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분명 좋아했다.
방학을 맞아 둘째와 함께 친정에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꿈꾸던 로망이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 가서 그냥 며칠 지내고 오는 것. 마흔이 넘었지만 살다 보면 정서적으로 부모님 품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동안 방학이라도 아이들은 돌봄을 다녀야 했기에 이제야 실천해 볼 수 있었다. 족히 5시간을 가야 되는 거리. 장거리 운전은 부담이라 버스를 타기로 했다. 오가는 버스 안에서 둘째와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입틀막 하며 즐거워하는 보습을 보니 함께 하지 못한 첫째 사랑이가 절로 생각났다.
스터디카페를 다니면서부터 도시락을 싸줘야 했기에 막상 다녀 오려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또 하나 걸림돌은 요알못 남편의 식사. 어디 한 번 가려면 머리가 무거워진다. 이럴 땐 남편이 요리사로 변신했으면 좋겠다. 몇 가지 반찬을 준비해 놓고 사랑이는 당분간 점심을 사서 먹으라고 용돈을 쥐어줬다.
둘째와 재미나게 놀고 집에 오니 사랑이가 말한다.
"도시락이 너무 배고팠어요."
"무슨 도시락?"
"아빠가 싸주셨는데 양이 너무 적었어요." 말은 그렇게 해도 아빠가 도시락을 싸줬다는 그 자체를 좋아하는 눈치다. 금시초문 엄마는 눈을 껌벅거리며 답했다. "아빠가 도시락을 싸주셨어?"(오~ 대단)
그런데 딸을 너무 과소평가한 나머지 밥을 아담하게 담아준 게 배고픔의 원인이었다.
사랑이는 끊임없이 아빠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상담 중 가족을 사물에 빗대어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빠는 석고상이라 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석고상이라니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왜 아빠를 석고상이라고 생각했어?"
"석고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잖아요"
아빠가 사랑이를 많이 사랑하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표현력이 메마른 사막이라 사랑이가 아빠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단둘이서만 무엇을 해본 적이 없다. 7살 때 아빠에게 배운 자전거가 유일했다. 그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나아지긴 했지만 진행 중이다.
엄마의 부모님은 매일 바쁘셨다. 학교 다녀오면 집에 혼자 우두커니 있는 게 너무 싫었다. 무뚝뚝한 부모님이지만 시험기간 벼락치기 하는 딸내미 책상 위에 찐 호빵을 올려 두셨고, 어묵볶음이 맛있다고 하면 기꺼이 새로 더 많이 볶아주셨다. 자라면서 아들만 편애하는 부모님께 어찌 서운한 감정들이 없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사랑을 작은 행동들로 느낄 수 있었기에 지금도 넘어지면 그 힘으로 일어나곤 한다.
사랑이도 엄마가 주는 사랑, 아빠가 주는 사랑으로 정서적 배고픔 없는 어른으로 잘 성장해 주기를 바란다. 먼 훗날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그때 그 사랑을 기억하며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걸어 나가기를. 그러기 위해 아빠가 좀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표현해 주기를~
석고상이 아닌 말랑하다 못해 끈적한 슬라임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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