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바 가는 길
육지를 바라보고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었다. 음바(고향의 지명)로 가는 길은 마을 사거리에서 동쪽으로 곧장 뻗은 길이었다. 학교 앞 밭길을 따라가는 지름길인 셈이다. 둘러서 가는 길은 마을 앞에서 바닷가를 쭉 따라갔다. 길이라기보다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물이 들면 겨우 쥐꼬리만 한 자갈밭만 남아 파도에 옷이나 신발이 젖기 일쑤였다. 반면에 물이 빠지면 더 넓은 모래사장과 뻘밭이 훤히 드러났다. 장난을 치거나 고둥과 해삼을 잡으며 가다 보면 어느새 음바에 닿았다. 물이 더 많이 빠지는 날은 멀리 육지의 남산이 눈앞까지 성큼 다가와 한 발에 건널 만큼 가깝게 느껴졌다. 식수가 귀했던 까닭에 빨래나 허드레로 쓰는 물은 음바 새미를 이용했다. 동네 웃 새미는 오로지 주민들의 식수로만 이용했다. 음바로 가는 들길은 좁았다. 서너 발도 안 되는, 그마저 밭고랑에서 넘어진 고춧대와 옥수수 잎사귀가 길을 가렸다. 빨랫감이 가득한 물통을 머리에 이고 지나가면 자랄대로 자란 옥수수에 키가 묻혔다. 어쩌다 발길에 차인 무당개구리가 벌건 배를 까집고 누워 있기도 했다. 이를 본 가서나(여자아이) 들이 빨래터로 가다 말고 기겁을 하며 도망을 쳤다.
음바를 지나 섬의 동쪽 끝을 돌아 나가면 꼬꾸랑바였다. 음바에서 길이 꼬꾸라진다고 붙여진 이름인지 아니면 음바보다 더 깊은 곳이어서 이렇게 불리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오래전부터 불러 져 오던 이름이라 내력도 모른 채 사람들은 따라 불렀다. 이곳은 마을과 제법 떨어져 있는 외진 곳이라 대낮에도 혼자 가면 왠지 으스스했다. 여(바위) 사이에서 사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그러나 진짜로 들은 사람은 없고 그렇다더라는 말만 전해져 왔다. 아마 바위에 부딪히는 비슷한 물소리를 잘못 듣고 퍼뜨린 괴담이었을 것이다. 여기 낮은 뒷산과 바위 그리고 모래와 자갈이 섞인 해변은 아이들 놀기에도 좋았다. 이렇듯 음바 가는 길은 좁았지만, 육지의 신작로나 마찬가지였다. 물이 빠지면 조개를 줍고 미역을 따는 어른들이 뻔질나게 걸어 다녔다. 빨래를 이고 다니던 길이였고, 아기 울음소리에 혼비백산해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전쟁놀이하던 아이들이 의기양양하게 같다가 허기가 져 돌아오던 길이기도 했다. 이맘때면 좁은 밭길 언덕을 따라 무꽃, 산딸기가 한창 피었다. 기점이 아버지 깨끔(언덕)에 피던 아카시아꽃도 지금쯤 하얗게 만발했겠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