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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May 11. 2023

길을 찾아서 2

대안학교 학생의 일지 모음 2

지난주 얘기했듯 이번에도 길찾기 주간 일지로 글을 써보려 한다. 


5월 1()     

길찾기 6일 차. 충분히 적응하고 남은 시간이다. 어제와 오늘 ‘직업인 인터뷰’와 관련된 활동을 계속했다. 어제 대안학교학생연대 회의를 다녀오느라 인터뷰 시간이 조금 빠듯했는데, 그래도 나름 잘 마무리했던 것 같다. 정리하면, 어제는 인터뷰, 오늘은 인터뷰 내용 정리와 발표 준비라고 보면 될 듯하다. 어제 녹취 하나를 풀어놔서 오늘 좀 빨리빨리 진행됐다. 아무리 봐도 할 일 안 미루고 미리 하는 습관은 정말 잘 들인 것 같다. 

     

우선 부모님 인터뷰에 대해선 별 감흥이 없었다. 부모님이 아닌 직업인으로 만나는 것 자체는 괜찮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낯설었다. 그렇지만, 이 낯섦이 내게 새로운 시야를 가져다줬다고 생각한다. 내용 발췌를 좀 하면, 엄마 인터뷰 답변 중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시선을 확장할 수 있었다.”는 말이 나온다. 저번 일지에서 다루었듯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의 지식과 경험이 나에게 스며들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데, 책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선의 확장은 알고 있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 준다. 나는 부모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부모님이 어떤 직업을 왜 택하셨는지, 추구하는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한 곳에만 시선을 집중한 나머지 다른 시야를 차단한 건 아니었을까.     


이런 시선의 확장은 큰 배움을 가져다주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다방면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의 말을 듣는 게 왜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책 보다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작년까지만 해도 책을 통해 세상과 만나던 내가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을 통해 세상과 만나며 길을 찾아갈 힘찬 날갯짓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부모님 인터뷰와는 별개로 세상과 만나는 경험을 학교에서 할 수 있기에 더 뜻깊은 것 같다. 학교는 세상과 만나기 위해 학생들이 마음껏 실수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해 나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당연한 일이 대안적인 커리큘럼으로 제시되는 공교육에 대한 아쉬움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이야기를 조금 하면, 두 분 다 경험을 아주 중요하게 강조하셨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많이 해보고 그 경험을 통해 세상과 만나며 살아가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지금만 봐도 학생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다 시도하고 있다. <리맨>에 갔을 때 대표님께서 하신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새로운 것을 해보고 그 경험을 통해 시선과 의식이 확장되는 것을 스스로 자각할 때, 비로소 성장하는 것 같다. 성장, 그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것들을 습득한 후 가꾸어 나가는 과정인데, 삶을 스스로 가꾸어 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뜻으로 보는 게 좀 더 나을 듯싶다. 나는 성장하며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직업인 인터뷰도 돌고 돌아 스스로 선택한 대안교육을 통해 살아가며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과정이 아닌가. ‘성장하는 경험’이라는 말도 쓰고 싶다. 스스로 성장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그 짧은 순간에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데, 이 감정을 한 번 더 느끼기 위해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흔하디 흔한 인터뷰지만, 앞에 직업인, 부모님이 들어가 있어서 보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오늘 녹취를 다 풀고 발표 자료를 완성하며 느낀 게 있다. 어느 순간 마무리 에세이가 아닌 마무리 발표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세이보다 더 빨리, 더 좋은 내용으로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과장 좀 해서 믿기지 않았다. 작은나무(중1) 때 서평 하나 쓰는 것도 버거워했던 내가, 가온나무(중2) 때 글쓰기 싫어 지각만 하던 내가, 큰나무(중3) 때 주관적인 글만 쓰는 나로 바뀌고, 솔숲(고1) 때 서평과 포트폴리오를 쓰며 나의 생각을 어느 정도 전달할 수 있게 되자, 대숲(고2 현재)이 된 지금은 브런치에 글을 쓰며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동시에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지금 쓰면서 느꼈지만, 학교에서의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성장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일지로라도 말하고 싶었다. 이제 잘할 때 되니까 졸업이다.     


