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의 탱고
노란 호박꽃이 피는 여름날이다. 이때를 기다려 나타나는 것이 반딧불이다. 초저녁 밤하늘을 수놓으며 날아다니는 불빛이 어지럽다. 마치 탱고 춤을 추듯 사방에서 일렁거렸다. 일찍 저녁을 먹고 나온 아이들이 “까래, 까래이 불알로! 를 외치며 반딧불이를 쫓았다. 목청껏 부르는 노래는 허공으로 뻗어 나갔다. 아이들은 반딧불이를 까래이라고 불렀다. 꼬리에서 불거진 바늘구멍만 한 발광체가 빛을 발하면 아이들은 홀린 듯 까래이를 잡으려고 뛰었다. 날쌔게 서둘러도 그리 쉽지 않았다. 겨우 몇 마리를 잡으면 호박 꽃잎에 가두었다. 이렇게 만든 호박꽃 호롱불은 모양이 일품이었다. 아기 주먹만 한 노란 호박꽃 속에서 은은하게 번져 나오는 황록색의 유려한 빛은 아름답고 괴기스러웠다. 마치 물 건너 오두막에서 가끔 새어 나오는 등잔 불빛 같기도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불 밝기를 자랑하며 골목을 쫓아다녔다. 그러다가 까래이 불빛이 사그라지기 시작하면 꽃잎을 벌렸다. 기다렸다는 듯 까래이는 어두운 밤하늘로 날아갔다. 잠시 같이한 인연을 남기려는 듯 머리 위를 배회하면 아쉽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실금 같은 불빛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면 아이들도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반딧불이를 보기 어렵다. 무분별한 자연훼손으로 서식지가 사라지면서 낳은 결과다. 이맘때면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반딧불이였다. 지금은 청정지역이라 불리는 전북 무주나 장수, 부산의 태종대 정도에서만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그 흔했던 반딧불이를 이런 곳이래야 겨우 볼 수 있는 정도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신비한 발광체를 다시 볼 수 없는 여름밤은 삭막하다. 형설지공의 고사를 들려주듯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먼 이야기 정도로 들려주어야 할지 모른다. 아니면 어느 가수 노래 가사 속의 개똥벌레로만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름밤의 낭만과 동심의 한켠을 여망 지게 채웠던 황록 불빛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오감을 윤택하게 채워주던 여름날의 개똥벌레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다른 생물들은 온전할까? 황폐한 땅에 홀로 남은 사람들만 득실거리면 세상은 과연 살만할까? 하루빨리 공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다행히 그 개체와 서식지 보호를 위해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했다고 하니 한껏 기대해본다. 언젠가 여름밤 무리 지어 날아가던 반딧불이의 탱고를 다시 볼 수 있으리라. 그날은 목청 돋도록 까래이를 부르며 뛰어 볼 생각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