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by 강쌍용

찔레꽃


잠결에 들렸다. 새벽 어장에 나갔다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장화 소리였다. 물이 들어갔는지 땅을 디딜 때마다 철벅거리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마당에서 들렸다. 동시에 불호령도 떨어졌다. 지금이 몇 신데, 여태까지 자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퍼뜩 눈을 떴다. 뒷문 창호를 뚫고 들어온 햇빛이 온 방에 환했다. 밥을 짓다 말고 마당으로 급히 나온 엄마가 새벽같이 애들 깨운다고 역정을 냈다. 그런 엄마에게 지금까지 애들을 재우느냐고 되려 빈 통을 부렸다. 물 때에 맞춰 어장을 보려면 꼭두 새벽부터 바다로 나가야 했다. 날이 밝은 지금 아버지에게는 늦은 아침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유별나게 빈 통을 지는 날이 있었다. 바다에서 하는 일이라 생각대로 안 될 때는 짜증을 냈다. 반면에 마당으로 들어오시며 엄마를 먼저 찾는 때도 있었다. 이런 날은, 뜻하지 않게 어장에 수확이 많았거나 생각지도 않은 귀한 고기가 잡혀 기분이 좋은 경우였다. 이때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섬에서 물만 보고 사는 삶이다 보니 바다가 주는 성과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 바다가 주는 것만큼 순순히 받아들이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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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 새미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물 긷는 두레박 소리가 요란했다. 조잘대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참새 소리보다 더 시끄러웠다. 그 와중에 장독대 옆 닭장에서 달구 새끼들이 덩달아 홰를 치며 울었다. 이래저래 아침잠은 글렀다. 마루에 걸린 벽시계가 여섯 번의 종을 치고 멈추었다. ‘아닌데 잘못 세었나?’ 엉금엄금 기어 나와 올려본 시침은 틀림없이 6이었다. 학교에 가려면 아직 2시간이나 남았다. 이불을 차낸 동생들이 새르릉거리며 여전히 잠에 빠져 있는 아침은 아직 일렀다. 아랫집 수갑이 아버지가 세수하는지 코 풀어 재끼는 소리가 흙담을 넘어왔다. 희한하다. 어른들은 왜 잠도 없지? 죽담으로 내려서는데 삽짝문 담 부랑을 타고 기어오르던 찔레나무에 하얀 꽃이 피었다. 삼시울(쌍꺼풀) 진 기점이 눈매 같은 꽃잎이 담 부랑 용마루 위로 소담하게 피어났다. 늦게 핀 유월의 하얀 찔레꽃이었다. 새봄에 돋아나는 새순을 잘라 질겅질겅 씹는 내게 앞집 기점이가 그랬다. “오빠야, 그렇게 싹을 잘라버리면 올해는 찔레꽃 보기 힘들겠다.” 야들야들하게 핀 찔레꽃 몇 송이를 아버지 몰래 꺾었다. 들키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빼꼼히 쳐다본 기점이 집 삽짝으로 하얀 찔레꽃 향기가 몽글몽글 날아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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