오늘은 경험, 성장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내가 많이 컸다는 게 보이지만, 멈추기 싫다. 멈추는 순간 오만해지며 아까 말한 경청의 태도 등이 갖추어지지 않아 경험의 기회를 뿌리치는 게 되기에 계속해서 배우자는 마인드를 가지고 임하고 싶다. 오만하면 배울 수 없는 것 같다. 겸손한 마음으로 내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한 채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사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듣자. 꼭 완벽해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완벽하지 않은 나와 투쟁하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내가 됐으면 좋겠다.           


5월 2(     

길찾기 7일 차, 어째 길찾기가 진행될수록 많은 걸 듣고, 배우고, 깨닫는 것 같다. 서울혁신파크에서 보낸 오늘 하루는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마치 도서관에 간 것 같았다. <약속의 자전거>(혁신파크 안에 있는 단체)를 시작으로 마지막 <공동체 IT 사회적협동조합>까지. 거를 타선이 하나도 없었다.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대안교육과 사람이 모여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서울혁신파크의 단체들이 결을 같이 하며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 주었다.      


많은 사람을 만난 경험은 있어도 그분들의 말을 또렷하게 기억한 적은 없었다. 어떤 내용인지 알면서 애써 떠올리려 하지 않았던 과거인데, 오늘은 좀 달랐다.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경험’을 하며 의식, 시선을 확장시켰다. 참 신기하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많이 성장한 것 같은데, 끝도 없이 성장해 나가는 게 실감 난다. 지금 이 시기가 왜 지학(志學)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사람을 만났던 과정을 오늘 일지에서 좀 다루고 싶다.      


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살아본다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신이 아니고서야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가치관을 나에게 접목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에 포커스를 두면, 사회에 나가 세상과 마주하기 전, 나보다 먼저 세상과 마주한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삶을 진단하는 것이란 의미다. 결국 우리가 배우는 건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그 속에 속하기 위함이니 아까 말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결국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많은 사람을 만나자.’다.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이해하며 시선을 확장시키는 과정은 즐거울 수밖에. 아까 <히든북> 단체 대표님께서 “살면서 뭔가를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은 즐겁기 마련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며, 사람마다 사는 모습이 다양하기에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진정한 가치를 깨달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의 즐거움은 지금의 내가 그렇듯 즐겁다.     


위에서 말하는 즐거운 과정에도 고민은 있다.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함께 나만의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란 그런 생각이다. 오늘 뵌 분들은 다 좋은 분들이셨지만, 세상에는 좋은 분들만 있는 게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결국 ‘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 것인가.’라는 고민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야 할 것 같다.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 것인지, 그 과정을 통해 훗날의 내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끊임없이 사유하는 과정에 있다. 오늘 1년 후 나에게 쓰는 편지에도 잠깐 썼지만, 올해의 내가 했던 배움이 1년 후의 내 모습을 ‘어른’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릴 때는 몰랐던 가치를 아는 ‘어른’이 돼서 내가 받은 만큼 다른 이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음 품에 안았다.      


오늘 탐방한 단체 중에서는 미래청에 있는 <대안교육연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학생연대에 속해 있기에 많은 이야기가 와닿았다. 대안교육은 개인의 주체성을 기르고 타인을 존중하는 동시에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교육이다. 오늘 설명을 해주신 활동가님께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마지막에 말씀하신 “사람마다 사는 모습과 행복의 기준이 다 다르며 정형화되지 않는다.”라는 말씀이 내 가슴을 울렸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공교육은 이런 사람마다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사람을 찍어낸다. 이런 걸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다양한 경험을 통한 배움’에 꽂힌 나에게는 정말 깊은 말씀이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빨리 가는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거다. 서로의 앞에 있는 환경을 이해하며 나아가는 과정이 연대고, 연대는 개인을 안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연대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강할 수밖에 없다.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는 대안학교에서 다루는 이런 부분들이 좋다고 수 차례 정도 말씀하셨는데,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으니 되게 묘했다. 내가 생각하던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기쁨과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이런 말씀도 하셨다. 개인적으로 관련된 이야기라서 더 잘 들렸던 것 같은데, 줌으로 진행됐던 작년과는 다르게 올해 학생연대 활동이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고 하셨다. 줌으로 회의할 때도 말하는 것을 서로 배려해 주고, 모든 의견을 들으려고 하는 대안학교만의 공동체 의식도 기억에 남았지만, 아무래도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회의를 통해 학생들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며 서로 연대하는 과정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대안교육과 연대. 이 둘은 부처와 망부석 같다. 둘이 붙어 있지 않은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단어들이다. 대안교육을 통해 다른 단체와 연대하며 하나가 돼 사회의 장벽, 다시 말해 개인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허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을 무너뜨려서 청소년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행복의 기준은 어떤지 알아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대안교육연대>에서 보냈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남았다.      


