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렁쇠

by 강쌍용

굴렁쇠


밭두렁에 선 내 동생

마을 내려다보고 소리 지른다.

형아, 해진다.

밥 먹으러 온나

어스름 내리는데

대꾸 대신 굴렁쇠 소리만

지잉, 지잉 ~ 징!


지 ~ ~ 잉, 지~~잉 굴렁쇠 굴러가는 소리다. 지면을 맞댄 금속성 둥근 테가 구르면서 내는 울림이다. 조무래기들이 굴렁쇠를 굴리면서 줄 지어 골목을 활보했다. 온 동네가 쇳소리로 진동했다. 학교 정문에서 출발한 무리는 깽 문 쪽으로 달리다 사거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른 한 무리는 반대로 좁은 음바 길로 해서 사거리로 향했다. 도중에 굴렁쇠가 넘어지지 않고 먼저 도착하는 팀이 이기는 것이다. 아무래도 먼 거리를 달리는 쪽은 능숙하고 노련한 형들이 팀을 이루었다. 반면에 짧은 음바 길은 아직 요령이 부족하고 덜 숙련된 조무래기들이 함께 뭉쳤다. 좁은 길을 쉬지 않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노면의 사정을 잘 알아야 했다. 방향을 바꾸는 곡각 지점에서는 회전반경의 크기도 잘 가늠해야 했다. 그뿐 아니었다. 앞서가는 사람을 추월할 때는 빈틈을 잘 파고들어야 했다. 보조를 맞추며 따라가다가 조금의 틈이 나오면 잽싸게 앞질러야 했다. 그것도 무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허탕이었다.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느 쪽이고 방향을 확실히 잡지 않으면 부딪치기에 십상이었다. 긴장을 풀 수 없는 시합이었다.

쇠1.jpg

무릎 높이의 원형 굴렁쇠는 굵은 철사로 만들어졌다.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대부분 자전거 바퀴 철심이었다. 이것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늘 어깨 힘이 들어갔다. 학교 그네나 시소 말고는 유일한 놀이 기구였다. 철사 막대의 움푹 파진 홈과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는 징하게 여운이 길었다. 낮고 틔지 않아서 안정감을 주었다. 그에 반해 두텁고 무거운 굴렁쇠가 간혹 있었다. 실하게 굴러가는 음이 높고 경쾌해서 듣기에도 막힘이 없고 시원했다. 그리 흔한 것이 아니어서 한 번 빌리기가 힘들었다. 가진 녀석의 위세가 어찌 심한지 통 아부를 해야 했다. 배알도 없이 사정하는 바람에 입술에 거품이 맺힐 때도 있었다. 귀하다고 여기는 장구 테두리였다. 이도 저도 안 되는 녀석들은 양동이 테를 엄마 몰래 뜯었다. 폭이 넓은 테는 함석이라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손잡이에서 떨어져도 쉽게 넘어지지 않았다. 힘 다할 데까지 굴러가니 그나마 위안이었다. 이런 굴렁쇠는 저마다 특색이 있었다. 각기 다른 음을 가졌지만 아름답게 조화로웠다. 징! 하고 울리는 굴렁쇠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세상도 이렇게 굴러가면 좋겠다. 높고 낮은 하모니를 적절하게 맞추는 굴렁쇠처럼 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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