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참 어렵게 지었다.
'Fractional lending.' 한국어로는 '부분지급준비제도'이다. 은행이 돈을 버는 방법이 무엇일까? 간단하다. 은행에 예금된 돈을 더욱 높은 이자율로 고객들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은행에 예금하면 예금주는 매년 2%의 이자를 받는다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간 사람은 매년 5%의 이자를 은행에 납부하면 된다. 이렇게 이율에 차이 둬서 가 차익을 벌어들이는 것이 은행이다. 더욱 나가서 은행에 예금한 돈을 은행은 어느 정도 난 남겨놓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 있다. 내 돈인데 왜 남에게 빌려주는가? 내 허락도 없이? 그 대가로 매년 이자를 받는다는 샘 치자.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다. 차라니 내가 빌려주고 5%의 이자를 받아도 될 텐데 말이다.
은행의 유례.
은행의 'Bank'라는 어원은 이탈리안어의 banco에서 왔다. 의자(bench)에 앉아서 사람들이 거래를 하던 모습에서 유례 되었다. 옛날에는 공권력의 사각지대가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금이나 은을 은행에 맞기고 은행이 보관비용을 받아가는 게 시초다. 하지만 어느 은행장은 자신의 금고 안에 저장되어 있는 금들이 몇 년간 그대로 보관만 되어있자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이 금들은 사람들에게 빌려 준다면? 어차피 아무도 찾아가지 않을 텐데 몰래 해봐야지.'라는 생각은 너무 착학고. 그냥 눈에 보이니까 지껀줄 알았나 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은행장이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이 시작되었고. 은행이 많은 부를 축척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문제도 많았다. 예금주가 느닷없이 찾아와서 자신이 맞겨놓은 금을 내놓으라고 하자 은행장은 금고 안에 돈을 모두 빌려주어서 지금은 못준다고 발뺌했다. 옛날이니 돈 많고 힘센 사람이 장땡이다. 돈을 구하지 못한다면 둘 중 하나는 그날이 인생이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
이자 없는 사회.
중동 아랍 지역에서는 이자를 받는 것이 불법이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같은 민족과 종교인끼리는 돈을 빌려줄 때 이자를 부여하면 안 된다. 아마 옛날 사람들도 알았을 거다. 금이 하늘에서 떨어지나? 땅을 파면 나오나? 누구처럼 맘대로 찍어낼 수도 없는 거고 이자를 받게 된다면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발생한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경제는 붕괴되어버릴 것이다. 누구는 누군가에게 얼마에 돈을 빌렸지만 금이 부족하다. 미래에 갚겠다고 한 원금과 이자 때문이다. 이자는 이렇게 존재하지 않는 화폐를 세상에 만들어낸다. 우리는 서로 믿음으로서 계약이 성립된다. 어찌 보면 욕심이다. 미래에 돈만 빌려주고 약속된 금액과 이자를 일도 안 하고 벌어들이는데 당연히 돈을 못 받을 정도로 위험하더라도 하지 않겠는가? 쉬운 돈인데.
크루세이더.
가톨릭교는 조금 달랐다. 옛날에 돈과 권력이 많은 사람들은 교황과 왕 혹은 귀족이다. 왕은 영토를 넓히기를 원했고. 귀족은 약속된 땅을 받기를 원했다. 교황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신도들의 돈을 받아들였다. 교황이라도 음식 없고 돈 없이는 살 수 없나 보다. 그래서 성전이라는 명목으로 가톨릭교는 이슬람이나 다른 종교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 전쟁물자는 기사들에게 미리미리 지급되었고 나중에 돌아오면 이자와 함께 갚아달라는 계약이었다. 그래서 크루세이더들은 침략한 국가에서 많은 물자들은 닥치는 대로 뺐어갔다. 왜? 돌아가면 이자를 갚아야 하니까. 그렇기에 돈이 되는 노예, 여자, 조각상, 금, 은 목재 등등 가져갈 수 있는 건 싹 다 털어갔다. 반항하거나 필요 없는 사람들과 물건들은 모두 태우거나 죽여버렸다. 잔혹하게.
이자는 꼭 필요한가?
내가 생각하는 이자의 목적은 돈을 빌려간 사람이 채납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채찍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서서 과연 돈을 빌려간 사람이 돈을 갚게 하는데 이자는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이자를 내느라 노예처럼 일만 하고. 정작 원금은 갚아나가지 않는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행복하다. 돈을 안 갚으면 안 갚을수록 받아들이는 이자로 자신의 자산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돈을 빌려간 사람은 어떤가? 원금을 갚지 않으면 매달 혹은 매년 납부해야 하는 이자에 고통을 받아야 한다. 어찌 보면 이자는 노예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족쇠같은 것이다. 더욱더 노예를 도망지 못하기 이자라는 족쇠를 묶어두어 평생 동안 노예로 부려먹을 속 샘인 게 분명하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빌려간 사람이 여유가 된다면 이자를 납부해도 된다. 앞으로 돈을 갚아나가겠다는 믿음이고 약속이니까. 그렇지만 만약 저소득 자라면 돈이 당장 급하다면 이자를 받지 말았으면 한다. 그래야 원금이라도 갚아나가지 어떻게 더욱 돈 빌린 사람을 채 직질 해 윽박지르는가 그렇다고 돈 한 푼 나오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아직도 변동금리니 미납 시 압류라던지 이자율 인상이라던지 돈 없는 사람을 노예로 전향시키는 악행이 자행되고 있다고 본다.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복리의 무서움.
옛날 옛적 왕에게 친애받는 광대가 왕에게 게임 하나를 제안한다. 자신이 체스게임에서 이길 때마다 체스 칸 위에 쌀을 두배씩 올려주는 게임. 멍청한 왕은 흔쾌히 게임을 승낙했고 한판 한판 질 때마다 쌀은 1톨에서 2톨, 4톨, 8톨 등등 두배로 늘어갔다. 그리고 체스 칸을 다 채우기도 전에 왕이 가지고 있던 모든 쌀을 광대에게 주어야 했다. 물론 현실에서는 광대가 진짜로 쌀을 받아가겠다 했으면 목이 잘려 죽겠지만 상상 속의 이야기니 그냥 그러려니 하자. 자, 여기서 얻어갈 수 있는 교훈은 복리의 무서움이다. 2개가 4개가 되고 4개가 8개가 되는 처음 시작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숫자로 빠르게 상승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느 순간 자신이 샐 수 없을 만큼 그 크기가 커져있다는 게 무서운 점이다. 복리의 힘. 워랜버핏이 말했듯이 주식을 할 거라면 그리고 가치투자를 할 거라면 복리를 이용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