마무리를 슬슬 해보려 한다. 일지 쓰기 전 권투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인파이팅’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 단어를 듣고 생각을 정리해 보면, 인파이팅은 펀치를 맞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안으로 파고들며 대상과 멀어지지 않는 것이다. 맞을 펀치가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펀치를 맞아도 가드를 올리며 나아가는 것이다. 펀치를 맞는 것은 성장을 위한 과정 같다.   

  

잘 알지도 못하는 권투 용어를 은유해 보았는데, <청년의 진로>(팀 발표 때 내가 속해 있던 조의 이름)와 연관 지으면 계속 부딪쳐야 하는 것 같다. 부딪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거기서 경험을 하고. 쓸데없는 경험은 없으니 이런 경험으로 더 강해지는 것이다. 청년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그러나 다음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란 불안과 초조함을 안고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투쟁하며 나아갈 수 있다. 이게 인파이팅이고 청년의 삶인 것 같다.      


번외로, 이 공간들이 10월에 퇴거한다는 게 너무나 아쉽다. 학생연대 회의에서 들은 내용을 좀 옮겨보면, 단순히 사람들이 살 아파트를 짓고 그 안에 있는 환경들을 없애며 지역을 홍보하는 것과, 수많은 청년과 단체들이 연대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장벽 너머에 있는 그들은 함께 살아간다는 뜻을 담고 있는 ‘세상’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함께 살아가려는 청년들과 단체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낸다.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혼자서는 불가능하기 마련이다.           


5월 3()

길찾기 8일 차, 오늘은 홍대로 탐방을 갔다. 홍대에서 교수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돌아다녔는데, 교수님 인터뷰가 계속 기억에 남는다. 그간의 길찾기 주간 동안 만났던 분들과는 같은 듯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설적으로 말씀하셔서 귀에 쏙쏙 박혔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조금 다른 형식으로 말씀해 주셔서 시선이 확장됐다면, 교수님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걸 콕콕 집어 말씀하셔서 새로운 걸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교수님은 조금 특이한 분이셨다. 개인에게 지나친 관심을 갖는 사회의 무례한 질문을 받기 싫으셔서 1등을 했고, 서울대를 가셨다. 만화에나 있을 법한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나는 여기서 궁금한 점이 꽤 있었다. 그중 하나가 ‘왜 무례한 질문인 걸 알면서도 맞서려 하시지 않았지?’였다. 무례한 것은 사람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악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서도 왜 맞서지 않고 피하는 쪽을 선택하셨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런데 질문의 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맞설 자신이 없어서.” 사실 간단하다기보다는 묵직할지도 모른다. 야구로 비유하면 볼끝이 좋았다.  

   

이 묵직한 말씀은 후에 “여러분 같은 대안학교 학생이 부럽다. 사회에 틀에 벗어나 대안교육을 선택한 여러분은 그런 시선을 감내하며 사회에서 떳떳하게 살아가면 좋겠다.”라는 말씀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느 순간 고민이 들었다. 내가 대안학교를 다니며 떳떳한 적이 있었을까, 초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들이 학교 이름을 물어봤을 때 왜 얼버무렸을까, 대학에 가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한 걸 왜일까?라는 질문이 연달아서 내게 찾아왔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사회의 틀에 가둬놓지는 않았을지 생각해 본다. 대안교육을 선택한 건 나인데 떳떳하지 못한 것 같다. 마지막 학년에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내 선택은 옳았고 내가 대안교육을 선택했기에 이런 고민까지 할 수 있는 거라고 말이다.      


