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부터 F까지
미술 대학교에 입학하고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동창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 A는 그 당시만 해도 흔치 않은 황갈색 폭탄 드래그 헤어를 하고 캥거루가 그려진 힙합 브랜드를 입고 다녔다.
나는 미대에 입학하자마자 연기를 하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주변에는 이미 연예인이 된 친구들이 많았다.
둘 다 성격이 매우 더럽고 이기적이었기 때문에 만나기만 하면 싸웠다.
지금 생각하면 A와 만남은 일종의 일탈이었다.
12살 때부터 미술 공부와 입시를 하느라 억압을 받았을 뿐,
대학생이 되면 내 맘대로 활개를 칠 줄 알았는데, 몸에 밴 모범생 떼는 벗겨지지 않았다.
어두운 곳, 시끄러운 곳, 술, 클럽 음악을 싫어하는 취향도 한몫했다.
마음은 놀고 싶은데 놀 줄은 모르는 숙맥이었다.
나와는 다른 자유로운 A를 보며 대리만족과 동경을 했다.
그와 헤어지고 한동안은 연극 영화과 학생, 연예인, 연습생을 만났다.
내 친구들이 SKY 학생들과 열심히 연애할 때, 나는 잘 생기고 놀기 좋아하는 남자 친구를 만났다.
26살에 서울 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병원에서 일하는 B를 사귀었다.
그전까지는 명문대생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B는 강남 8 학군을 졸업했다. 내가 만나본 그의 친구들은 다 같은 초, 중, 고 출신이었다.
좋은 동네에서 부유하게 자란 그들은 출신 동네와 커뮤니티에 자부심이 높았다.
이후 B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예쁜 레지던트와 눈이 맞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신기하게도 B 이후에 만난 남자들은 모두 학력이 높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 세상 물정을 알게 되었다.
둘째, 나이가 들고 결혼을 염두에 둔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셋째, 소개팅 같은 선을 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다른 세상 사람들 같았던 SKY 출신이 대한민국에 이렇게나 많다니!
20대 때는 다 어디에 숨어있었던 걸까?
생각해 보면 내 친구들 중에 반 이상은 남편이 SKY 졸업생이니, 어쩌면 내 눈에만 안 보였던 걸지도.
친구들이 한 명씩 결혼을 할 때, 난 여전히 싱글이었다.
28살, C를 만났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이제 막 한국 명문대 졸업생들에게 적응했는데, 세계 명문대를 다닌 사람이 나타난 거다.
얄상한 턱, 호리호리한 몸에 차분한 말투의 남자는 '지성'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나는 내가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한 그에게 매력을 느낀다.
20대 후반. 결혼, 커리어, 사회생활의 압박으로 매일 답답한 기분을 느끼던 때였다.
C는 '별에서 온 그대'처럼 다른 행성에서 나를 구출해 주기 위해 온 사람 같았다.
그는 강남에 있는 담이 높은 단독 주택에서 살았고, 여동생 둘 다 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
마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삶을 목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라마 같은 삶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알고, 지레 겁먹어 포기를 선언했지만.
그때, 나는 세상은 넓고 사람, 특히 남자는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굳이 한국에 있는 남자들을 두고 나보다 어리고 예쁜 20대 여자들과 경쟁을 할 필요가 있을까?'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언제 나타날 줄 모르는 누군가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
뉴욕에 갔다.
뉴욕에도 남자들이 많았다.
외국 남자와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홍콩계 미국인 D.
MSG 약간 뿌려서 장국영을 닮은 외모에 매너도 좋았다.
세 번째 만났을 때, 그의 전화기가 울렸다.
"妈妈,你好吗,你很忙,我能做些什么?妈妈,你好吗,爸爸在做什么?
순간, 그와 나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느껴졌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고,
동시에 그의 등 뒤에 영어를 하지 못하고 광둥어만 하는 부모님의 커다란 존재가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아아 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듯이,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어주는 한국 남자가 좋았다.
외국인과 만남은 데이트에서 연애로 넘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인을 만났다.
D는 투자 은행에서 일하는 금융맨이었다.
콜롬비아를 졸업하고, 외모도 반듯하고, 성격도 좋았다.
대신 친구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돈도 좋아하고, 아마도 여자도 좋아한다.
나와 데이트하고 난 후에 친구들과 밤새 술 먹고 노느라 다음날 아침에는 연락이 안 된다.
E는 나보다 겨우 한 살이 많은데, 뉴욕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열정적이고 서글서글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이 불규칙적이고, 주변에 여자도 많고, 항상 스트레스가 쌓여있었다.
친한 친구들이 뉴욕에서 남자친구 만나서 결혼반지 받을 때, 나는 쓸쓸하게 이민 가방에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33살.
내가 여기저기서 경험 쌓고 돌아다닐 때, 친구들은 야무지게 자기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인 상희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서울대 경제학과 남자 친구와 10년 연애하고 결혼을 했다.
그녀의 남편은 어린 나이에 서울 명문대의 교수가 되었다.
사람 일은 어떻게 풀릴지 아무도 모른다.
"내 남편 직장 선배의 친군데, 만나볼래?"
20대 때, 소개팅 한 번 안 해주던 상희가 소개를 시켜준다니.
압구정 소개팅의 성지, 고센에서 F를 만났다.
약간 살찐 서태지를 닮은 곱상한 외모에 차분한 말투.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교수로 임용되었다고 했다.
응? 이건 마치, 이제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장점을 나를 위한 맞춤 버전으로 제작한 것 같았다.
한국에서 자리 잡은 남자들은 유리 천장처럼 뚫을 수 없는 벽이 느껴졌고,
미국에서 만난 남자들은 고삐 풀면 바로 도망갈 것처럼 예측불가였다.
그에 반해 F는 30살까지 한국에서 자라고 공부했기 때문에 한국 토박이인 동시에
미국에서 5년 동안 살면서, 상당 부분 다른 사람과 문화에 대해 포용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5개월 후, 우리는 손잡고 송파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세계관을 넓히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은 이제 진리가 되었다.
익숙한 공간, 사람들, 활동 영역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경험과 사고를 접함으로써 내 사고도 확장한다.
뇌가 자극을 받으면 새로운 뉴런과 링크가 생긴다.
내가 경험한 것이 1인 상태에서 2를 해본 사람을 만났을 때,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든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10대는 같은 동네 살던 오빠, 20대는 다른 도시에서 온 같은 대학 친구, 30대는 다른 나라에서 온 같은 직장 선배, 40대는 다른 나라에서 만난 다른 나라 앤소니...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서 나도 변화한다.
연애를 잘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한 사람을 오래 사귀는 것.
다른 하나는 여러 사람을 다양하게 만나보는 것.
나는 두 가지 다 해보았는데, 내 비전과 성향에는 두 번째 방법이 잘 맞았다.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통해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겪어보고, 그때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알아갔다.
내가 아끼는 동생이 연애에 대해 물어본다면,
나는 두려워하지 말고 사람을 많이 만나고, 경험하고, 배워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옷도 여러 스타일을 입어봐야 내 체형과 분위기에 맞는 옷을 보는 안목이 생기듯,
연애를 많이 해보면 언젠가 네게 딱 맞는 맞춤복 같은 짝을 만날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