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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Jul 11. 2024

풍경처럼 읽히는 글.

알베르토 자코메티, <디에고가 앉았다>, 1948.

모든 문장은 풍경처럼 읽힌다.

감탄하며 바라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칠 때도 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도 하고, 읽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문장이 활연히 이해되기도 한다. 물론 오독으로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누군가에게 반드시 읽힌다는 점이다. 

설령 아무에게 읽히지 않더라도 자신에게만큼은 제일 처음으로 목격된다.

 

글을 쓸 때면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가 떠오른다.

1964년 파리,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그의 친구이자 작가인 제임스 로드에게 초상화 모델이 되어 달라고 말한다. 쉽게 끝날 것 같던 작업은 자꾸만 미뤄지고 제임스 로드는 결국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까지 변경하며 작업을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내용이다. <파이널 포트레이트>는 스탠리 투치 감독이 제임스 로드의 회고록 『작업실의 자코메티』를 직접 각색, 연출한 작품이다. 『작업실의 자코메티』는 자코메티가 초상화(1964)를 제작하는 동안 모델이 되었던 제임스 로드가 작업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인간의 얼굴은 그 어떤 얼굴도, 심지어 내가 수없이 봐왔던 얼굴조차도 그렇게 낯설 수가 없다”라고 말한 자코메티는 지각한 대로의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초상화를 그리며 끝없이 덧 그리기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지각이 시시각각 달라지고, 초상화의 대상도 항상 변함없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초상화는 단순해지고 모호해졌다. 하지만 그 모호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고독과 황폐해진 내면을 오히려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진의 발명 이후 화가들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담아내는 일 너머, 그 이상을 담아내야만 했을 것이고, 그 일에 자코메티는 힘겨워했다. 


"보는 대로 그리지는 못해, 그건 불가능해."

"사진 역할을 대신했을 때는 가능했지만 지금의 초상화는 완성이 불가능해."

"완성이란 없어, 완성했다고 하는 것은 다 정직하지 못한 거야, 초상화는 모두 미완성이야."


초상화를 그리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 그 위에 덧 그리기) 자코메티에게 제임스 로드가 말한다.

"얼굴이 잘 안 그려지면, 우선 배경이나 밖을 그리면 어때요?"


자코메티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저 뭔가를 하는 것, 그냥 채우는 것은 전체를 포기하는 것이야."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되돌려야지"

"너무 많이 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충분히 못 갔어."


하지만 자코메티의 초상화 작업은 제임스 로드의 간단한 말 한마디로 결국 끝난다.

"지금 충분한 것 같은데요."


하나의 글을 마칠 때면 '지금 끝내도 충분한가?'라고 자문해 본다. 대답은 '아니다'이지만, 

항상 끝을 낸다. 그래서 내 글은 미완성이다. 

너무 많은 말을 하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한 적은 없다. 

글을 쓰며, 위 영화의 대사들을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문장이나 낱말들을 아직 발명해 내지 못했다.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 불편함을 감추는 기교가 생기는 것일지도.


글이 마음먹은 대로 쓰이지 않고, 마음대로 쓰일 때, 자코메티의 다음 말을 위안 삼아도 좋을 것 같다. 

게으름에 대한 핑곗거릴 찾는 거라고 해도 좋다. 

"나는 내 작품 속에 모든 것을 담아내고 싶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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