나는 맞서고 피하기는커녕, 맞고만 있었다. 너무 많이 맞아서 익숙해져 있었다. 어느 순간 무감각해졌고, 스스로 어떤 게 옳은지 생각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길들여진 노예가 되어 있었다. 나는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떳떳하게 살지는 못했다. 사회의 무례한 질문을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며 삶에 대한 현실적인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맞고만 있는 건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맞아야 하지?’ 때리는 것(무례한 질문)이 안 좋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고 맞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때리는 쪽에게 주장하는 삶을 살고 있다.      


조금 길게 썼지만,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입시 교육보다는 인성, 관계, 믿음과 같은 고귀한 삶의 가치에 더 집중하는 게 의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같다. 나는 떳떳해지고 싶다. 교수님께서 앞에서 말한 말씀을 해주셨을 때 나는 해야겠다고 느꼈다. 결국 사회의 무례한 질문들은 사회 시스템에서 나오기 마련인데, 무례한 질문을 받는 대상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 중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사회 시스템이 바뀔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대안학교를 나와 떳떳하게 살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며 서로 연대하고 시선과 의식을 확장해 나가기를 꿈꾼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길찾기 주간 동안 뼈저리게 느끼는 것들이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그들의 가치관을 엿보며 나만의 가치관을 확립하는 게 삶의 과정인 것 같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이 소통은 묻고 답하며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개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함께 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다. 그런 면에서 대안학교의 교육과정이,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떳떳함이 오늘따라 더 크게 와닿는 것 같다. 학교는 사람을 만나며 세상과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이다. 무례한 질문? 그런 건 다 상관없다. 자신을 믿고 살아가며 세상과 만나 새로운 걸 발견하고 즐겨보자.      


그래서 ‘나에게 있어 대학은 뭘까?’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 내가 느끼기에는 교수님께서 학생들의 이름을 다 외우려고 하시며 소통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신 것이 대학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학교는 사람과 만나 소통하며 함께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인데, 초중고 때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더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대학인 것 같다.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다시 말해 지력(知力)을 실천하면서 함께 소통하는 게 대학의 본질 아닐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소통하기 위해선 분위기가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보다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하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고, 만들어야 하는 곳이 학교고, 이런 분위기에서 폭넓은 지식을 공유하는 곳이 대학 같다는 생각이 든다.           


5월 4(

길찾기 마지막 날,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갔다. <끌림>이라는 책에서 본 “먼 훗날은 그냥 멀리에만 있는 줄 알았어요. 근데 벌써 여기까지 와버렸잖아요.”라는 구절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오늘은 발표 준비와 발표밖에 없는 간단한 일정이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의 발표를 듣는 게 너무나 큰 배움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발표할 때도 그랬을 거라 본다.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몰입해서 듣고, 더 열심히 발표하려 했기에 더 진한 여운이 남는다.     


오늘 쓰고픈 게 좀 있다. 먼저 나는 피피티와 발제문을 다 마쳐서 피드백을 받고 수정만 하면 되는 단계에 있었다. 시간이 좀 많이 남아서 어려워하는 친구들을 도와줬는데, 나에게 이 기억이 너무나 특별했다. 첫날 일지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 있는데, 옛날의 나는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부터 설명하지 않고 “이게 더 좋으니까 이렇게 해”라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게 더 편하기도 했고 내 생각이 다 옳다고만 생각하던 ‘어린아이’였다. 어린아이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계속하기 마련이기에 쭉 이렇게 해왔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글을 쓰면서부터였을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다려주고, 존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꾸짖었다. 대숲이 되면서 이런 가치관이 자리 잡힌 나는 길찾기 주간 동안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인(人)처럼 서로 기대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사람이기에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서로 알려주고 혹은 배우며 사람의 존재 가치인 우정과 연대를 실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다시 돌아와서 어려워하는 친구들을 도와주며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먼저 말하며 그 친구들이 내 말의 뜻을 파악하기 위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명료하게 설명하려 했다. 그건 안 된다고, 별로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것에는 어떤 게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해 주었다. 물론 내가 하면 편하다. 그런데 우리 학교의 모토 중 하나가 주체성, 주도성이다. 어느 정도 겹치는 것들인데, 아무 설명 없이 내가 바로 해버리는 것은 나의 주도성이 다른 친구의 주체성을 누르는 것과 같다고 느꼈다. 개인을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바라는 나는 이 경험이 너무나 소중했기에 오늘 하루는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보냈다. 별거 아닌 경험일 수 있어도 내 것만을 추구했던 나에게는 굉장히 뜻깊었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아이는 모르는 가치를 알게 된 사람이 되었다.      


