀었다.
"당신이 챙겼어야지! 나는 계산을 하고 있었잖아!"
남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럴 수도 있죠."
남편의 대답에 나는 분노했다.
미안하다고 빌어도 시원치 않은데, 저 당당하고 태연한 태도는 뭐지.
오히려 그는 한우를 놓고 왔다는 사실에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겐 한우보다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했으니까.
그는 영수증에 나온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점원은 다행히 우리가 두고 온 한우가 그대로 있다고 알려주었다. 내 태도에 실망한 남편은 혼자서 고기를 찾아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나는 그를 따라나섰다.
우리는 우버를 타고 한아름 마트로 갔다. 한우를 찾았다.
매장을 나서려는데 배가 고팠다.
일본 라멘을 하나 주문해서 나누어 먹었다. 파리바게트에서 빨간 딸기가 탐스럽게 올려진 생크림 케이크도 한 조삭 사서 먹었다. 어느새 우리는 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잊은 채 웃고 있었다.
돈 몇 푼 보다, 잃어버린 한우보다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걸 그때 처음 배웠다.
어렸을 때, 나는 돈이나 물건을 잃어버리면 부모님께 호되게 혼이 났다.
워낙 덤벙거리고, 잘 잊어버리는 탓에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다.
내 소유물을 잃어버린 건 아까운 일이고, 비난을 받는게 당연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나 돈은 자신을 자책하고,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만큼의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수시로 그 가치를 잊었다.
잃어버린 돈과 시간을 아까워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부딪쳤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남편의 의견이 맞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남편 역시 내가 자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걸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과 감정은 비싼 한우보다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