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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Dec 21. 2023

내가 공주라니

좀 더 일찍 말해주지

늙고 노쇄한 아빠는 입원한 날 온갖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종합선물세트처럼 여기저기 아프니 남은 노후가 싫다며 그냥 어서 저세상 갔으면 좋겠다 한다. 몸이 아프니 신경질이 하늘을 승천하는 것을 물론이해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일을 키우는 건 늘 당신이었다. 주삿바늘이 무서워 병원 가기를 주저하다 병을 키운다.


사는 곳이 멀어 가보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답답한 마음에 입원한 아빠와 집에 홀로 있는 엄마에게 번갈아 가며 아침, 저녁 전화를 드렸다. 아픈 아빠도 물론 걱정이지만 아빠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엄마가 더 신경 쓰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다행히 장염증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와 일주일 입원예정이었던 것이 3일로 단축되었고 드디어 퇴원할 수 있었다.


아빠는 식탐대왕이다.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죽을 바에야 그냥 먹고픈 거 먹고 빨리 가겠다고 했다.

아프면 그냥 죽으면 된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럴 때 내가 하던 말이 있다.

"아빠, 그냥 가면 좋지요~  그런데 죽고 싶다고 바로 죽지 않는다니까요. 병원에 가면 자꾸 살려서 내보내요.  그럼 사는 동안 얼마나 고생이겠어요? 그러니 드시고 싶다고 다 드시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늘 듣고 싶지 않은 말에 버럭 짜증을 내셨다.


입원하고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아 평온을 찾은 아빠께 입 바른말을 참지 못해 기어이 한마디를 했다.

"거 봐요. 몸에 안 좋은데 먹고 싶다고 다 먹으면 죽고 싶어도 못 죽고 아프다고 했잖아요."  기운 펄펄할 때는 버럭대장이 출동했는데 노쇄한 지금은 세상 기운 없는 목소리로 "알겠습니다. 공주님,,"라고 했다. 통화를 끊고 귓전에 맴도는 그 목소리가 애잔하고 짜증 났다. 그러다 번뜩 공주님이라니. 태어나 처음 들어 본말이다. 언제부터 당신에게 내가 공주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음은 전달된 것 같아 안도한 하루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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