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인가 아내인가
2015년 10월.
결혼 일 년 만에 우리는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로 이사를 했다.
보스턴보다 월세가 쌌기 때문에 160만 원에 방 두 개에 거실이 있는 아파트를 구했다.
그동안 방이 없는 스튜디오에서 살았다.
8평 정도밖에 안 되어 둘이 떨어지고 싶어도 붙어있어야 하는 환경이었다.
가장 힘든 건 잘 때였다.
남편은 코를 심하게 곯았다. 나는 잠귀가 밝았다.
남편은 베개에 머리가 닿고 3분 후면 코를 골면서 잠이 들었지만,
나는 원래부터 한참을 뒤척여야 겨우 잤다.
퀸 사이즈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으면 곤욕이었다.
나는 남편의 코골이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해 신경질이 났다.
그의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려보기도 하고, 코를 잠시 잡아서 막아보기도 하고, 흔들어보기도 했다.
남편은 깊은 잠에 빠졌다가도, 내가 방해를 하는 통에 중간에 깼다.
둘 다 아침에 일어나면 두 마리의 판다처럼 눈 밑에 까맣게 그늘이 생겼다.
결국 남편이 아마존에서 코골이를 방지해 주는 밴드를 주문했다.
10센티 두께의 탄력이 강한 헤어밴드처럼 생긴 걸 정수리부터 턱까지 길게 꼈다.
그걸 끼고 자는 남편을 보는데, 사람 할 짓이 아니었다. 사흘 만에 밴드를 버렸다.
남편도 나도 잠시라도 혼자 있는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남편은 사무실과 연구실에서 그 시간을 채웠고,
나는 나대로 아파트에 있는 도서관과 헬스장,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역 앞 카페에서 필요를 채웠다.
좁은 공간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더 빨리 배우고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새로 이사 온 집에 방 하나는 침실로, 남은 하나는 남편 오피스로 쓰기로 했다.
싱글 침대 하나를 더 주문해서 작은 방에 놓았다.
거실도 따로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우리는 공간이 주는 여유를 누리게 되었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나 일요일 오전만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을 해도 될까요?"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 그는 스타그래프트에 빠졌었다고 했다.
학교 앞 게임방에서 만난 사람들과 게임을 하느라 강의도 빼먹고 시험도 보지 않았다고 했다.
한 학기를 그대로 말아먹고 얻은 건 세계 랭킹 상위권이었다.
그러다 대학원생, 박사를 하고, 뒤늦게 포스트 닥터로 하버드 연구실에서 일을 하는 동안 게임을 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일 년은 게임을 할만한 시간도 공간도 없었는데, 이제 방이 2개나 생겼으니 슬슬 게임 생각이 들었나 보다.
당시 나는 신동엽, 이영자 님이 진행하는 <안녕하세요>라는 예능 프로를 즐겨보았다.
서로의 취미 생활 때문에 생긴 갈등을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그걸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상대의 취미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남편의 게임도 넓은 마음으로 허용해 주는 아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요."
그렇게 남편과 나는 일요일 반나절을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내기로 했다.
첫 번째 일요일.
남편은 아침을 먹고 마치 합격을 기다리던 직장에 첫 출근을 하듯 설레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나 게임하러 갈게요. 이따 봐요!"
그의 등 뒤로 방문이 닫혔다.
나는 드라마를 틀었다. 재미가 없다.
한참 지난 것 같은데 겨우 한 시간이 지났다.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이상하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심심하다...
세 시간쯤 지나서 남편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몰골이었다.
눈은 퀭하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초점이 없었다.
일 년을 함께 살았던 사람은 온 데 간 데 없고 낯선 좀비가 기어 나왔다.
가슴속에서 뱀 한 마리가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꾸물거리는 걸 억지로 누르며 나머지 반나절을 보냈다.
일주일 후, 두 번째 일요일이 돌아왔다.
남편은 이번에도 웃으며 방 문을 닫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세 시간 동안 닫힌 문을 바라보며 내 마음은 점점 착잡해졌다.
분명 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게임을 더 좋아하는 것 같은 남편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그 감정은 스멀스멀 격해져서 울컥했다.
지난번에 본 그 좀비가 또 나타났다.
엉엉 울음이 터져버렸다.
"게임하지 마.....!"
그는 내가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자 놀랬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내가 진정을 하자, 별말 없이 집 근처에 있는 한식당에 가서 매운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집에 돌아와 남편은 작은 방에 들어가더니 모니터와 키보드를 가지고 나왔다.
"이제 게임 안 할게요."
그가 앞으로도 게임을 하기 위해 나를 설득할 줄 알았는데, 순순히 그만두겠다고 하다니.
"왜요? 내가 울어서요."
"네, 함께 행복하려고 결혼을 한 거잖아요.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게 상대를 괴롭게 한다면, 하지 말아야죠."
남편의 결정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갈까 싶었다.
분명 몇 주 지나면, 게임 시간을 줄일 테니 하게만 해달라고 할 줄 알았다.
그날 이후로 8년 동안 남편은 게임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다.
그에게는 새로운 게임 메이트가 생겼다. 바로 지난 9월에 7살이 된 아들, 나단이다.
나단이 생일 선물로 닌텐도 게임을 사주었다.
아빠와 아들은 매일 30분씩 게임을 하고 있다.
둘이 게임을 하는 동안 나는 심심하지 않다.
저녁 먹고 뒷정리와 설거지를 하면 30분이 조금 더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내가 즐거운 시간이 소중한 이에게는 괴로운 시간이라면,
한 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볼 만하다.
취미가 중요한지, 내 옆에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더 중요한지.
때론 우선순위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무엇이 중한지.
스타크래프트인가, 아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