발표 시간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연돼서 축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스친 생각이 지난 <청년의 진로> 발표 같은 발표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한 번 겪어보았으니 이번에는 후회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했다. 마지막 순서라 친구들이 다들 지쳐 있었을 텐데 잘 들어줘서 고마운 마음이다. 마지막이라서 친구들의 발표를 유심히 듣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경험’이란 것에 대해서였다. 진로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공통질문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발표한 부모님들이 ‘경험’을 강조하셨다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경험은 삶의 과정 속 여러 상황을 마주하며 그것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학습하는 것이라 정리해 본다면, 부모님들은 세상과 만나며 부딪쳐보고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신 걸로 들리는데, 부모님들은 세상과 더 많이 소통했고, 소통을 통해 세상이 바라는 걸 깨닫거나 세상이 바라는 것과 다른 생각을 살펴보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누구에게 전달하기가 참 쉽지 않다. 그 경험을 타인에게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는 건 책과 이야기라는 수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회에서 소통의 문은 굳게 닫혔고 사람들은 점점 폐쇄적으로 변해갔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소통의 중요성, 그리고 소통이란 과정을 발판 삼아 경험이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추구하는 대안학교 학생이라서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함께 살아가려면 개인을 존중해야 하고 개인을 존중하는 법은 이야기를 듣는, 다시 말해 소통의 과정이니까 그렇다.      


이제 곧 졸업할 나는 세상과 마주하는 순간의 경험들이 쌓이게 될 거다. 대안학교라는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사회의 시선을 감내하고 떳떳하게 살아나가고 싶다. 떳떳하게 살기 위해 부모님들이 말씀하신 경험을 계속해보며 살고 싶다. 졸업하기 전에, 내지는 졸업하고서도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인파이트, 맞서 싸우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불안할 필요는 없다.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고 있기에 불안한 거다. 지금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살아가자. 그러면 어느 순간 졸업을 하고 세상과 마주하고 있을, 내가 쓴 편지(혁신파크 탐방 날 1년 후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를 받고 열어보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5월 5(

1차 길찾기가 끝나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대숲이었고, 대숲 생활에 적응할 때가 되니 길찾기 주간이 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데, 시간의 속도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준비되지 않은 채로 세상에 나가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덜컥 세상과 마주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이런 생각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이번 길찾기 주간은 세상과 만나는 과정이었다. 그동안의 일지에 세상과 만나는 것, 세상과 소통하는 것, 의식 및 시선의 확장이라는 말을 계속 썼다. 계속 글을 쓰며 어떤 것들의 본질적 의미를 깨닫고 그것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과정이 나에게는 길찾기 주간이었다.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이때 나도 많이 변한 것 같았다. 그랬던 길찾기가 1차로 끝이 났다.      


