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잠자리
대섭이 할배 장독간 뒤로 살짝 숨어들었다. 실한 대를 고르는 손놀림이 바빴다. 낮술을 한잔 드신 게 틀림 없었다. 마루에서 잠든 할배 모르게 퍼뜩 베어서 나와야 했다. 은밀한 손놀림은 생각보다 더뎠다. 녹슨 날이, 그것도 서툰 낫질에 아무리 물먹은 이대라도 쉽게 베어지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는 녀석들도 진땀을 뺐다. “야 빨리 베라. 할배 깬다.” 초조하게 신호를 보내지만 쓰러져야 할 대나무는 도통 미동이 없다. 물기 머금은 이대를 얇게 썰어 구부리면 둥근 테가 만들어졌다. 여기를 가로질러 적당한 막대기를 묶어주면 훌륭한 잠자리채가 되었다. 이를 들고 지붕 춘새나 소 마굿간의 후미진 곳을 돌며 거미줄을 훑었다. 돌담에 걸친 감나무 가지 사이로 왕거미가 친 거미줄은 최고로 인기가 좋았다. 줄이 실하고 접착력이 좋아 한번 걸려든 잠자리는 절대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하도 귀해서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군분투하던 녀석이 가까스로 대나무 하나를 자빠뜨렸다. 이번에는 댓잎이 엉켜 빠지지 않는지 또 한참을 낑낑거렸다. 대섭이 할배가 잠결에 파리를 쫓는다고 손을 휘저으며 마당 쪽으로 돌아누웠다. 지켜보던 녀석들의 간이 콩알만 해졌다.
밭두렁으로 잠자리 떼가 어지러웠다. 절묘했다. 잠자리를 쬐려 보는 눈에 핏발이 섰다. 정면으로 날아오던 잠자리가 방향을 트는 순간 잠자리채를 휘둘렀다. 팔을 쭉 뻗고 있다가 순식간에 채를 들어 올려 끈적이 같은 거미줄에 붙이는 것이다. 고도의 민첩성과 순발력이 필요했다. 거미줄에 붙은 잠자리가 도망가려고 날개를 파닥였다. 어림없는 일이다. 얇은 습자지 같은 투명한 날개가 서로 부딪치며 서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때마다 엉그름 같이 새겨진 줄무늬가 파르르 떨리며 햇볕에 반짝였다. 포로가 되지 않으려는 고혹적인 몸부림에 미세한 바람이 일렁였다. 아직도 미적거리는 늦여름 더위를 쫓기라도 하듯 필사적이다. 그러나 가지런히 붙인 양 날개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면 눈알만 굴릴 뿐 금세 수그러졌다. 현기증이 나도록 빨간 고추잠자리다. 막 높아지는 하늘을 낮게 수놓으며 계절의 바뀜을 알리는 가을의 전령사다. 아이들의 잠자리채 놀림이 시들해지면 고추잠자리도 흩어졌다. 어지러운 날개짓에 고개를 떨구었던 맨드라미가 담벼락에 기대 혼자 외로웠다. 귀때기만 텃밭에는 살찐 메뚜기가 제멋대로 폴짝거렸다. 대섭이 할배 누웠던 툇마루에 댓바람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