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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Jul 04. 2024

10. 표현 불가능함을 표현하는 일.

사진: Unsplash의 Julia Joppien


'어쩌면 우리가 작가에게 기대하고 감동하는 것은 삶과 세계에 대한 능숙한 해석이 아니라,

 그 불확실한 계절에 가 닿으려는 시도일 것이다.'

-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눈에 익숙한 문장은 상상을 멈추게 합니다. 하지만 어떤 글에는 흘러넘치는 감각이 있습니다. 글이지만 읽다 보면 리듬을 타게 되는 그런 글 말입니다. 그런 글을 읽고 나면 읽기 전의 나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나를 이전의 나와 전혀 다른 생소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어쩌면 작가의 '그 불확실한 계절에 가 닿으려는 시도'일지도 모릅니다. 그 시도가 성공했든 실패로 끝났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글쓰기 수업에서 강사는 책 쓰기(출판)의 팁으로 '예상 독자'를 정해보라고 했습니다.

연령대, 성별, 직업, 니즈 등을 예상하여 너무 넓거나 좁게 설정하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독자를 어떻게 상정하느냐에 따라 글의 문체도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강원국 작가도 글을 쓴다면 그 무게 중심이 작가에게 있는 것보다 독자에게 있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예상 독자를 고려하여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제까지 내가 쓴 글의 독자들을 상상해 봅니다. 그들은 30~40대의 남성(연령, 성별), 전문직(직업),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은(니즈) 사람들이었을까요. 글쓰기 수업에서는 '예상 독자'를 정하라고 했지만, 안다고 해서 그대로 실천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저는 끝내 예상 독자를 설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글이 이 모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글의 예상 독자는 여전히 '나'일 뿐입니다.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조그마한 실마리를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절실하게 부여잡았을 따름입니다.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타인의 욕구까지 헤아릴 수 있겠어요.


"너의 글은 어렵더라."

처음에는 글쓰기가 어려웠는데, 참고 쓰니까 이제는 쓴 글이 어렵다고 합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유시민 작가는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사기 치려는 사람이 글을 어렵게 쓴다."라고 말했습니다. 결코 사기 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쓰려고 하는 주제에 대하여 잘 모르거나,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할 때 글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쓰고 있지만 무얼 쓰는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쓰고 있자면 조금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해가 먼저인지, 우선 쓰고 봐야 하는지를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해가 없는 글쓰기는 맹목적이고, 쓰기가 없는 이해는 위태로울 테니까요.


쉽게 쓰기 위해서는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을 사용하고, 일상적인 언어로 말하듯이 쓰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고, 논리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쓰고 있으면 이러한 사실들은 다른 차원의 문제같이 낯설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어렵게 쓰지 말고 최대한 쉽게 써보자,

 복잡하게 굴지 말고 단순해지자.'

항상 글을 쓸 때마다 주문처럼 외우지만, 마법에라도 걸린 듯 글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내 생각을 글로 재현하는 순간 주술에 걸린 것처럼 그 생각은 쉽게 휘발되지 않고 나에게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직 나에게 남아있는 표현 불가능함을 안간힘을 써가며 표현하다 보면, 

글이 어려워질지도 몰라요, 나조차 이해하지 못한 글을 써댈 거예요. 

하지만 괜찮더라고요. 같은 실수를 반복해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경험이 언젠가는 글쓰기의 쓸모가 될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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