길찾기 전에 내 관심 분야를 써보는 시간이 있어서 나는 더 고민하지 않고 야구와 인문학을 써서 냈다. 내가 길찾기 동안 느낀 것들은 이 두 분야와 많은 부분이 겹친다는 것인데, 야구의 본질은 아홉 명이 함께하는 스포츠다. 인문학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며 야구와 인문학은 모두 ‘사람’이 주체가 된다. 이번 길찾기 역시 그랬다. 여러 군데 탐방을 다니고 직업인 인터뷰도 하며 느낀 건 결국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분들의 가치관과 삶의 경험을 나에게 접목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는 배움터길에서 배운 것들이 모두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밥을 짓는 법,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법으로 시작해서 이번 길찾기 주간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자신에게 필요한 배움은 무엇인지 사유하는 것을 배웠다고 보는데, 결국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걸 배우는 것 같다. 나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고 나의 방식으로 만나며 성장해 나가는 즐거움을 길찾기 동안 느꼈다. 세상과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세상에 내던져지지 않고 세상과 만날 준비를 한 후에 만나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배우는 주도성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이다. 내가 생각하는 학교는 세상과 만나기 전에 마음껏 실수하고 배우는 곳이다. 아직 세상과 만나지 않았기에 더 많은 걸 배웠던 것 같다.      


많은 경험을 했다. 계속 말하기 입 아플 만큼(손가락이 아플지도 모른다.) 많은 경험을 했고 이 경험들이 나의 시선을 확장시켜 주었다. 시선이 확장됨에 따라 자연스레 내가 알고 있는 것도 많아졌는데, 나는 일지에서 이것을 ‘의식의 확장’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의식의 본질은 ‘알고 있음’이기에 이런 표현을 썼고 이 경험을 통한 의식의 확장이 내겐 배움, 학문이 되었다. 헤겔이란 철학자가 말한 ‘의식의 경험의 학문’과 상당 부분 겹친다. 나 자신을 검사히며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말하고 싶다. 어제 선생님께서 “14기가 많이 성장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세상과 만나는 연습을 한 이번 길찾기 집중주간은 어떤 의미로 투쟁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와 싸우며 새로운 것을 쟁취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는데, 해보지 않았기에 막막하고 나아가는 게 두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졸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가장 막막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싸워나갔다. 다음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확실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것은 내가 지금을 살지 않고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에서 살고 있어서 불안한 거였다. 나는 현재에 발붙이고 과거를 돌아보며 과거보다 더 나은 현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게 투쟁심이고 향상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상술한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는 결국 과거의 나였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나와 싸우는 과정 순간순간이 세상과 만나기 위한 준비였다.     


스스로에게 그간 열심히 살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하려 한다. 길찾기 때 느낀 건 내가 열심히 사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이 내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결국 다시 나와 싸워야 한다. 어렵고, 지루하고, 때로는 귀찮을 수도 있지만 이런 것들이 여차할 때 생각 외로 큰 힘이 되어준다는 것은 학교를 다니며 깨달은 지 오래다. 어려운 싸움에서 한 번 이기면 다른 것 또한 이길 수 있기 마련이다. 내 인생에서 말이다.      


저 위에서 말한 야구와 인문학이라는 두 분야는 함께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혼자 할 수 없는 스포츠와. 인간이라는 존재의 최고 가치인 우정과 덕성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런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중요성을 여러 사람을 만나며 배웠고 내가 가진 생각이 옳단 걸 확신했다. 여러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하는 것에 대한 기쁨을 나누는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앞만 보고 달리기 바빴을 텐데, 지금은 앞만 보고 달리기보다 길옆에 있는 소소한 행복들을 찾아가고 있다. 이런 행복을 찾으려면 같이 걸어야 한다. 첫날 일지에 썼듯, 지금 학교에 다닐 땐 내 옆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 중간에서 걸으며 때론 앞서간 후 앞에 어떤 풍경이 있는지 알려주기도 하고, 뒤로 다가가서 왔던 길을 다시 걸으며 새로운 발견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알 수 있다. 내가 길찾기 주간 동안 배운 것은 함께 걷는 법이었다. 길찾기 때 이런 말을 들었다. “모두를 기다리는 게 과연 평등의 의미일까?” 그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잠시 답을 얼버무렸지만, 지금은 답할 수 있다. 모두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걷기 위해 서로 나누는 것이 평등한 것이라고. 삶은 가치를 정립하며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나의 가치관이 슬슬 정립되고 있음을 느낀다. 


앞서 말한 삶의 경험을 미리 한 사람들을 만나 내 가치를 정립할 수 있는 시간이라 말하며 마치도록 하겠다. 그동안 애써준 나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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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동안 진행했던 글쓰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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